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가 부당해고 뒤 소송을 통해 복직한 방송작가가 퇴사한 자리에 1년짜리 비정규직을 채용한다는 공고를 냈다. 법원이 상시·지속적이라고 인정한 업무를 또다시 불안정 일자리로 채우고, 열악한 처우로 ‘새벽노동 몰아주기’에 나서며 방송작가들의 비판을 부르고 있다.

MBC 방송작가들이 만든 MBC차별없는노동조합은 지난 21일 온라인 노조 게시판에 “‘이 시각 세계’ 코너 담당자 비정규직 채용을 반대한다”는 제목의 성명문을 내고 “코너 담당자를 정규직으로 채용할 것”을 요구했다.

성명문과 MBC 채용공고 게시판에 따르면, MBC는 지난 16일 MBC 간판 아침뉴스프로그램인 <뉴스투데이>의 ‘이 시각 세계’ 코너 담당 방송작가 채용공고를 냈다. MBC는 계약기간을 1년으로 내걸었고, 지원 조건으로는 ‘새벽 3시경 출근 가능자’를 제시했다. 공고는 ‘작가 경력을 우대’한다고도 밝히면서 평가에 따라 계약을 1년 연장할 수 있다고 했다.

▲MBC 채용공고 홈페이지 갈무리
▲MBC 채용공고 홈페이지 갈무리

 

MBC차별없는노조는 성명에서 “사측은 작가 퇴사후 인력충원을 위해 뉴스투데이 코너 담당자 채용에 나섰”다고 밝혔다. MBC차별없는노조는 “부당해고 이후 2년여 소송을 통해 2022년 어렵게 회사에 복직한 ‘뉴스투데이’ 작가가 복직 2년 만에 퇴사했다. 낮은 임금, 차별적 처우로 자존감에 상처를 입었고, 지속적인 야간근무와 과도한 업무량 등으로 건강까지 악화됐기 때문”이라고 했다. MBC차별없는노조는 “앞서 십여 년간 <이 시각 세계>를 담당했던 (또다른) 작가는 장기간 야간근무로 건강에 심각한 문제가 생겨 최근 다른 작가로 교체된 상태”라고도 덧붙였다.

MBC차별없는노조는 MBC 채용 방침에 비판을 제기했다. 이들은 “새벽 3시 출근해 8시간씩 주 5일, 아이템 6개씩 소화해야 하는 자리에 또다시 비정규직을 채용해 1~2년 쓰다 버리겠다는 건가?”라며 “법망을 피해 차별을 대놓고 하겠다는 <이 시각 세계> 코너 담당자 1년 계약직 채용에 반대하며, 정규직으로 채용할 것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2022년 8월8일 오전 9시 MBC 본사 앞 상암문화광장에서 전국언론노동조합 방송작가지부는 해고 방송작가의 복직을 환영하고, MBC가 복직협상에 성실히 임할 것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사진=민주언론시민연합
▲2022년 8월8일 오전 9시 MBC 본사 앞 상암문화광장에서 전국언론노동조합 방송작가지부는 해고 방송작가의 복직을 환영하고, MBC가 복직협상에 성실히 임할 것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사진=민주언론시민연합

법원은 MBC가 중앙노동위원회의 부당해고 인정 판정에 불복해 제기한 행정소송에서 MBC에 거듭 패소 판결하면서 해당 업무를 상시·지속 업무라고 인정한 바 있다. 해당 방송작가가 해온 업무 상당수는 △주요 현안 자료조사 △아이템 선별 △보도 원고 작성 등 본래 정규직 국제부 기자들이 맡던 업무다.

부당해고 구제신청 사건에서 해당 작가를 법률대리했던 김유경 노무법인 돌꽃 노무사는 “기본적으로 ‘이 시각 세계’ 코너 담당자의 업무는 뉴스투데이 간판 아침종합프로그램 업무로, 십수년째 이어져온 명백한 상시·지속 업무다. 기간제 비정규직을 쓸 필요가 없는 자리”라고 지적했다. 김 노무사는 “회사는 ‘1년 기간제 채용’이 법적으로 문제 없다는 입장이겠지만, 정규직 근로자의 업무로 법원에서 인정 받은 일을 언제라도 ‘1년 쓰고 버릴’ 여지가 있는 1년짜리 불안정 일자리로 만든 것은 종합적으로 문제가 크다”고 했다.

방송작가가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일하다 건강 악화로 퇴사한 상황에서 신입 방송작가에게 새벽 근무를 몰아주는 점도 문제다. MBC가 열악한 처우로 차별을 둔 직군(방송지원직)을 신설한 조치가 이후 노동권 문제를 반복 재생산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국언론노동조합 방송작가지부(방송작가유니온)는 2020년 7월14일 오후 서울행정법원 앞에서 문화방송의 뉴스투데이 방송작가 부당해고 사건 행정소송 1심 선고 이후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김예리 기자
▲전국언론노동조합 방송작가지부(방송작가유니온)는 2020년 7월14일 오후 서울행정법원 앞에서 문화방송의 뉴스투데이 방송작가 부당해고 사건 행정소송 1심 선고 이후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김예리 기자

MBC는 공고 지원조건에 작은 글씨로 “본 채용은 근로기준법 70조1항 야간근로 동의자만 지원 가능하다”고 밝혔다. 근로기준법 해당 조항은 ‘사용자가 18세 이상 여성을 오후 10시~오전 6시까지 시간이나 휴일에 근로시키려면 그 근로자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고 못박고 있다. 김 노무사는 “회사가 이 자리의 노동자를 1년 단위로 바꿔 쓴다고 하면, 어렵고 건강에 나쁜 일을 돌려가면서 쓰겠다는 것으로 이 또한 문제”라고 했다.

MBC ‘뉴스투데이’ 작가들은 2020년 MBC로부터 해고를 당한 뒤 법적 다툼 끝에 부당해고를 인정받고 2년여 만에 복직했다. 그러나 MBC가 복직 과정에서 이들을 ‘직원’으로 포함시키지 않고 ‘방송지원직’ 직군을 이례적으로 신설하고 이들을 배치했다. 방송작가들은 연봉제와 일방적 인사평가 등을 적용받으면서 승급·승진봉쇄 등 처우 차별을 겪고 있다. MBC차별없는노조는 이들을 비롯한 작가들이 ‘방송지원직 철폐’를 내걸고 만든 노조다.

MBC는 24일 신규 직원을 또다시 비정규직으로 채용하는 이유에 대한 질문에 답변하지 않았다. 다만 “뉴스투데이팀 소속 방송지원직 가운데 일부가 야간근무를 원치 않음에 따라 순환 근무가 불가능해진 상황에서 주요 코너의 유지를 위해 불가피하게 신규 채용을 진행하게 됐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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