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사진=장슬기 기자
▲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사진=장슬기 기자

공직선거법상 국회의원 선거구는 선거일 1년 전까지 획정해야 하지만, 국회는 22대 총선이 41일 남은 지난달 29일 선거구 획정안을 통과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서울과 전북에서 각 1석씩 줄이고 인천·경기에서 1석씩 늘리자고 했지만 더불어민주당은 민주당 우세지역인 전북 축소를 반대하며 국민의힘 텃밭인 부산 지역에서 1석 줄이라고 요구했다. 거대양당 힘겨루기 끝에 전북 의석을 기존 10석 유지하고 비례대표를 1석 줄이는 방식으로 전북과 부산 지역구 의석수를 유지했다.

애초 전북 9석 안이 국회에 제출됐기에 전북 지역을 대변할 국회의원이 줄어들 거란 위기의식은 널리 퍼져있다. 전북 지역신문 A기자는 미디어오늘에 “만약 9석으로 줄었다면 시끄러운 상황이 벌어졌을 텐데 그나마 안도하는 분위기”라며 “지역소멸이 진행되는 농산어촌에서 큰 사안인데 한때 전북이 24석(5대 총선, 1958년 5월)이었는데 한자리까지 갈 수 있다는 게 민의를 대변할 사람이 없다는 허탈감, 자존심 문제”라고 말했다.

전북의 위기의식 못지않게 양당이 유리한 지역 의석수를 줄이지 않으려 비례대표 의석을 줄인 부분도 중요하다. 참여연대는 지난달 29일 성명을 내고 이번 결정을 “지역구 기득권을 지키고 확대하기 위해 비례대표 의석까지 줄인 두 정당의 탐욕”으로 규정했다. 그러면서 “국민의힘과 민주당에, 헌법에 명시된 비례대표 의석은 지역구 의석수 확보를 위한 협상용 카드에 불과한 셈”이라며 “결국 국회의 다양성, 비례성, 대표성이라는 가치는 기득권 앞에서 또 훼손됐다”고 비판했다. 

비례 의석 감소에 무관심한 전북 지역언론

전북이나 부산 지역 차원에서 보면 자신의 지역구 의석 유지도 중요하지만 한국 사회가 오랫동안 합의해온 비례 의석을 늘려가는 것 역시 중요한 문제다. 하지만 전북 지역언론에는 이러한 다양한 논의 대신 어떻게 해서든 전북 지역구를 지켜내야만 한다는 관점만 담겨있다. 

전북일보 지난달 28일 1면 <민주당 비례 1석 포기해야 ‘전북 10석 유지’>에선 노골적으로 비례 의석을 포기하라고 주문하고 있다. 해당 기사를 보면 “비례연합 정당에 포함된 진보당의 경우 원내 1석을 전북에서 만들어준 만큼 비례의석 고집 대신 전북에 최소한의 도의는 지켜야 한다는 게 전북지역 내 중론”이라고 보도했다.

▲ 전북일보 2월28일자 1면 기사
▲ 전북일보 2월28일자 1면 기사

전북일보 같은날 3면 <전북 10석 붕괴땐 ‘현역 사퇴론’ 대두>에선 전북 국회의원 이름을 거론하면서 현역 의원 사퇴까지 요구했다. 지난달 29일 사설 <전북 10석 붕괴되면 현역 모두 사퇴해야>에서도 민주당 한병도 의원(익산을), 김윤덕 의원(전주 갑), 이원택 의원(김제 부안) 등의 이름을 거론하며 “이들은 정치력 뿐만 아니라 논리개발도 뒤떨어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같은날 KBS전주총국도 “선거 때마다 지역구 의석 축소 우려가 반복된다”며 “지방 소멸 위기 속에 장기적으로 지역 대표성을 보장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라고 보도했다.

10석을 유지하기로 결정하자 전북 정치인들의 공과를 평가했다. 전북일보 주필은 지난 4일 칼럼에서 이들을 향해 “도민들이 10석 유지를 위해 총력전을 펴고 있는 절박한 상황에서 반대표를 던지거나 기권한 것은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라며 기권표를 던진 김성주 의원에게는 “표리부동한 의원이었다는 것을 본인 스스로가 입증시켰다”고 비판했다. 같은날 전북도민일보 <선거구 10석 유지, 전북 도·정 협치 결과물>에선 10석 유지에 공이 있는 정치인들을 칭찬했다.

▲ 전북도민일보 4일자 기사
▲ 전북도민일보 4일자 기사

전북 또 다른 지역신문 B기자는 미디어오늘에 “전북에서는 중앙정치에서 전북을 대변할 의원 수를 유지해 일단 다행이라는 분위기가 있지만 비례 의석 감소는 아쉬운 부분도 있어 어떤 기준으로 평가해야 할지 쉽지 않은 문제”라고 말했다. 해당 기자는 “선거구가 너무 늦게 확정되면서 기존 선거운동을 해온 조정된 지역은 혼란스럽다”며 “비례 의석 문제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다룰지 고민이 많다”고 말했다. 

비례 의석 감소에 타 지역신문들 입장은?

이는 타 지역신문과도 비교된다. 지난 1일 부산 지역을 다루는 국제신문은 사설 <지역구 지키려 대표성 훼손…우리 정치의 민낯>에서 “(양당이) 선거구 획정안을 놓고 지루한 줄다리기를 이어가다 비례대표 의석을 희생하며 ‘지역구 지키기’를 되풀이 한 점은 통탄할 일”이라며 “당리당략에 치우친 거대 양당이 ‘텃밭 나눠 먹기’로 민의를 반영하는 대표성을 스스로 훼손했다”고 비판했다. 

▲ 1일자 국제신문 사설
▲ 1일자 국제신문 사설
▲ 4일자 강원일보 사설
▲ 4일자 강원일보 사설

강원일보도 4일 사설에서 “전북 1석과 비례 1석을 맞바꾸는 엉뚱한 거래가 성사됐다”며 “획정위 안이 여야 협상 과정에서 변질된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지난해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의 여러 조사에서 비례의석 확대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로 확인된 바 있다”며 “지역구 확대, 비례 축소가 시대 흐름과 민심에 반하는 명백한 퇴행이라는 지적까지 나오는 이유”라고 했다.

전북 지역언론에선 선거구 획정 이후에도 의석수 유지에만 초점을 두고 있다. 지난달 29일 <전북 10석, 반드시 사수해야>란 사설을 낸 새전북신문은 선거구 획정 이후인 지난 4일 <전북 앞으로도 선거구 10석을 지켜라>란 사설을 실었다. 지역소멸을 피부로 접하는 지역언론 기자들이 오히려 선거구를 둘러싼 더 심층적인 고민을 담아낼 수 있지만 그렇지 않아 아쉬운 대목이다.

지역구 정치에 대한 깊이 있는 고민 필요

이번 논란은 지역구와 비례대표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기도 하다. 실제 전주을 지역구 강성희 진보당 의원은 전북 10석 유지에 찬성표를 던졌고, 평소 비례 의석 확대를 주장해온 당원들에게 비판을 받기도 했다. 지역의 이익과 사회적 합의가 충돌할 때 지역구 의원은 당선을 위해 지역구 논리에 순응하게 되는 정치구조다.

지역구와 비례대표의 차이는 다양한 국면에서 벌어진다. 예를 들어 현 야당 의원들이 차별금지법을 주장했을 때 찬성하더라도 지역구 내 대형교회에서 항의가 들어왔을 때 입장 표명이 쉽지 않는 등의 문제다. 지역의 이익과 무관하지만 지역구 의원들에게는 피부로 와닿는 ‘위협’을 대신할 수 있는 비례 의원이 필요한 이유다. 

▲ 국회 본회의장 모습. ⓒ미디어오늘 자료사진
▲ 국회 본회의장 모습. ⓒ미디어오늘 자료사진

한 정치권 관계자는 미디어오늘에 “요즘 양당 공천을 보면 지역 연고도 없지만 지도부와 친하거나 외부영입 인사를 갑자기 특정 지역구에 공천하고 현역 의원을 여기저기 다른 지역구로 돌리는 일이 횡행한데 지역주민들 의사와 관련 없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정치1번지로 불리던 종로는 이런 현상이 가장 극심한 지역이다. 이 관계자는 “지역대표성이 별 의미가 없다면 반대로 완전 비례제(모든 의석 비례)로 하고 지역의제는 광역·기초의회 권한을 더 주는 방식도 가능하겠다는 생각”이라고 전했다. 이는 전북뿐 아니라 지역소멸을 체감하는 대다수 지역언론에서 더 심층적으로 고민할 수 있는 문제다. 

손주화 전북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은 지난 5일 전북의소리 칼럼 <전북 선거구 10석 사수와 ‘애향 보도 경쟁’>에서 최근 보도를 가리켜 “비례제도가 도입된 취지, 즉 선거의 가치인 대표성과 비례성을 보완하기 위해 정치개혁 차원에서 논의되었던 것임은 현 시점에서 전북 언론들에서는 전혀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며 “이번 총선이 끝난 후 특정 의원의 치적으로 보도하면서 논의가 끝나는 것은 아닐지 참으로 답답하고 불안하다. 지역언론의 깊은 성찰과 통찰력을 기대해 본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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