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지역언론이 위기라고 말한다. 지방분권시대라고 하지만 지역언론의 역할은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지역이 소멸하고 있고 지역언론도 생사 갈림길에 놓여있다고 한다. 지역언론은 상시적인 인력부족에 시달리면서 변화하는 미디어 환경에 적응하기엔 턱없이 열악하다. 그럼에도 자생력을 잃지 않으며 새로운 시도에 나선 지역언론이 있다. 글을 못 읽는 시민이 신문을 읽고 공론장에 참여할 수 있게 하고, 더 많은 주민이 지역신문 독자이자 사회 일원이 될 수 있도록 힘쓴다. 미디어오늘은 ‘전국언론자랑’을 통해 지역에서 건강한 언론의 역할을 해나가는 지역언론을 소개한다. -편집자주

▲ 미디어오늘이 지난 7일 전라북도 진안군 동향면에서 진행되는 류영우 진안신문 편집국장의 할머니 글쓰기 수업을 동행했다. 수업에서 만난 정이월 할머니가 직접 쓴 글을 읽고 있다. 사진=윤유경 기자.
▲ 미디어오늘이 지난 7일 전라북도 진안군 동향면에서 진행되는 류영우 진안신문 편집국장의 할머니 글쓰기 수업을 동행했다. 수업에서 만난 정이월 할머니가 직접 쓴 글을 읽고 있다. 사진=윤유경 기자.

2011년 8월 전라북도 진안군 동향면 학선리에 사는 정이월(당시 74세)씨가 여름날 버스를 놓친 이야기를 글로 써냈다. 정 씨가 쓴 글은 진안군 지역신문 ‘진안신문’에 <사람 태우지 않는 버스>란 제목으로 실렸다. 진안 가장 외곽에 위치한 동향면엔 버스가 한쪽에서만 선다. 맞은편 버스 승차장에 버스가 온 것을 본 정 할머니가 뛰어나갔지만 버스가 그냥 지나가버렸다. 하루에 두 번 오는 버스다.

“사람 태워라” 소리치며 쫓아가던 정씨를 본 봉곡댁도 밭일하다 쫓아가고, 김생년 할아버지도 소리쳤지만 버스는 떠났다. 보도 이후 버스 회사는 고소하겠다 으름장을 놨지만, 봉곡댁 증언과 진안군 조사로 진실이 밝혀져 버스 회사가 결국 사과했다. 정씨는 당시 기사에서 “버스가 왜 사람을 안 태우고 가? 나뿐사람이지, 어찌 그럴수가 있을까?”라고 썼다.

미디어오늘이 진안신문 사무실을 찾은 지난 7일 정오께 류영우 진안신문 편집국장은 바쁘게 발길을 옮겼다. 매주 수요일 점심은 동향면에서 할머니 글쓰기 수업을 하는 날. 평생 글을 익힐 기회가 없었던 노인 여성들이 한글을 배운다. 진안신문은 이들이 쓴 글을 그대로 신문에 실어 스스로 공론장에 목소리를 낼 수 있게 한다.

▲ 미디어오늘이 지난 7일 전라북도 진안군 동향면에서 진행되는 류영우 진안신문 편집국장의 할머니 글쓰기 수업을 동행했다. 류영우 국장(왼쪽)과 배덕임 할머니. 사진=윤유경 기자.
▲ 미디어오늘이 지난 7일 전라북도 진안군 동향면에서 진행되는 류영우 진안신문 편집국장의 할머니 글쓰기 수업을 동행했다. 류영우 국장(왼쪽)과 배덕임 할머니. 사진=윤유경 기자.

2007년 류 국장이 충청북도 옥천신문에서 근무할 때부터 시작한 글쓰기 수업은 햇수로 18년째다. 진안신문으로 오면서 그는 2009년 동향면 할머니들과 한글 수업을 시작했다. 30대에 수업을 시작한 류 국장이 50대가, 60대였던 할머니들은 80대가 됐다. 그간 세상을 떠나거나 요양병원에 간 학생들도 많다. 현재 동향면 학생 수는 총 5명, 화요일 마령면 글쓰기 수업 학생 수는 7명 정도다.

류 국장은 당시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제도를 보며 글쓰기 수업을 하기로 결심했다. 류 국장은 “지역에선 ‘모든 시민은 기자다’라는 말에서도 더 소외되는 사람들이 있다. 글 모르는 할머니, 아이들 등은 공론장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다. 이들 목소리를 지면에 담아보자는 생각으로 할머니, 청소년, 외국인 주부 등과 함께 글쓰기 수업을 하고 지면에 글을 싣기 시작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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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안신문 2월5일 지면 7면. 어울림 코너에 할머니들의 글이 실려있다.

글을 몰라 신문을 읽을 수 없던 여성 노인들은 글쓰기 수업을 통해 지역신문 기자가 됐다. 이들의 글은 매주 진안신문 7면 ‘어울림’ 코너에 실린다. 글을 모른다는 창피함에 처음엔 한두 줄 쓰기도 힘들었던 할머니들이 앉은 자리에서 A4 한 장을 거뜬하게 써낸다. 류 국장은 ‘맞춤법 신경쓰지 말고 자신있게 쓰자’, ‘하고싶은 말을 세상에 전하자’는 수업 철칙으로 할머니들을 가르치고 있다. 할머니들이 바라본 세상 이야기는 지역사회를 바꾸는 힘이 됐다.

글 배울 기회 없던 노인 여성들…지역신문에서 목소리 찾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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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7일 전라북도 진안군 동향면에서 진행되는 류영우 진안신문 편집국장의 할머니 글쓰기 수업에서 만난 배덕임 할머니(왼쪽)와 권정이 할머니. 사진=윤유경 기자.

사무실에서 차로 30분 걸려 도착한 동향면에 들어서자마자 류 국장이 버스정류장에 나란히 앉아있던 할머니 두 분을 차에 태워 이동했다. 동향면의 교회 옆 작은 공간엔 할머니들의 글쓰기 교실이 마련돼 있다. 이번주 숙제는 ‘올해 반드시 이뤄야할 것’. 할머니들은 저마다 공책 한 장씩을 꽉 채워왔다.

정이월씨는 선생님에게 편지를 썼다. “2024년 새해가 밝았는데 왜 내 몸은 더 아플까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인생인 것 같아요. (...) 선생님이 잘 가르쳐주셔서 신문에 글도 냈고 시낭송도 해보고 감사합니다. 내 마음엔 더 많이 하고싶은데 할 수가 없으니 안타깝씁니다.” 정씨가 빼곡하게 쓴 글을 한 자 한 자 천천히 읽어 내려간다.

▲ 지난 7일 전라북도 진안군 동향면에서 진행되는 류영우 진안신문 편집국장의 할머니 글쓰기 수업에서 만난 정이월 할머니가 선생님에게 쓴 편지를 읽고 있다. 사진=윤유경 기자.
▲ 지난 7일 전라북도 진안군 동향면에서 진행되는 류영우 진안신문 편집국장의 할머니 글쓰기 수업에서 만난 정이월 할머니가 선생님에게 쓴 편지를 읽고 있다. 사진=윤유경 기자.

할머니들의 글은 매주 지면과 온라인에 실린다. 배덕임(85)씨 글은 팔순이 되던 해 자녀들이 모아 책으로 출간했다. 권정이(81)씨 아들은 진안신문 기사를 보고 댓글을 단다. 한 주라도 기사가 안 올라오면 어디 아픈가, 무슨 일 있나 전화가 온다. 처음 글쓰기 수업을 시작했을 때 류 국장에게 ‘경남 진주’를 써달라던 한 할머니는 글씨를 보곤 한참을 울었다. 그는 ‘글씨만 알았어도 버스를 타고 엄마에게 가는데, 저 글씨를 몰라 이 나이가 되도록 친정에 못갔다’며 울었다. 노인 여성들에겐 글을 몰라 한이 된 이야기들이 많고도 많다.

▲ 미디어오늘이 지난 7일 전라북도 진안군 동향면에서 진행되는 류영우 진안신문 편집국장의 할머니 글쓰기 수업을 동행했다. 사진=윤유경 기자.
▲ 미디어오늘이 지난 7일 전라북도 진안군 동향면에서 진행되는 류영우 진안신문 편집국장의 할머니 글쓰기 수업을 동행했다. 사진=윤유경 기자.

그렇게 목소리를 낸 할머니들이 진안을 바꾸기 시작했다. 오전 9시 반, 오후 4시 반 두 번뿐이었던 동향면 버스에 오후 2시 버스가 하나 더 있어야 한다는 기사를 썼더니 2시 버스가 생겼다. 이들의 기사가 동향면 전체 주민의 반나절을 아낄 수 있게 했다. 변화가 생기면서 할머니들은 본인 글에 대한 힘을 느끼기 시작했다.

“미용사가 하는 말이 ‘어트게 2시 버스가 다니지?’해서 ‘우리가 2시 버스 느 달라고 신문기사 썻지요’라고 했더니 ‘아, 그랫군요. 좋은 점도 있내요’ 했습니다. 내 마음에도 즐겁고 기뻤습니다. 2시 버스를 타고 왔지요. 기쁜 마음으로 학교에 가서 선생님과 학생들에게도 손뼉을 치면서 ‘2시 버스 다녀’하고 소리 질렀다.” (2010년 4월19일, 정이월(당시 73세) <동향면에 2시 버스가 다시 들어와요>)

▲ 2010년 4월19일 진안신문 지면. 정이월 할머니(당시 73세)의 기사 '동향면에 2시 버스가 다시 들어와요' 갈무리.
▲ 2010년 4월19일 진안신문 지면. 정이월 할머니(당시 73세)의 기사 '동향면에 2시 버스가 다시 들어와요' 갈무리.

지역이 다함께 돌보는 진안 발달장애 아이들, 지역언론 역할을 찾다

오후 2시 할머니 글쓰기 수업을 끝낸 류 국장이 다시 30분을 운전해 발달장애 아이들이 있는 비영리민간단체 보듬센터로 향한다. 지역사회가 발달장애 아이들을 돌봐야한다는 뜻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2019년 진안에 보듬센터가 만들어졌고, 류 국장은 설립 초기부터 글쓰기 수업을 하고 있다. 류 국장은 5년 전 중국집 간판을 가리키며 ‘뭐라고 써있냐’고 묻는 중학교 3학년 발달장애 학생을 보고 수업을 결심했다고 전했다. ‘아이가 학교를 졸업해 바로 사회에 나오면 어떻게 살아가야하나’라는 생각이 처음으로 크게 다가온 순간이었다고 했다. 현재는 총 16명의 아이들이 보듬센터에서 활동한다. 

▲ 지난 7일 오후 전북 진안군에 위치한 보듬센터를 찾은 류영우 국장. 아이들과 함께 '류영우'로 삼행시 짓기를 하고 있다. 사진=윤유경 기자.
▲ 지난 7일 오후 전북 진안군에 위치한 보듬센터를 찾은 류영우 국장. 아이들과 함께 '류영우'로 삼행시 짓기를 하고 있다. 사진=윤유경 기자.
▲ 류영우 국장의 마음을 빼앗은 삼행시. 사진=윤유경 기자.
▲ 류영우 국장의 마음을 빼앗은 강병준 학생의 삼행시. 사진=윤유경 기자.

“진안군 인구가 2만4000여명이고, 장애인 수가 3000여명이다. 그중 약 300명이 발달장애인이고, 초중고 발달장애 아이들이 50명 정도다. 발달장애 아이들은 지역에 계속 있는데 학교가 끝나면 갈 곳이 없어 시내를 배회한다. 국가기관 지역아동센터에선 중학교 2학년까지밖에 안 받는다. 중학교 3학년부터 고등학교 발달장애 아이들은 ‘없는 아이들’이 되어버린 거다. 그래서 지역에서 발달장애 아이들을 돌보는 기관을 만들었다.”(류영우 국장)

학교에서 배제된 아이들은 보듬센터를 통해 사회에 머물고 융화된다. 보듬센터에선 아이들이 사회에서 대면 해야하는 일을 가르친다. 바둑교실, 과학교실, 수영교실, 요가 및 아로마교실, 성전환기 교육, 미디어교육 등 개개인에게 실질적으로 필요한 새로운 수업도 계속 개설된다. 수영을 배우며 안전요원이 되겠다거나 바리스타 자격증으로 카페에서 일하고 싶다는 등 아이들에겐 꿈이 생겼다. 졸업 후 도서관, 면사무소 등에 취업한 아이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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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듬센터 벽에 붙어있는 발달장애 아이들의 글. 사진=윤유경 기자.

글쓰기 수업에서 아이들이 쓴 글도 매주 할머니 글이 실리는 진안신문 7면 ‘청소년마당’에 실린다. 아이들의 글을 모아 2020년부터 매년 책으로도 출판하고 있다. 1편에선 길어야 두 줄 정도였던 글이 지난해 출간된 4편에선 한 사람당 한 장을 넘겼다. 있었던 일을 서술하는 것에 그쳤던 글에 점점 아이들의 감정과 의견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배우는 과정은 조금 느리지만, 가르쳐보니 되더라.”(류영우 국장) 아이들은 지역신문 기자가, 한 편의 책 저자가 되어 지역사회 공론장에 참여하고 있다.

지역신문 역할 덕분에 전북에서 진안의 발달장애 아이들은 유명하다. 이젠 지역에서 아이들을 다같이 돌봐주고 있다. 류 국장은 “결국 언론은 아이들의 성장하는 모습, 사회에서 활동하는 모습을 알리면서 아이들이 지역에서 우리와 같이 잘 살 수 있다는 걸 알려주는 역할을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조현희 보듬 센터장도 지역신문의 역할을 강조했다. “주축이 되는 지역신문이 있어 훨씬 더 많은 주민이 공감해주고, 사람들이 진안에 발달장애 아이들이 살고있다는 걸 알게됐다. 진안신문은 아이들이 지역에서 살아가기 위한 중요한 구심점 역할을 해주고 있다. 참 고맙다.”

▲ 미디어오늘은 지난 7일 류영우 국장과 함께 조현희 보듬 센터장(왼쪽)을 만났다. 사진=윤유경 기자.
▲ 미디어오늘은 지난 7일 류영우 국장과 함께 조현희 보듬 센터장(왼쪽)을 만났다. 사진=윤유경 기자.

“사람이, 지역이 변화하는 게 보여서” 기자가 이토록 열심히 하는 이유

청소년 기자단 글쓰기, 푸른작은도서관 아이들 글쓰기까지 포함해 류영우 국장은 일주일에 5개 글쓰기 수업을 한다. 왜 이렇게까지 할까. 류 국장은 “아이들이 계속 변화하고 성장하는 게 보이고, 어르신들도 경험이 담긴 글쓰기를 통해 스스로가 변하고 세상이 변하는 게 보이니까 수업을 놓치 못하게 됐다”고 웃으며 말했다.

10여 년 전 마령면에선 어린이들에게 건강한 음식을 기증받아 전달하는 푸드뱅크에서 학교 앞 문방구에서 파는 100원짜리 불량식품을 줬던 일이 드러났다. 이를 발견한 아이들이 ‘우리는 건강한 음식을 먹고싶다’며 글을 썼고, 푸드뱅크에선 사과문을 냈다.

류 국장은 “한 아이가 쓴 글이 결국 지역의 청소년들에게 좋은 음식을 나눠줄 수 있는 계기가 됐고, 지역을 바꾸는 힘이 됐다”며 “어르신이나 청소년이 어떻게 세상을 바라보는지도 알아야 한다. 처음 아이들, 할머니 기사를 지면에 담았을 때 ‘신변잡기같은 글을 왜 싣냐, 낭비다’라는 비판도 많이 받았다. 하지만 성인 남자의 목소리가 대부분인 신문 지면에 아이들, 어르신의 목소리가 담기지 않는 건 오히려 언론의 직무유기”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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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7일 전라북도 진안군 동향면에서 진행되는 류영우 진안신문 편집국장의 할머니 글쓰기 수업에서 만난 최한순 할머니. 사진=윤유경 기자.

지역신문이 하려는 일에 동참하는 주민도 나타났다. 미디어오늘은 지난 8일 오후 발달장애 아이들의 취업 교육을 돕기로 한 치킨집 사장을 만났다. 류 국장과 함께 2년 동안 보듬센터에서 진행하는 ‘함께 걷는 길’ 프로그램에 동행하고 있는 정석평 사장이다. ‘함께 걷는 길’은 발달장애 아이들과 주민들이 함께 지역의 산과 들을 걸으며 아이들의 끈기과 자존감을 기르는 활동이다. 정 사장은 며칠 전 개업한 치킨집에서 필요한 행정 절차 허가를 마친 후 발달장애 아이들의 실습 직업 교육을 통해 실제 채용까지 이어지도록 할 계획이다.

“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두 함께 사회에서 활동할 수 있다는 인식이 심어졌으면 좋겠다. 지역에서 아이들을 돌보려하다보니 미약하기도 하지만, 치킨집을 하며 아이들에게 일을 가르치고 채용하는 걸 추진하게 됐다. 이곳의 경험으로 아이들이 사람들을 대할 시간과 기회를 갖고 사회생활을 적응하는 데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 정 사장의 마음만큼 지역사회의 공론장은 오늘도 넓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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