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ttyimages.
▲Gettyimages.

 

3줄 요약

- 한국 언론사 내 기후위기 전담 기자들이 보수적 조직문화로 좌절을 겪고 있다.

- 기후위기 관련 기사가 기업 홍보수단으로 변질된다는 우려도 나온다.

- 뉴스룸 혁신 없이는 기후위기 기사가 빛을 발하기 어렵다.

“취재보다 사내 투쟁에 더 힘을 쏟을 수밖에 없다”

신문사에서 기후위기 분야를 취재하고 있는 기자의 토로다. 이처럼 언론사 내 기후위기 전담 기자들은 보수적인 조직문화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출입처 칸막이는 기후위기 기자들의 취재 의욕을 꺾고 있으며, 기후위기 보도가 기업의 홍보 수단으로 변질됐다는 우려도 나온다. 언론사가 뉴스룸 내부 혁신을 이뤄내지 않는다면 한국에서 제대로 된 기후위기 기사를 보기 힘들어질지도 모른다.

▲AI 빙이미지크리에이터로 생성한 '실의에 빠져 노트북 앞에 엎드려 있는 기자의 모습'
▲AI 빙이미지크리에이터로 생성한 '실의에 빠져 노트북 앞에 엎드려 있는 기자의 모습'

신우열 전남대학교 신문방송학과 조교수는 지난해 12월 한국언론학회 학술지 한국언론학보에 게재한 논문 <언론 논리에 갇힌 기후위기>를 통해 뉴스룸 내 기후위기 전담 부서·취재기자가 겪고 있는 어려움을 분석했다. 신 교수는 2021년부터 지난해 8월까지 기후위기를 담당하고 있거나, 담당한 경험이 있는 기자 15명을 대상으로 심층 인터뷰를 진행했다. 신문사 기자 9명, 방송사 기자 2명, 인터넷언론 기자 2명, 뉴스통신사 기자 2명이다.

기업 ESG가 기후위기? “산업부 기자, 자료 해석·비평 익숙하지 않아”

2015년 파리기후변화 협약 이후 기후위기에 대한 국내 관심이 증가했고, 한겨레·MBC·세계일보 등이 기후위기 전담 부서를 만들었다. 하지만 한국에서 제대로 된 기후위기 보도를 찾아보기는 쉽지 않다. 현재 기후위기·환경과 관련해 자주 볼 수 있는 기사는 기업 ESG와 관련된 내용이다. 이 때문에 기후위기 관련 보도가 기업의 홍보수단이 된 것 같다는 기자들의 우려가 나온다.

“최근 많이 나오는 보도는 ESG다. 최근 들어 기후변화 기사량이 늘었다고 하는데, 사실 그중 상당수가 그저 기업발 ESG 기사, 보도자료가 아닌가 싶다. 그런 기사는 주로 산업부 기자들이 쓸 텐데, 자료를 어떻게 해석하고 비평하고 그린워싱(친환경으로 위장하는 행동)을 솎아낼 것인지 익숙하지 않은 것 같다.”

▲사진 속 보도는 기사 본문과 관련이 없습니다. 사진=네이버에서 기후위기를 검색하면 나오는 최신 보도.
▲사진 속 보도는 기사 본문과 관련이 없습니다. 사진=네이버에서 기후위기를 검색하면 나오는 최신 보도.

신문사에 재직 중인 A기자가 신 교수에게 털어놓은 말이다. 신 교수는 이 같은 흐름이 기후위기 취재 자체를 퇴색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신 교수는 “(ESG 관련 보도를 하는 산업부·경제부) 기자들은 자기 기사를 기후위기 기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지속가능경영이 중요해지면서 관련 보도자료를 적극적으로 생산하는 등 기업들은 상대적으로 기후위기에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경제부나 산업부 기자에게는 기업이 기후, 환경과 관련해 뉴스 가치를 갖는 일이 잦을 수밖에 없고, 이를 기사로 쓰는 것은 그들에게 당연한 일”이라고 비판했다.

기후위기 전담팀의 활동에도 지장이 많다. 그중 하나는 출입처 장벽이다. 기후위기는 경제·정치·사회·국제 등 다양한 분야를 망라하는 영역이다. 인터뷰에 참여한 기후위기 전담 기자들은 타 부서와 조율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B기자(방송사)는 “캘리포니아 산불, 중국 산사태, 일본 폭우 등은 국제부의 아이템으로 정해지는 경향이 있다”며 “부서 간 ‘우리만의 아이템’, ‘우리의 보도’라는 경계선이 있어서 보도국 전체가 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에 걸림돌이 되는 듯 하다”고 지적했다. C기자(방송사)는 “환경부나 기상청 담당은 가장 힘이 없는 부서이기에 다른 부서를 설득하기 쉽지 않다”고 밝혔다.

기후 저널리즘 실천을 방해하는 것은 데스크들이다. 신 교수는 “(데스크들은) 기후위기 영역에 별도의 인력을 투여한 만큼 성과를 내길 바라는데 이를 특종이나 언론상 수상, 기사 개수나 트래픽 유입량으로 확인하고자 한다”고 지적했다. D기자(신문사)는 “(데스크를) 설득하는 작업이 어렵고, 이해를 구하는 과정에 에너지 소비가 많다”고, E기자(신문사)는 “취재보다 사내 투쟁에 더 힘을 쏟을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데스크들의 전문성 부족도 문제다. C기자는 “최대 난관은 데스크라는 말이 나온다”고 했다. 신 교수는 “위계질서가 엄격한 조직에서는 데스킹 과정에서 쌍방향 소통이 생략될 때가 많다. 일선 기자의 손을 떠난 기후위기 기사를 데스크가 검토하고 확정하는 과정에서 기사의 방향, 심지어 사실관계가 바뀔 때도 적지 않다”고 지적했다.

언론사가 기후위기에 대한 장기적 목표를 가지고 있는 경우도 드물다. 신 교수는 “기후위기 전담팀을 신설한 언론사 대부분은 기후위기의 특수성에 대한 고려나 전담 인력의 역할에 대한 이해 없이 일을 벌였다”고 지적했다. A기자는 “기후위기팀이 구성된 이유는 젋은 세대에 어필할 수 있는 주제라는 판단 때문이다. 어젠다의 심각성이나 전문성보다, 젊은 세대에게 와닿을 수 있는 콘텐츠를 기획하자는 의도에 초점을 두고 팀이 구성됐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결국 전문성 확보는 기자 개인의 몫으로 치부된다. 기자 개인의 역량과 흥미에 따라 기사 품질이 달라진다. D기자는 “대부분 회사는 기후변화팀도, 기후변화 영역도 없다. 환경 담당 기자가 환경의 수많은 영역 중에서도 기후변화와 관련 있는 이슈를 얼마나 다루는가. 개인의 관심도에 기후변화 보도가 달려있다”고 했다. 조직 논리 때문에 기후위기에 대한 자기검열이 일어난다고 고백하는 기자(A기자)도 있었다.

▲한국언론학보 67권 6호. 언론 논리에 갇힌 기후위기 논문 표지.
▲한국언론학보 67권 6호. 언론 논리에 갇힌 기후위기 논문 표지.

언론사 뜯어고쳐야 “기후위기 커맨드 센터” 구성할 수 있다

신 교수는 칸막이식 취재 관행을 기후위기 분야에선 적용해선 안 되며, 편집국 간부들이 기후위기를 ‘메인 이슈’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신 교수는 “편집회의 등을 통해 중요성을 공개적, 정기적으로 발언해 현장 기자들이 기후위기를 적극적으로 취재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실제 영국 가디언은 2019년 10월 ‘환경 서약을 발표하고 기후 저널리즘을 강화하겠다고 천명했다. 이후 가디언은 기후위기 섹션에 기자 9명을 배치하고, 화석연료를 채굴하는 기업의 광고를 수주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또 신 교수는 언론사가 기후위기 전담인력이 전문성을 쌓을 수 있도록 시간적 여유를 주고, 일정 기간 순환근무제를 적용하지 않아야 한다고 제언했다. 신 교수는 “경영진과 편집국 지도층은 디지털상에서의 양적 지표 상승과 같은 단기적 성과를 적용해 기후위기 전담팀의 성패나 기자의 실력을 가늠해선 안 된다”며 기후위기에 대한 인식을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신 교수는 여러 한계에도 불구하고 언론사가 기후위기 전담팀을 구성해야 한다고 했다. 단 부서 간 경계를 넘나들 수 있는 유연함을 적용해야 한다. 신 교수는 “전담팀은 소속 언론사의 일관성 있는 기후 저널리즘 실천을 위해 각 부서를 연계해주고, 협업과 분업을 기획하고 지시하는 ‘기후위기 커맨드 센터’(사령부)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