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시청자위원회에서 보도국 방송작가의 부당해고 주장에 대한 사측 대처를 질타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지난달 MBC는 부당해고된 방송작가 2인을 복직시키라는 중앙노동위원회 판정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앞서 2011년부터 MBC ‘뉴스투데이’에서 일하다 지난해 계약해지 통보를 받은 작가들은 부당해고를 당했다며 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을 냈다. 서울지방노동위원회는 이를 각하했으나, 중앙노동위원회는 지노위 판정을 뒤집어 부당해고를 인정했다. MBC는 중노위 판정을 따르는 대신 이행강제금을 부담하며 법원의 판단을 구하는 방안을 택했다.

MBC가 17일 공개한 5월 시청자위 회의록(서면 회의)에 따르면 정수경 시청자위원(민주언론시민연합 정책위원)은 “공영방송을 자임해온 MBC가 행정기관의 ‘노동 존중’ 권고를 거부하고 소송을 결정한 데에 대해 실망감을 감출 수 없다”며 “이것이 과연 공정과 객관을 지키고 공익적 책무를 다하겠다는 MBC의 약속에 부합하는 일인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정수경 위원은 “20년 전 MBC 작가실을 지켰던 한 사람으로서 그때와 별반 달라지지 않은 MBC의 태도가 서글프기만 할 뿐”이라면서 방송사가 방송작가의 노동을 대하는 태도를 꼬집었다. 정 위원은 과거 방송작가로 일하며 ‘MBC스페셜’ ‘PD수첩’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등 MBC의 간판 시사교양 프로그램 제작에 참여한 바 있다. 이후 독립프로덕션을 설립해 다큐멘터리 등을 만들다 미국 유학길에 올랐고, 현재는 미디어 관련 분야 학자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의견서에서 방송사 개국이 잇따랐던 1990년대 이후 아이템 선정과 취재, 섭외, 촬영 스케줄 조정, 홍보 등 업무가 방송작가에게 떠넘겨지게 된 구조를 지적했다. 1999년 마산MBC에서는 방송작가들이 최초로 노동조합을 결성해 단체교섭을 요구했으나 법정다툼에서 사측 승소가 이어지면서 상고를 포기했다. 20년이 흐른 지금까지 방송작가에 대한 근로자성 인정 문제는 사회적 과제로 남아 있다.

정 위원은 “마산MBC 사건이 중노위까지 회부되고 방송작가의 노동자성 문제가 쟁점으로 불거지자 서울의 방송사들은 부랴부랴 작가들의 책상을 치우고 공채 제도를 없애며 작가들이 수행해온 ‘노동’의 흔적을 지우려 애썼다. MBC 본사도 예외가 아니었다”고 주장하면서 “20년 전 MBC 작가실을 지켰던 한 사람으로서 그때와 별반 달라지지 않은 MBC의 태도가 서글프기만 할 뿐”이라고 했다.

▲방송작가유니온(언론노조 방송작가지부)은 지난 3월 서울 상암동 MBC 사옥 앞에서 방송작가 근로자성 인정을 주장하는 1인 시위를 진행했다. 사진=미디어오늘
▲방송작가유니온(언론노조 방송작가지부)은 지난 3월 서울 상암동 MBC 사옥 앞에서 방송작가 근로자성 인정을 주장하는 1인 시위를 진행했다. 사진=미디어오늘

이어 “MBC의 결정을 이해 못 하는 바는 아니다. 이번 중노위의 판정을 받은 작가들은 보도국 소속이긴 하지만 이들을 노동자로 인정하는 선례를 남기면, MBC에서 일하는 수백 명의 작가뿐만 아니라 수많은 비정규직 방송 노동자들을 모두 직접 고용해야 할 상황에 처할 수 있고, 결국 현재의 제작 시스템으로는 이 문제를 감당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렸을 것으로 미루어 짐작한다”고 말한 뒤 “그러나 이는 방송작가를 정당한 생산 주체가 아니라 여전히 예산서 상의 비용으로만 바라보고 있다는 점에서 시대착오적”이라 꼬집었다.

정 위원은 또한 “공영방송 운영의 실천적 기준으로서 가져야 할 책무는 단순히 방송 콘텐츠에 공익성, 공정성을 담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방송조직의 운영과 경영의 민주성, 시청자에 대한 ‘설명 책임’을 지는 데까지 이르러야 할 것”이라며 “이제라도 행정소송을 철회하고 중노위의 결정 사항을 받아들일 것을 요청한다. 또한 방송작가를 비롯해 비정규직 방송 노동자의 차별적 고용 관행을 개선하기 위해 구체적인 노력을 보여줄 것을 요청한다”고 밝혔다.

이에 박건식 MBC 공영미디어국장은 “소중한 의견에 감사드린다”면서도 “제기해주신 문제는 현재 소송 중인 사안이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방송 편성이나 방송 내용과는 직결되지 않는 방송 경영에 관한 사안으로 방송 경영에 관한 사안은 방송문화진흥회법에 따른 방송문화진흥회의 관리 감독을 받고 있다. 따라서 제기해주신 질의는 방송법 88조에 규정된 법령에서 벗어난 사안으로 판단돼 답변드리기 어렵다는 점을 양해해 주시면 감사하겠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박 국장은 “해당 법령에 의거, 위원님께서 주신 질의나 의견에 대해 답변을 드리지는 못하지만 제기해주신 의견의 취지를 충분히 살펴보고 고민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방송법 제88조는 시청자위원회의 권한·책무로 △방송 편성에 관한 의견제시 또는 시정요구 △방송사업자의 자체심의규정 및 방송프로그램 내용에 관한 의견제시 또는 시정 요구 △시청자평가원의 선임 △그밖에 시청자 권익 보호와 침해구제에 관한 업무 등을 규정하고 있다. 방송법상 시청자위가 관할하는 영역에 방송사 내부 고용 문제가 포함되지 않는다는 설명은 사실이다.

다만 방송사 비정규직 문제가 사회적인 이슈로 떠올랐고, 방송사 내부의 고용관행을 돌아봐야 한다는 요구가 잇따르는 것 또한 사실이다. 외부의 기관·기업을 향한 잣대를 방송사 스스로도 적용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실제 최근 KBS 시청자위원회에서도 이 같은 지적이 제기됐다. 3월 KBS 시청자위원회에서 최근 KBS 뉴스의 노동의제 발굴을 호평하는 동시에 “KBS 또한 방송사로서 복잡한 원·하청 구조라든지 외주제작사와 관계에서 노동법상 문제에 자유로울 수 없다” “노동인권 존중 여부, 과거 임금체불 전력을 살펴보면서 열악한 근로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고 외주제작사에 대한 불공정한 KBS 관행이 반복되지 않도록 근본 대책을 강구했으면 한다”는 당부가 나왔다.

당시 임병걸 KBS 부사장은 “저희 권한을 넘어가거나 통제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있지만 말씀하신 대로 원청업체로서 최대한 이런 부분들이 일어나지 않도록 포괄적으로 들여다보고 가이드라인 같은 외주제작사 지도를 꾸준히 해나가고 있다”며 “저희도 이 문제를 다른 어떤 문제보다 중요한 문제로 생각해 독립제작사 외주제작사, 비정규직, 파견직 부분에 신경을 쓰고 있다”고 답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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