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 진영 내에 이른바 북한의 ‘3대 세습’ 문제를 놓고 논쟁이 한창이다. 경향신문이 사설에서 민주노동당에게 “3대 세습을 인정하겠다는 것이냐”고 공격적으로 문제를 제기한 것이 도화선이 됐다. 경향신문의 사설에 대한 민주노동당의 반박과 진보 성향의 학자와 논객들이 대거 가세하면서 논쟁이 뜨거워졌다.

북한 체제에 대한 남한 내의 시각과 입장은 그 편차가 뚜렷하고 크다. 북한의 체제와 권력집단은 도저히 상종할 수 없는 폐쇄적인 독재 정권이라는 극단적인 반북주의부터 어떻게든 북한을 보듬고 남북 화해와 협력의 길을 모색해야 한다는 햇볕론까지만 하더라도 그 층위는 무척 다기하다.

이는 비단 북한에 대한 입장과 시각의 차이만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다. 남북관계와 통일의 문제, 나아가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 강대국들에 대한 입장과 대응의 차이까지가 종합적으로 투영된 것이다. 극단적인 반북주의로 일관하고 있는 보수언론과 정권들이 한미동맹을 신성시하고 있는 것이나, 햇볕정책을 구사했던 김대중·노무현 정권이 주변 열강들로부터 어떻게든 자주적인 노선을 유지하려고 노력했던 것이 그런 사례일 것이다. 이 때문에 북한 문제에 대한 논의는 한반도 문제에 대한 종합적인 시각과 전망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을 경우 북한에 대한 기존의 태도와 시각만을 고집하면서 소모적인 정치적 논쟁으로 끝나기 십상이다.

그런 점에서 북한의 후계구도에 대한 진보진영의 이번 논란은 단편적이고 소모적인 측면이 많다. 특히 진보진영 내의 논란에 불을 붙인 경향신문의 사설은 언론의 비판 기능을 감안하더라도 과도하게 문제를 단순화시켜 쟁점화한 측면이 강하다. 더구나 북한의 후계구도에 대한 선악의 판단을 유보하고, 남북관계의 개선을 기대한다는 원론적인 논평을 낸 것을 두고 ‘진보의 가치’를 외면했다며 민노당을 몰아붙인 것은 아무리 진보와 인류 보편의 가치를 내세운 주장이라고 하더라도 지나친 점이 있다. 경향신문의 사설에 대해 진보의 가치를 내세운 ‘역메카시즘’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이다.

경향신문이 북한의 권력세습에 대해 비판하는 것은 문제가 될 것이 없다. 또 경향신문이 민노당의 대북정책에 대해 비판하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하지만 북한의 권력후계 구도만을 따로 떼어 내 그것에 대한 비판적인 입장 표명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민노당에게 “3대 세습을 인정하겠다는 것이냐”는 식으로 몰아붙이는 것은 북한 문제를 남북관계의 맥락 속에서 신중하게 다뤄온 경향신문의 평소 논조와도 어긋나는 것이다.

경향신문 사설이 민노당과 진보세력의 북한관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 제기일 수도 있겠다. 논란의 발단이 된 경향신문 사설은 곳곳에서 이를 시사하고 있다. 북한의 이번 후계구도를 ‘21세기 왕조의 탄생’이라고 적시한 것이나, “3대 세습 정권에 희망을 걸어볼 여지가 있다는 뜻인가”라고 민노당에 물은 것들이 그렇다. 북한 후계구도에 대한 민노당의 논평을 빗대 “북한을 무조건 감싸주어야 한다는 생각이라면 그야말로 냉전적 사고의 잔재”라며 “한국의 진보세력이 그렇게 냉전시대에 갇혀 있는 한 냉전적 보수 세력의 발호를 차단하는 것도 어려워진다”고 지적한 것은 앞으로 경향신문이 ‘3대 세습’을 한 북한 정권과 체제를 강력하게 비판하고 나설 것임을 예고한 것으로 보인다.

경향신문이 앞으로 그런 논조를 편다고 하더라도 경향신문의 비판적인 시각이나 입장과 다르다는 이유로 진보세력이나 민주당, 민노당 등을 “북한의 3대세습을 인정하겠다는 것이냐”는 식으로 공격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야말로 그동안 북한 문제를 빌미로 남북 대화와 화해를 추구하는 민주세력과 진보진영을 ‘친북’ 혹은 ‘종북’이라며 이념적 공세를 펴왔던 보수언론의 행태와 크게 다를 것이 없기 때문이다.

북한 문제는 한국 사회의 가장 민감하면서도 뜨거운 쟁점이다. 식민지배와 분단, 한국 전쟁을 거치면서 남과 북은 수십 년 동안 대립과 반목으로 지내왔다. 동서 냉전체제가 해체된 이후에도 남북의 냉전적 대결 상태는 꽤 오랫동안 지속됐으며, 남과 북이 본격적으로 대화하고, 협력의 길을 모색한 것은 불과 10여년에 불과하다. 그나마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남북관계는 또 다시 냉전적 대결상태로 회귀하고 있다. 지금은 진보나 보수진영 가릴 것 없이 소모적인 이념논쟁에 정력을 낭비할 때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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