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가 온통 포퓰리즘 논란으로 소란스럽다. 정부, 정치권, 언론에 재계까지 나서서 포퓰리즘이 나라를 결딴낸다며 목청을 높이고 있다. 국민의 요구와 바람은 포퓰리즘이란 ‘틀 씌우기’에 갇히면서 민생 정책은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하고 있다.  
 
문제는 포퓰리즘이 이해타산에 따라 상대를 공격하는 교묘한 이중 잣대로 활용된다는 점이다.  민생관련 정책마다 포퓰리즘의 덜미에 잡힌 채 즉흥적 선심정책으로 폄훼되고 있다.   
 
대중 인기 영합주의로 해석되는 포퓰리즘은 대중과 인기 영합이라는 미묘한 경계에 대개 자리하고 있다. 그래서 모든 정책은 포퓰리즘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또 적극적으로 결합되기도 한다. 민주주의가 민심을 기본으로 하기 때문이다.
 
2011년의 한복판을 달구고 있는 포퓰리즘 논쟁의 배경은 ‘이젠 더 이상 못 참겠다. 못 살겠다’는 서민들의 분노폭발에 대한 방어기제라는 혐의가 짙다.
 
민심을 표출하는 통로는 선거다. 지난 4·27 선거의 메시지는 분명했다. 뼈 빠지게 일해도 적자투성이의 삶에 고통스러운 서민들의 경고였다. 대다수의 언론은 무너지는 중산층의 심판이라고 해석했다. 보수적인 조선일보마저 4월 28일자 사설에서 ‘한나라당, 이제 민심을 알겠는가’라고 일갈했다. 성장 소외계층의 반발을 주요 선거패인으로 분석하며 국민의 마음을 제대로 읽지 못한 이명박 정부와 여당을 향해 쓴소리를 냈다.
 
지난 10년새 상위 20%의 소득은 55% 늘어난 반면, 하위 20%의 소득은 35% 줄었다. 지난 5년간 30대 기업의 영업이익이 30조에서 53조원으로 80% 가까이 늘었지만 고용은 43만명에서 48만명으로 고작 10% 증가했다. 급격한 양극화 현상은 고용없는 성장과 더불어 중산층의 몰락을 가속화 했다. 20 대 80 사회(상위 20%가 전체 부의 80%를 차지)의 본격적인 진입을 각종 지표들은 증명한다.
 
전·월세값의 고공행진과 천정부지의 물가는 서민들의 가계부를 옥죄고 있다. 올 6월 소비자 물가는 4.4% 상승해 6개월 연속 4%대 상승을 기록한다.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올 1분기 적자 가구가 우리나라 전체의 30.5%로 무려 530만 가구에 해당한다. 
 

   

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오른쪽)이 지난 24일 오후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과 경제 5단체장의 간담회에서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다. ⓒ노컷뉴스

 
하지만 1일자 주요 신문에 따르면 국내 30대 대기업 그룹 총수 직계가족의 상장사 보유주식 평가액은 1년새 12조가 늘었다. 여기에 배당금을 합하면 앉아서 1인당 평균 1101억원을 불렸다. 또 올해 우리나라는 무역 1조달러 돌파가 확실하며, 영국 프랑스 일본 등 선진국보다 7년 빠른 증가 속도로 1조달러 클럽에 들어간다고 지면을 장식하고 있다. 수출 비중이 큰 무역 1조달러 달성의 과실은 대부분 대기업이 독식하고, 중소기업들은 되레 박탈감을 느낀다. 예전에는 대기업의 수출 증대가 중소기업·자영업자에게 부를 이전하는 트리클 다운(tricle down)의 선순환 효과를 거뒀는데 최근 들어 대다수의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는 불황에 시달린다. 고환율의 수출 정책은 재벌들의 배를 불렸지만 내수는 바닥을 치고 있다.
 
무너진 중산층은 신용불량자로 집단화하고 저소득층은 벼랑 끝으로 내몰려 있는 구조적인 현실의 분노가 정부와 여당을 이른바 ‘친서민’ 정책이란 이름으로 곁눈질하게 만들었다. 그나마 정책마다 포퓰리즘이란 낙인이 찍히고 소모적인 논쟁으로 겉돌고 있다. 
 
최근 경제계를 대표하는 허창수 전경련 회장까지 팔을 걷어붙였다. 허 회장은 대기업 ‘감세 정책’ 철회와 대학생들의 반값등록금 요구를 직설적으로 비판했다. 등록금 감면은 포퓰리즘이고 기업의 법인세 감면 철회는 세계적인 추세에 역행한다는 논리다.
 
이어 허 회장은 “나라 중요 정책 결정에 있어 원칙을 제대로 지키고 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여기서 더 나아가 내년 총선과 대선 국면에서도 분명한 목소리를 내겠다고 밝혀 듣기에 따라 정치권에 보내는 경고 메시지처럼 섬뜩하다.
 
허 회장의 발언에 주목하는 이유는 역사적으로 포퓰리즘의 반대편에 선 엘리트주의, 즉 소수 기득권층의 대표격인 경제계의 수장인 탓이다. 재계가 사회적 책임은 간과한 채 성장과 수출 드라이브 정책의 수혜자로만 남으려 한다면 사회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질 것이다.

정경유착, 특혜금융, 상호지급 보증을 통한 문어발식 기업확장, 노동3권 탄압과 저임금, 고환율 정책 등으로 급성장한 한국의 대기업들이 복지예산을 늘리고 대학 등록금 반값 주장을 포퓰리즘으로 매도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지 돌아볼 일이다. 부자감세 철회, 복지예산 증액은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요구이다.

워싱턴 포스트(WP)는 지난 29일 “재벌 중심의 고도성장과 극심한 경쟁위주의 교육시스템을 상징으로 하는 한국에서는 빈부격차와 엘리트계층의 부패 등이 공정사회로의 진행을 막고 있다”고 보도했다. 실제로 식품가격과 등록금 인상 등으로 서민들의 살림이 나빠졌고 서울과 지방 간 경제 격차가 여전하며 대기업이 하청업체인 중소기업을 압박하는 ‘승자 독식 사회’가 계속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국민소득(GNP) 2만달러 시대 재진입에 멈추지 않고 선진국 문턱을 넘으려면 포퓰리즘이란 삿대질을 멈추고 시대정신을 꿰뚫는 새 패러다임을 짜야 한다. 서민들의 복지 요구에 대해 막연한 ‘공포’보다는 동반성장을 통한 장기적이고 구조적인 경제성장의 새로운 틀을 고민해야 할 때이다. 민생을 위해 머리 맞대고 조정하고 협의하여 구체적인 대안을 만들어야 한다. 내년 총선·대선의 표심은 민생을 포퓰리즘으로 매도하려는 세력도 이용하려는 세력도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민심은 간단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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