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지역언론이 위기라고 말한다. 지방분권시대라고 하지만 지역언론의 역할은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지역이 소멸하고 있고 지역언론도 생사 갈림길에 놓여있다고 한다. 지역언론은 상시적인 인력부족에 시달리면서 변화하는 미디어 환경에 적응하기엔 턱없이 열악하다. 그럼에도 자생력을 잃지 않으며 새로운 시도에 나선 지역언론이 있다. 글을 못 읽는 시민이 신문을 읽고 공론장에 참여할 수 있게 하고, 더 많은 주민이 지역신문 독자이자 사회 일원이 될 수 있도록 힘쓴다. 미디어오늘은 ‘전국언론자랑’을 통해 지역에서 건강한 언론의 역할을 해나가는 지역언론을 소개한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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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라북도 진안군 지역신문 ‘진안신문’의 20대 신입기자 정도영 기자. 사진=윤유경 기자.

노인인구가 약 39%(1월 기준)인 전라북도 진안군 지역신문 ‘진안신문’엔 입사한 지 1년쯤 된 20대 신입 기자가 있다. 주로 어르신들을 취재하는 현장에서 “예끼 이놈!”이라는 반응을 듣곤 한다며 호쾌하게 이야기하는 정도영 기자다.

취재원 연령대가 높은 건 여전히 어렵지만 1년이 지난 지금 지역언론 기자는 그에게 즐거운 일이다. 지난 7일 진안에서 만난 정 기자는 “이젠 나와 연령대가 다른 사람들도 만나고,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 나눌 수 있어서 재밌다”며 “시골은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경향이 있어 서울에 가고 싶었는데 기자 일을 하다보니 나의 경험과 생각이 확장된 것 같다”고 전했다.

▲ 정 기자는 지난해 12월 연말마다 싣는 ‘올 한해가 특별했던 사람들’ 인터뷰에 진안신문 기자로서 한 해를 보낸 소감을 쓰기도 했다. 
▲ 정 기자는 지난해 12월 연말마다 싣는 ‘올 한해가 특별했던 사람들’ 인터뷰에 진안신문 기자로서 한 해를 보낸 소감을 쓰기도 했다. 

진안에서 초·중·고등학교를 나온 그는 취재를 하면서 진안이 더 애틋해졌다. “초등학생 때부터 지방소멸이란 말, 무주·진안·장수가 합쳐진다는 말이 있었다. ‘우리 지역에 사람이 많이 안 사는구나’ 하고 받아들여왔다. 그런데 지역신문 기자를 하며 지역 곳곳 사람이 살고 있다는 걸 알았다. 내 고장 진안이 더 애틋해지고 좋아졌다.” 정 기자는 지난해 12월 연말마다 싣는 ‘올 한해가 특별했던 사람들’ 인터뷰에 진안신문 기자로서 한 해를 보낸 소감을 쓰기도 했다. 

정 기자가 꼽은 진안신문의 최고 장점은 취재 자율성이다. 그는 “내가 국장이라면 저연차 기자이고 20대 초반에, 사회생활도 안 해본 친구가 겁 없이 취재한다고 하면 많이 걱정될 것 같다. 근데 국장과 대표는 그런 게 없다. 오히려 구체적으로 방안을 제시해 길을 터준다. 옆에서 동기부여도 해주고, 이정표 역할을 해준다. 단연 우리 신문사 제일 큰 장점”이라고 했다.

2006년부터 유료화 전환, ‘직접 취재하는 지역신문’이라는 자부심

진안신문을 창간한 김순옥 대표(무진장신문 대표)는 약 24년 간 지역신문에 몸담고 있다. 1999년 10월 용담댐 수몰 공사로 지역민들이 혼란스러웠던 시기, 진안에 제대로 된 신문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금산에서 지역신문을 만들던 동생과 함께 진안신문 창간에 나섰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김 대표는 ‘직접 취재한다’는 자부심을 잃지 않는다. 사소한 사실이라도 보도자료만 보고 쓰는 게 아니라 진짜 현장을 찾아 사람을 만난다는 점이 진안 군민들이 진안신문을 신뢰하는 이유라는 설명이다.

▲ 지난 7일 오전 진안신문 사무실을 찾은 미디어오늘과 인터뷰하고 있는 김순옥 진안신문(무진장신문) 대표. 사진=정도영 진안신문 기자.
▲ 지난 7일 오전 진안신문 사무실을 찾은 미디어오늘과 인터뷰하고 있는 김순옥 진안신문(무진장신문) 대표. 사진=정도영 진안신문 기자.

이런 자부심으로 진안신문은 2006년부터 일찍 온라인 기사 유료화를 택했다. 김 대표는 “진안은 인구가 적고 고령화돼 광고시장이 별로 없다. 처음부터 유료화를 해야만 승산이 있다는 걸 알았다. 나는 ‘진안군민이면 진안신문 한 부 구독은 의무다, 대신 구독료를 내는 만큼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하고 다닌다. 진안신문에 그만큼 알찬 정보가 실리는데, 군민 입장에서 구독하지 않으면 손해”라고 자부했다. 신문을 구독하면 온라인뉴스는 무료로 볼 수 있다. 

▲ 진안신문은 2006년부터 온라인 홈페이지 기사 유료화를 택했다. 진안신문 홈페이지에서 구독신청을 클릭했을 때 나오는 페이지 갈무리.
▲ 진안신문은 2006년부터 온라인 홈페이지 기사 유료화를 택했다. 진안신문 홈페이지에서 구독신청을 클릭했을 때 나오는 페이지 갈무리.

“기자는 항상 자부심을 가지고 자기 신문을 가지고 다녀야 한다.” 김 대표가 늘 기자들에게 강조하는 말엔 지역신문 기자로서 사명감과 자부심이 담겨있다. “기사는 독자가 읽어줄 때 가치가 있고, 기자는 내가 쓴 기사에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 한 달에 7000원인 진안신문의 정보를 활용하면, 7000만 원짜리 정보가 될 수 있다. 지역에서 여론을 확산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도 지역신문이 살아가려면 구독이 답”이라는 신념이다.

‘개발과 보존’ 갈등 속 진안…심층 연속 보도로 행정 위법 감시

최근 수년간 진안에선 개발과 보존을 둘러싼 갈등이 주요 의제로 떠올랐다. 진안신문 기자들은 특히 마이산 케이블카 관련 행정의 위법성을 감시한 연속보도를 꼽는다. 진안신문은 3~4년 간 군에서 문화재청과 환경청 허가 없이 수십 억을 들여 마이산에 케이블카를 지으려 하는 사실을 알렸고, 결국 케이블카 설치가 무산됐다. 이 과정에서 군과 산하 기관이 1년여간 광고를 끊고 압박했다. 그럼에도 진안신문은 군수의 이해관계 충돌 문제를 계속 조명해 이후 벌어진 부당한 인사개입, 선거법 위반 등을 밝혔다. 진안신문은 행정 권력 집중 감시 보도로 2019년 전북민주언론시민연합 민주언론상을 수상했다.

▲ 지난 8일 오전 마이산 삿갓봉에 올라 케이블카 설치 논란을 설명하는 류영우 편집국장. 사진=윤유경 기자.
▲ 지난 8일 오전 마이산 삿갓봉에 올라 케이블카 설치 논란을 설명하는 류영우 편집국장. 사진=윤유경 기자.

이 밖에 진안신문은 진안군의회 보고 없이 추진된 진안IC-북부마이산 연결도로 추진 논란, 산사태 발생 장소 인근에 태양광사업 개발행위허가를 내 준 진안군의 잘못된 행정, 상수도 보호 구역인 용담호 개발 문제 등 보존과 개발 사이에서 추진되는 정책들이 올바른 길로 가고 있는지 감시해왔다.

“전북특별자치도가 되면서 많은 권한이 정부에서 도로 넘어갔다. 환경부를 거쳐 걸러야 할 문제들이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상황이다. 당장 케이블카 설치가 무산된 마이산에 모노레일을 설치한다는 얘기도 나온다. 진안신문에서 지속적으로 감시해야 할 부분이다.”(류영우 편집국장)

전북풀뿌리언론운동연대 통한 지역신문 연대, 장수신문 창간도

늘 ‘생존이냐 소멸이냐’ 갈림길에 선 소규모 지역신문은 외롭다. 대표, 편집기자, 편집국장, 취재기자 총 4명 뿐인 진안신문이 고민을 나누고 정보를 교류할 상대도 마땅치 않다. 이에 전북에서 건강한 지역언론을 목표로 하는 지역신문들의 연대체를 만들었다. 2016년 설립된 ‘전북풀뿌리언론운동연대’엔 전북민언련을 중심으로 부안독립신문, 김제시민의신문, 열린순창, 진안신문, 주간해피데이, 무주신문 등이 참여하고 있다. 지역을 홀대·차별하는 사회 제도, 지역을 왜곡시키는 잘못된 관행을 없애고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활동을 하고 있다. 

▲ 미디어오늘이 진안신문을 찾은 지난 7일 오전 류영우 국장은 무주신문, 진안신문, 장수신문, 완주신문이 참여하는 4·10 총선연대 보도 기획 회의를 진행했다. 왼쪽부터 유범수 완주신문 기자, 류영우 진안신문 기자, 이진경 무주신문 기자. 사진=진안신문 제공.
▲ 미디어오늘이 진안신문을 찾은 지난 7일 오전 류영우 국장은 무주신문, 진안신문, 장수신문, 완주신문이 참여하는 4·10 총선연대 보도 기획 회의를 진행했다. 왼쪽부터 유범수 완주신문 기자, 류영우 진안신문 기자, 이진경 무주신문 기자. 사진=진안신문 제공.

미디어오늘이 진안신문을 찾은 지난 7일 오전에도 류 국장은 무주신문, 진안신문, 장수신문, 완주신문이 참여하는 4·10 총선연대 보도 기획 회의를 마치고 왔다. 함께 예비후보를 인터뷰하고, 주민들이 바라는 정책을 제안하며 공동으로 지면에 담는 시스템이다.

“진안신문엔 기자가 두 명 밖에 없어서 다른 취재를 병행하며 총선 취재도 하는 게 쉽지 않다. 네 개 신문사에서 연대를 하면 인력적으로도 도움 되고, 혼자하기보다 함께 모여서 하니 새로운 아이디어도 얻을 수 있다. 이런 연대가 지역신문에서 힘들게 일하는 기자들에게 숨통을 틔워준다.”(류영우 국장)

▲ 미디어오늘이 진안신문을 찾은 지난 7일 오전 류영우 국장은 무주신문, 진안신문, 장수신문, 완주신문이 참여하는 4·10 총선연대 보도 기획 회의를 진행했다. 왼쪽부터 유범수 완주신문 기자, 류영우 진안신문 기자, 이진경 무주신문 기자. 사진=진안신문 제공.
▲ 미디어오늘이 진안신문을 찾은 지난 7일 오전 류영우 국장은 무주신문, 진안신문, 장수신문, 완주신문이 참여하는 4·10 총선연대 보도 기획 회의를 진행했다. 왼쪽부터 유범수 완주신문 기자, 류영우 진안신문 기자, 이진경 무주신문 기자. 사진=진안신문 제공.

2020년엔 전북 장수군에 장수신문을 창간했다. 인구 감소로 무주·진안·장수가 결국 하나로 통합될 수밖에 없다는 생각에 김순옥 대표는 애초 법인을 ‘무진장신문’으로 만들었고, 처음엔 무주·진안·장수신문을 따로 만들었다가 경영난으로 중단했다. 그러다 장수에 제대로 된 지역언론이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다시 장수신문을 창간했다. 현재는 3명의 기자가 취재에 더해 군민 대상 기자양성 교육을 진행하는 등 장수에서 건강한 지역언론의 역할을 해내고 있다.

‘소외된 사람들의 목소리로 지역 바꿔’ 진안신문이 말하는 지역언론 역할

언론의 가장 중요한 역할을 비판과 감시라고 하지만, ‘소외된 사람들의 목소리를 비중있게 담는 것’도 언론이 해야 하는 공적 역할이다. 진안신문 기자들이 ‘신변잡기 글’이라는 반발에도 할머니와 아이들의 글을 꾸준히 실어 온 이유다. 초반엔 한 학교 교장이 맞춤법도 틀린 글을 싣는다고 진안신문 구독료를 내지 않겠다고 한 적도 있었다. 김순옥 대표는 교장에게 ‘유명한 사람의 글만 글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이분들도 우리 주민이고, 이분들의 생각이 담긴 소중한 글이다. 진안신문은 이분들의 신문도 되어야 한다. 난 당신의 구독료를 포기하겠다’고 말한 일화를 전했다.

“처음 할머니 글을 싣기 시작했을 때, 80세가 넘는 어르신이 신문사를 찾아왔다. 얼마나 망설였으면 꼬깃꼬깃해진 종이를 호주머니에서 꺼냈다. 종이에 적힌 시와 어르신 사진을 신문에 실어드렸다. 틀려도 좋고 부족해도 좋다. 기사라는 건 진실성이 중요하다. 발달장애 아이들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잘난 사람만 더 잘살지 않게, 정의로운 사회를 만드는 게 지역언론의 역할이다.”(김순옥 대표)

▲ 지난 7일 전라북도 진안군 동향면에서 진행되는 류영우 진안신문 편집국장의 할머니 글쓰기 수업에서 만난 최한순 할머니의 글. 사진=윤유경 기자. 
▲ 지난 7일 전라북도 진안군 동향면에서 진행되는 류영우 진안신문 편집국장의 할머니 글쓰기 수업에서 만난 최한순 할머니의 글. 사진=윤유경 기자. 

작은 지역에서 변화를 일으켜 더 큰 물결이 만들어지는 모습은 류 국장이 지역언론 기자로 일할 수 있는 원동력이다. 그는 보이지 않던 목소리가 전달될 때 지역은 바뀐다고 말한다. “아이들, 어르신들이 그들의 생각을 세상에 마음껏 전했으면 좋겠다”며 “그들의 글은 지역을 바꾸는 힘”이라고 했다. 

진안신문은 공정한 보도를 위해 좀더 소외된 사람들의 곁에 서는 언론을 지향한다. “신문은 중립적이어야 한다고 하는데, 공정한 게임을 하려면 결코 중립적이면 안 되는 경우가 많다. 군과 일반 주민들이 대립할 땐, 군은 입장을 전할 통로가 충분한데 일반 주민들은 호소할 곳이 없다. 그때 신문이 주민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실어줄 때 대등한 싸움이 될 수 있다. 아무도 들어주지 않았던 주민들의 목소리를 함께 담고, 목소리에 힘이 실릴 수 있게 하는 역할이 지역신문 기자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그때 지역에서 해결할 수 있는 다양한 길이 생긴다.”(류영우 국장)

지방소멸로 사라지고 있는 지역의 작은학교를 심층취재하고 싶다는 정도영 기자는 2024년 목표를 ‘내 기사로 지역에 변화 만들기’로 세웠다. 정 기자는 “언론이 비판과 감시의 기능이 1번이지만, 진안신문엔 지역민들의 소소한 이야기가 있다. 진안신문에 오기 전까진 언론이 이런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걸 전혀 몰랐다. 이들의 이야기를 담아 내 기사로 지역에 변화가 온다면 뿌듯할 것 같다. 올해는 꼭 경험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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