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통신위원회가 YTN 최대주주를 유진그룹(유진이엔티)으로 변경하도록 승인하는 절차를 자문위원회로 대체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유진그룹이 이사 선임 절차를 밀어붙이는 것을 두고서는 ‘공정방송을 위한 제도 존중’ 입장을 뒤집었다는 반발도 커지고 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YTN지부는 26일 전국언론노동조합 대회의실에서 ‘유진그룹 YTN 최대주주 승인 취소사유 설명회’를 열고 “방통위는 (유진 측 구체적 계획을 재심사하는) 과정을 생략하고 정체불명의 자문위원회로 대체했다”며 “심사 없이 의견 제시 수준의 자문만으로 준공영 방송사를 사기업에 넘긴다는 것은 전례없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고한석 언론노조 YTN지부장이 26일 오전 서울 중구 언론노조 대회의실에서 열린 ‘유진그룹 YTN 최대주주 승인 취소사유 설명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고한석 언론노조 YTN지부장이 26일 오전 서울 중구 언론노조 대회의실에서 열린 ‘유진그룹 YTN 최대주주 승인 취소사유 설명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YTN지부는 방통위가 지난해 11월 대주주 변경 승인 의결을 보류할 당시 “심사 과정에서 지적된 미흡사항에 대한 구체적 계획을 확인한 후 승인 여부를 결정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음에도, 지난 1월26일~2월1일 일주일간 기존 심사위원과 회계전문가 1명 등 8명으로 꾸린 ‘자문위원회’를 운영한 뒤 유진그룹을 YTN의 최대주주로 최종 승인했다며 재심사를 생략하고 구속력 없는 자문위원 간담회를 거쳤다는 입장이다. 

자문위 운영이 “방통위 결정에 아무런 영향을 못 미치는 요식행위였다”는 비판도 있다. 유진 측이 일부 경영계획 자료를 자문위원 의견이 취합된 이후에 제출해, 관련 자료 검토가 제대로 이뤄질 수 없었다는 것이다. 지난 2일 방통위원과 자문위원 간담회에 자문위원 8명 중 4명만 참석했다는 점도 지적했다. YTN지부는 특히 ‘자료 미비로 (의결)보류했으면 재심사해야지, 자문으로 끝내면 안 된다’는 일부 위원 의견이 무시됐다고 강조했다.

YTN지부는 또 해당 자문위원회에 지난 2020년 미래한국당(국민의힘 전신) 비례대표 공천을 신청했던 A위원, 방통위에서 수억 원대 연구용역을 수주한 B위원 등이 포함됐다며 “일부 자문위원은 정치적 편향성이 뚜렷한 인물들로 민영화를 밀어붙이는 현 정부의 기조에 동조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했다.

나아가 YTN지부는 “공정방송을 위한 YTN의 기존 제도를 존중하겠다”던 유진그룹이 입장을 바꿨다고 지적했다. 유진그룹은 지난 2월 방통위에 “경영진의 합리적 경영전략 수립을 저해하는 기존 사장선임제도는 이사회 중심 선진 거버넌스 체계를 반영해 개선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를 두고 고한석 YTN지부장은 “YTN 보도와 편성 독립을 위한 대표적인 기존 제도는 사장추천위원회다. 유진그룹이 입장을 180도 바꿨는데도 방통위는 아무런 검증 없이 서둘러 승인하는 데에 급급했다”고 비판했다.

▲방통위 지난해 11월29일 속기록(위)에 나타난 유진이엔티 측의 YTN 공정방송 제도에 대한 입장과 지난 2월9일 속기록에 나타난 유진 측의 사장추천위원회에 대한 입장. YTN 노사가 공정방송을 위한 제도로 수립한 사추위에 대한 입장 변경이 확인된다.
▲방통위 지난해 11월29일 속기록(위)에 나타난 유진이엔티 측의 YTN 공정방송 제도에 대한 입장과 지난 2월9일 속기록에 나타난 유진 측의 사장추천위원회에 대한 입장. YTN 노사가 공정방송을 위한 제도로 수립한 사추위에 대한 입장 변경이 확인된다.

이런 가운데 유진그룹의 이사진 선임 추진을 둘러싼 논란도 격화되고 있다. 유진그룹은 지난 14일 YTN에 사내·외 이사진 명단을 전하며 내달 주주총회에 이들 선임안을 상정하라고 요구했고, 21일엔 사측이 이를 이행해야 한다는 가처분을 법원에 신청했다. 이사회에 의안을 올릴 수 있는 기한이 남아 있음에도 사실상 법적 압박에 나섰다는 지적이다. 유진 측은 임원 보수 한도를 기존 6억 원에서 10억 원으로 67% 증액하는 안건도 요구했다.

YTN지부는 이를 두고 “유진그룹은 일방적으로 노조 탄압에 앞장섰던 김백씨를 사내이사에 추천해 사추위 없이 사장을 선임하겠다는 의도”라며 “3분의1도 안 되는 지분으로 점령군처럼 이토록 밀고 들어오는 건 M&A(인수합병) 시장에서도 보기 힘든 폭력적인 일”이라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 YTN 사측은 “회사의 지배구조 변경 과정이 질서 있게 이뤄지도록 법 절차에 따라 협력한다는 방침이고, 유진이엔티 측과도 여러 경로로 소통하고 있었는데 소송이 제기됐다”며 “주주제안은 다음달 주주총회 안건을 정하는 이사회에 부의해 처리할 예정이었다. 소송 및 주주제안에 적법한 절차에 따라 대응하겠다”는 입장이다.

▲서울 상암동 YTN 사옥. 사진=미디어오늘
▲서울 상암동 YTN 사옥. 사진=미디어오늘

유진 측은 미디어오늘에 “(가처분 신청은) 이사회에서 만약 최대주주인 당사의 주주제안의 검토나 상정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주주권이 훼손될 가능성이 있기에 이 공백을 막기 위한 보완차원”이라며 “유진은 애초 YTN의 독립성 보장을 위해 상법에서 규정하는 이사회 중심의 투명한 경영을 약속한 바 있으며 지금도 동일한 입장”이라고 밝혔다. ‘공정방송을 위한 기존 YTN 제도를 존중하겠다’는 입장을 바꾼 것인지, ‘사추위가 합리적 경영 전략 수립을 저해한다’고 한 이유는 무엇인지 등 질의에 대한 구체적 답변은 없었다. 

한편 서울행정법원은 27일 오전 10시30분 YTN지부와 YTN우리사주조합이 신청한 ‘방통위 YTN 최대주주 변경승인 집행정지’ 가처분에 대한 심문기일을 진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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