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민정부 들어 우리사회의 민주화는 과연 얼마나 진전된 것일까. ‘문민’이라는 수사에 걸맞는 평가를 할 수 있을까. 최근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의 연세대 통일대축전 집회및 시위에 대한 정부의 강경대응과 십자포화를 퍼붓다시피하고 있는 대다수 언론의 이념공세를 볼 때 우리는 이같은 질문을 다시 던지지 않을 수 없다. 민주주의의 가장 기본 요건이랄 수 있는 사상과 이념의 자유, 표현의 자유에 대한 질식할 듯한 ‘원천봉쇄’를 새삼 확인하게 되기 때문이다.

한총련 지도부의 이념과 노선이 정말 심각할 정도로 문제라면 이는 평소에 그 대책이 마련돼야 했다. 그들의 이념과 노선은 우리 사회가 안고 풀어야 할 숙제이다. 사법적 제재와 사회로부터의 격리만이 능사가 아니다. 검경이 발표한 것처럼 한총련 산하조직을 이적단체로 규정할 만큼 그들의 조직과 노선이 친북적이라고 하더라도 왜 그들이 그렇게 됐는가에 대해서 보다 근원적인 진단과 처방이 요구되는 것이다.

이들 시위의 과격성과 폭력성을 문제삼아 연세대 집회에 참여한 모든 학생들을 적대시하고 있는 경찰의 강경 진압도 필요 이상의 과잉 대응이다. 18일 현재 경찰이 연행한 대학생수는 2천3백여명에 구속자수는 61명이다. 그런데도 경찰은 아직 연세대 과학관과 종합관에 남아있는 대학생 1천여명을 모두 체포한다는 계획 아래 이들 건물을 봉쇄하고 식품과 의약품의 반입마저 막고 있다. 한마디로 전쟁터의 적을 대상으로 한 섬멸작전을 방불케 한다.

언론의 보도태도는 이보다 더하다.
시위 학생들을 ‘김정일의 충실한 하수인’ ‘북한 정권의 꼭두각시’로 몰아세우며 정부의 강경대응과 경찰의 강경진압을 앞장서 이끌어가고 있다.

경찰의 원천봉쇄및 강경진압이 사태를 악화시킨 측면은 애써 외면했다. 학생들의 주장이나 의견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은채 검경의 발표와 주장만을 일방적으로 확대 보도하고 있다. 사복경찰관을 시민으로 등장시켜 비난여론을 증폭시키는가 하면 PC통신의 여론마저 왜곡 보도하는 일도 서슴지 않고 있다.

충분히 예상됐던 한총련의 집회를 계기로 한 그 어느 때 볼 수 없던 정부의 강경대응이나 대다수 언론의 여론몰이식 이념공세는 과거 문익환 목사 방북사건이나 조문논쟁, 박홍 총장 발언사건 때와 같이 의도적으로 공안정국을 조성하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폭력적인 학생시위는 자제돼야 마땅하다. 국민적 공감을 얻을 수 없는 통일운동이라면 이 또한 재고돼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경계되고 우려되는 것은 군사정권시절에서 한발짝도 나아가지 못한 정부와 언론의 경직된 냉전적 사고 틀이다.

다양한 통일논의및 남북 교류를 사실상 불허하고 있는 정부의 폐쇄적인 통일정책으로는 통일을 주도하기는커녕 남북관계를 둘러싼 복잡 다단한 한반도 주변 정세에도 제대로 대응할 수 없다. 더욱 사상과 이념의 자유시장 역할을 해야 할 대다수 언론이 일색으로 냉전적인 시각에 젖어 있다는 것은 참으로 우려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민주주의의 힘은 이념과 사상의 다양성과 다원성을 보장하는데서 나온다는 평범한 사실을 정부와 대다수 언론이 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묻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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