“종북좌익세력을 뿌리 뽑아야 한다” 한상대 신임 검찰총장의 취임 일성 가운데 일부다. 한 총장은 12일 열린 취임식에서 검찰이 수행해야 하는 3대 전쟁을 열거했는데 그 중의 하나가 ‘종북좌익’세력과의 전쟁이었다.
 
아마도 ‘종북좌익’세력은 ‘종북’세력과 ‘좌익’세력의 합성어인 듯싶다. 이를 구분하자면 ‘종북’세력은 주체사상을 신봉하거나 김일성․김정일 세습체제를 옹호하는 사람들의 무리일 것이고, ‘좌익’세력은 좌파의 다른 표현인데 공산주의자나 사회주의자를 의미하는 것 일게다.
 
대한민국에 종북주의자들이나 주체사상을 신봉하는 사람들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의 숫자나 이들이 가진 영향력은 극히 미미해서 한 총장이 그토록 애써 수호하고자 하는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전혀 위협이 되지 않는다. 과문한 탓인지 모르겠지만, 대한민국 국민 가운데 종북주의자들을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으로 인식하고 있는 건 새로 검찰총장이 된 한 총장과 요즘 눈부신 활약을 펼치고 있는 어버이연합 정도가 아닐까 싶다.
 

   
한상대 검찰총장 내정자. ©노컷뉴스
 
정작 한 총장 스스로도 종북주의자들을 위협적인 존재로 여기는 것 같지는 않다. 한 총장은 취임사에서 “우리는 정치, 경제, 사회 모든 면에서 북한을 압도하고 있다”고 천명하고 있는데, 이미 대한민국과의 체제 경쟁에서 완전히 낙오된 북한을 추종하는 시대착오적인 무리들이 있다고 한들 두려워할 까닭이 없는 것이다.
 
대한민국 국민 가운데 적어도 이성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종북주의자들에게 감화(?)되거나 현혹될 리가 없다. 따라서 한 총장은 종북주의자들에 대한 관심을 끄는 것이 좋겠다. 실정법을 위반하지 않는 한 종북주의자들을 그렇게 백안시 할 필요도 없다. 주체사상을 종교의 일종으로 간주하면 종북주의자들을 다루는 방법도 자연스럽게 도출된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거나 실정법을 어기지 않는 한 종교의 자유를 금압(禁壓)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신임 검찰총장은 명심할 필요가 있다.
 
‘좌익’세력에 대해서는 한 총장이 종북주의자만큼의 관심도 기울일 이유가 없다. 공산주의가 되었건 사회주의가 되었건 관념 속에서 이를 추구한다면 처벌할 근거가 없다. 어떤 법도 내심(內心)의 기도(企圖)까지 처벌하지는 못한다. 폭력이나 무력으로 자신들의 신념을 관철시키려는 것이 아니라면 ‘좌익’세력을 위험하지 않은 몽상가들로 간주하는 것이 타당하다. ‘좌익’세력은 사법의 영역이 아닌 사상의 자유 시장에 위탁하면 족하다. 더욱이 한 총장도 말했듯이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우월성이 국경을 넘어 세계로 퍼져나가고 있지”않은가 말이다.
 
이렇듯 ‘종북좌익’세력에 대한 해법은 간명하다. 실정법을 위반하지 않는 한 무시하거나 사상의 자유 시장에 맡기면 되는 것이다. ‘종북좌익’세력은 신임 검찰총장이 정색을 하고 전쟁을 선포할만한 상대가 아니다.
 
사정이 이런데도 한 총장은 무슨 국가의 큰 우환이나 거악을 소탕하는 것 같은 기세로 ‘종북좌익’세력의 ‘제거’를 표방하고 있다. 한 총장은 말을 가려서 하는 것이 좋겠다. ‘제거’라는 말은 적국의 수괴를 암살하거나 군사적 표적을 없애는 데 사용되는 표현이지, 자국의 국민들을 상대로 쓸 수 있는 표현이 아니다. 한 총장이 지칭한 ‘종북좌익’세력도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당연히 헌법과 법률의 규율을 받아야 할 것이고, 헌법과 법률을 위반할 경우에는 처벌받을 것이다. 이른바 ‘종북좌익’세력이 실정법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면 수사하고 기소하면 되는 것이다. 요즘 검찰은 수사하고 기소해서 처벌받게 하는 것을 ‘제거’라고 표현하는가?
 
   
이태경 토지정의시민연대 사무처장
 
한 총장이 취임사에서 했다는 “체제의 수호자”라는 자임(自任)도 듣기에 거북하고 부적절하다. 헌법이나 법률에 검찰이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수호자라고 명시돼 있다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없는데 언제부터 검찰이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수호자로 자리매김을 했는지 모를 일이다. 자유민주주의 체제는 검찰이 아닌 대한민국 국민들이 수호한다는 사실을 한 총장이 기억했으면 좋겠다.
 
대한민국 검찰은 검사동일체 원칙에 충실하기로 유명하다. 서슬 퍼런 신임 검찰총장이 취임사를 통해 ‘종북좌익’세력의 척결을 주문한 만큼 검찰이 새로운 수장의 지침에 따라 공소유지도 어려운 공안사건들을 양산하지나 않을지 벌써부터 걱정이다. 이런 사태가 발생하는 것을 막으려면 한 총장이 이제라도 ‘종북좌익’세력과의 전쟁을 철회해야 한다. ‘종북좌익’세력과의 전쟁선포는 모기를 상대로 칼을 휘두르는 것 이상으로 우스꽝스러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