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대통령의 검은돈 파동을 가져온 서석재 전 총무처장관의 비보도(오프 더 레코드) 요청발언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정국의 가파르게 전개되고 있다.

그의 발언은 회식자리에서 비보도를 전제로 이뤄졌고 대부분 출입기자들은 그의 ‘비보도’요청을 그대로 받아들였따. 그의 발언 내용은 한 조간신문의 1면 머릿기사로 보도되면서 국민들에게 알려졌다. 더욱이 ‘비보도’를 ‘과감’하게 깬 신문이 다름아닌 조선일보라는 점에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언론에 보도되면서 정가에 일파만파의 충격을 일으키자 서씨가 “시중에 나도는 소문을 술자리에서 잡담삼아 이야기 한 것 뿐”이라고 서둘러 파문확산을 막으며 발뺌한 것도 흥미롭거니와 이것이 의도적으로 흘린 ‘계산된 발언’이 아닌가 의심하는 항간의 해석도 만만치 않은 재미를 더해 주었다.

우리는 여기서 이 사건과 관련, 크게 두가지 문제점을 제기하고자 한다. 첫째는 언론의 자기반성 부분이다. 먼저 대부분의 회식 참석기자들이 당시 서장관의 ‘비보도’요청을 받아들였다는 점이다.

권력 핵심부가 천문학적 규모이 가차명 예금을 갖고 있다는 이 충격적 발언을, 그것도 집권세력의 실세라 할 수 있는 대통령 측근장관이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즉시 보도하지 않았다. 만일 모든 언론이 서씨의 ‘주문’대로 침묵했다면 이 엄청난 사실은 ‘없는 일’이 되기 십상이었을 터다.

이와 관련해 그동안 전직 대통령의 가명계좌가 노출된 사건이 많았다는 검찰관계자의 말을 인용한 분석기사도 주목할만하다. 가령 원전수뢰사건이나 동화은행 비자금 사건 그리고 상무대 비리사건에서 이미 노출됐고 검찰이 재벌을 상대로 내사까지 벌였을 때 우리 언론은 무엇을 했는가 되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언론계의 오랜 관행으로 내려오는 비보도가 취재원과 기자 사이의 일종의 협정으로 이의 필요성이 일부 인정될 수는 있으나 이같은 관행이 자칫 국민의 알권리를 침해하는 ‘직무유기’요, 특권적인 정보독점일 수도 있다는 인식을 분명히 해야할 것이다.

아울러 일부 언론의 경우 실체적 진실을 규명하려는 본연의 모습보다 정파나 파벌간의 이해관계속에서 보도하려는 자세를 보이고 있는 것도 경계해야 할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둘째, 우리는 이같은 언론의 반성부분과 맥락을 달리해 이 문제가 불거진 것을 언론의 무책임한 보도 탓으로 몰아가려는 일부 정치세력의 행태에 크게 우려를 표명하지 않을 수 없다.

예컨대 ‘술자리의 잡담’을 언론이 정색하고 보도했다든가. 사실과 달리 언론이 부풀렸다든가 주장하면서 언론에 화살을 돌리는 현상은 근본적으로 사태의 본말을 호도하려는 의도가 아닐 수 없다.

따라서 우리는 누군가가 이 문제를 언론의 잘못으로 돌리면서 한낱 술자리 잡담 정도로 넘어가려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언론의 말길을 근본적으로 가로막으려는 행태로 규정하고 우리 언론이 이에 맞서 끝까지 진상규명에 충실할 것을 기대한다. 그것이 그동안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한 우리 언론이 거듭날 수 있는 길이며 나라의 기강을 바로 세우는 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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