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2월4일, ‘무늬만 프리랜서’ CJB청주방송 고 이재학 PD의 죽음으로 ‘계약서 한 장’ 쓰지 못하는 미디어 노동자 실태가 떠올랐다. 4년이 흐른 지금 비정규직 당사자들이 법적 다툼과 노동조합 가입 시도 등으로 권리를 찾으려 나서고 있다. 이 과정에서 정규직 노동조합의 외면은 논쟁적 화두다. 이는 때로 사측이 비정규직 노동권 개선 요구를 거부하는 핑계로 활용되고, 전국언론노동조합 산하 지부가 비정규직 노동자의 권리다툼을 가로막는 사례도 드러났다. 언론노조가 이 같은 반노동행위를 제재할 것을 촉구하는 연서명도 진행 중이다.

미디어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연대를 시도한 사례도 드물지만 존재한다. 지난해 언론노조 EBS지부의 청소노동자 연대투쟁이 일례다. 외주(비정규직)와 재직(정규직) 노동자가 함께 가입한 서울경기지역출판지부는 ‘모든 조합원은 평등하다’는 강령과 조합원의 반노동행위를 징계할 수 있도록 한 규약을 신설했다.

미디어오늘은 정규직·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미디어자본을 상대로 함께 싸우기 위한 실마리를 모색하고자 지난 15일 집담회를 진행했다. 김원중 언론노조 서울경기지역출판지부 사무국장(북디자이너), 김태봉 언론노조 EBS지부 부지부장(촬영감독), 박명수 언론노조 MBC방송차량서비스지부장(방송차량기사), 익명을 요구한 공공운수노조 희망연대본부 방송스태프지부 조합원 정현정(가명) 작가 등이 참여했다. - 편집자 주

- 먼저 어떤 일을 하고, 어떻게 노동조합 활동을 하게 됐는지 소개해 달라.

김태봉 “2010년 입사해 야외와 스튜디오 촬영을 담당한다. 정규직으로 입사함과 함께 전국언론노동조합 EBS지부 조합원이었다. 지난해 휴직 뒤 복직하는 과정에서 선배의 제안으로, 직군별 부지부장 6명 중 1명을 맡고 있다.”

▲김태봉 언론노조 EBS지부 부지부장. 사진=정철운 기자
▲김태봉 언론노조 EBS지부 부지부장. 사진=정철운 기자

정현정 “2006년부터 19년째 방송사에 시사·교양프로그램을 납품하는 외주제작사 방송작가로 일하고 있다. 선배 작가 제안으로 희망연대노조 방송스태프지부에 가입했다. 작가가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 독립 PD나 종편(종합편집)부터 촬영까지 다른 스태프들이 다 같이 힘을 모을 때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더라.

김원중 “2015년부터 출판사에서 재직(정규직) 북디자이너로 3~4년 일했다. 어느 업계에서 일하든 노조를 해야겠다고 생각해 왔기에 서울경기출판지부에 가입했다. 출판사는 5인 미만인 경우가 많은 상황이라, 서경출판지부엔 외주노동자와 재직노동자, 독립출판 노동자들이 함께 속해있다.”

박명수 “건설회사 경영난으로 퇴사했을 때 40대 중반이었다. 이력서를 조금 보태 한 100군데 정도 넣었는데 한 곳도 붙지 않더라. OBS에 들어가 처음 운전직을 했다. 국회 출입 취재차량 운전을 하다 보니 지상파 3사 처우가 그래도 낫더라. 2011년 MBC에 왔고, 분회장(현재는 지부장)을 맡아달라는 조합원들 제안을 받아들여 올해 5년째다.”

“비정규직 없이 방송도 책도 못 만드는 지경”
“우리도 언론인, ‘방송하는 사람’ 인정했다면”

- 각자 일하는 분야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어떻게 섞여 일하나. 정규직 노동자가 일상에서 함께 일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를 대하는 태도는 어떤가.

정현정 “본사(방송사) 직원, 즉 정규직 노동자가 우리의 사용자다. 아이템 선정부터 촬영 내용, 방송 직전 시사까지 모든 일이 정규직 PD의 지휘 아래 이뤄진다. 정규직 직원의 판단에 따라 외주제작사의 계약이 날아가고, 특정 외주사 직원을 잘랐으면 좋겠다고 은연중에 밝히는 분들도 아직 있다. 월급은 외주제작사에서, 업무 지시는 원청 방송사에서 받는 셈이다.”

박명수 “보도국에선 45명의 취재 차량 기사가 순번에 따라 취재 현장에 나간다. 카메라 기자와 취재기자, 오디오맨과 4명이 간다. 차량 기사 전원 조합원이다. 2011년 79명이던 인원이 지금은 45명이다. 도급업체가 바뀌는 2년마다 우리는 신입사원이다. (정규직 노동자들이) 대놓고 갑질하는 경우는 이제 거의 없다. 우리 앞에서는 웃으면서 ‘형님들 많이 힘드시네요’ 이야기한다. 그런데 우리 조합원들이 일정을 다녀오면 하는 얘기가 있다. 본사 복도에서 마주치면 기자가 모른 척하고 슥 지나간다는 것이다. 오전에 (기자와 현장에서) ‘형님, 동생’ 하면서 점심을 먹고서 오후에 회사에선 고개를 돌린다. 그래서 조합원들이 마음에 좀 상처를 입는다.”

▲6면_박명수 언론노조 MBC차량서비스지부장. 사진=정철운 기자
▲6면_박명수 언론노조 MBC차량서비스지부장. 사진=정철운 기자

정현정 “(놀라며) 왜인가?”

박명수 “굳이 아는 체할 필요 없다고 여기는 것 같다.”

김태봉 “스튜디오든 야외든 촬영 나가면 제작진 중 정규직이 나와 PD밖에 없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는 PD도 프리랜서라 정규직은 나 혼자일 때도 종종 있다. 정규직(촬영 담당)들끼리는 ‘밥 먹자고 할 수 있는 사람이 우리뿐이다’라고 얘기한다. 무슨 말이냐면, 파견직 부사수와 조연출, 프리랜서 작가와 차량 기사님까지 모두 비정규직이고 PD는 사용자 노릇을 하는 상황에서 PD에게 대등하게 말할 사람이 우리밖에 없다는 거다. 가까운 프리랜서 촬영 감독들이 ‘우리끼리 나가면 많이 힘들다’고 말도 한다.”

▲ⓒist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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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중 “출판업계는 교재를 빼고 일반 단행본 기준, 시중 도서의 3분의2 정도를 외주노동자 없이 만들 수 없는 지경이다. 출판사가 정말 불가피한 필수 인력이 아니면 다 외주를 주는 상황이다. 신규채용은 줄여 올해 출판사 구직광고가 구인광고보다 많아지는 역전 현상이 일어났다. 출판사가 인건비 줄이는 방식으로 수익을 내기 때문이다. 외주노동자를 관리하는 직원이 정규직이니, 작업비 단가나 지급일 문제로 마찰이 일어난다. 사장이 작업비 지급을 거부하면 재직노동자가 회사 입장을 전달해야 한다. 외주 노동자 포함해 출판계엔 성희롱 성폭력, 갑질, 스토킹 문제도 비일비재하다. 상급 직원이 남성 권력을 이용해 3년차 이하의 저연차 여성 편집자를 타깃으로 삼는 경우가 많다.”

-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모여 회사에 노동권 개선을 요구하면 어떤 어려움과 저항을 겪나. 언론노조 MBC방송차량서비스지부는 지난해 MBC의 인원 축소에 저항해 ‘면접 거부’ 뜻을 모았다.

박명수 “지부가 도급업체를 상대로 하는 임금협상이 쉽지 않다. MBC는 대다수의 경우 최소비용을 써낸 업체를 낙찰하고, 업체는 첫 낙찰 금액으로 2년 내내 운영한다. 업체 입장에서도 도박이다. 내후년 최저임금 인상률도 모르는 데다, 대형 참사가 나면 늘어나는 출장비와 추가근로수당도 도급업체가 감당한다. 답은 원청 MBC가 마인드를 넓혀 생활임금을 써낸 업체를 선정하는 거라고 본다. MBC 경영진과 만나 우리가 느끼는 불합리함을 소통하고 싶은데 그게 되지 않고 있다. 언론노조 MBC본부든 경영진이든 직책이 낮은 이가 ‘방법을 찾아보겠다’고는 얘기하지만 (회사나 노조 내) 실권자가 아니기에 도움은 잘 안된다.”

- MBC나 EBS와 같은 공영방송사의 경우 정권이 바뀌면 경영진이 바뀌기도 한다. 경영진에 따라 비정규직 노동자를 대하는 회사 태도가 달라졌나.

정현정 “똑같다. 사람들이 그걸 모르는 것 같다. 방송사 입장에서는 정권에 따라 회사 압박을 받기도, 칭찬받기도 하지만 비정규직은 정권과 상관없이 (회사의) 핍박을 받는다. 이번에 MBC와 KBS 경영진이 밀고 들어와 갑자기 프로그램이 폐지되고 PD와 작가들이 일자리를 잃는 걸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정권이 하면 나쁘고, 방송사가 하면 안 나쁜가?’ 보수 정권이 들어설 때 받는 핍박을, 회사는 매일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하고 있다.”

“정규직·남성·대형방송사 중심의 노조”
“여성 많은 업계인데…이상하지 않나”

▲김원중 언론노조 서울경기지역출판지부 사무국장. 사진=정철운 기자
▲김원중 언론노조 서울경기지역출판지부 사무국장. 사진=정철운 기자

- 미디어 업계에 종사하는 비정규직·프리랜서가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미디어 자본이 그 비중을 늘리는 상황에서 언론노조 운동 방향에 대한 비판도 나오고 있다. 언론노조가 비정규직 문제를 대하는 태도는 어떻다고 느끼나.

김원중 “언론노조 대의원대회 회의장에 들어서는 순간 숨이 막힐 것 같다. 소위 아저씨들이 정말 많다. 정규직 남성 중심이고, 방송사 사업장 3곳이 딱 보인다. 출판의 경우 80%가 여성이라 업계 분위기가 정말 다르다. 방송업계도 결코 남초라 볼 수 없다. 여성이 많은 업계다. 대의원으로 활동하는 이들 면면을 보며 노동조합 안에서 여성이나 비정규직이 목소리를 내는 데 답답함이 있겠다고 생각했다.”

2월 현재 언론노조 대의원 208명 가운데 여성 비율은 20% 가량이다. 지난해 방송산업실태조사 보고서를 보면 프리랜서를 제외한 방송산업 종사자 중 여성은 38%다. 지난해 방송통신위원회 용역연구 결과에 따르면 지상파 방송사 13곳의 비정규직·프리랜서 9199명 중 여성은 55%다. 범위를 프리랜서로 좁히면 여성이 79%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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