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명절을 맞아 영화 <웡카>를 봤다. 모처럼 가족 모두 행복한 기분에 푹 젖어 들게 한 작품이었다. 돌아오는 길에 영화평을 찾아보니 우리처럼 영화를 보고 잔뜩 기운을 얻은 사람이 한둘이 아닌 듯했다. 특히 이런 코멘트들이 눈에 띄었다. “보고 나오면 행복한 영화”라고.

이런 평을 듣는 작품들은 종종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을 동시에 받는다. <웡카>도 비슷했다. 그러나 행복하고 순수한 <웡카>라고 해서 영화 속에 현실이 반영되지 않은 건 아니다. 윌리 웡카를 위협하는 초콜릿 연합은 실제로 우리 사회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는 대기업 카르텔의 모습 아닌가. 오히려 관객들이 <웡카>를 보며 즐거워할 수 있는 건, 강압적이고 폭력적인 현실의 조건을 우스꽝스럽게 비틀기 때문이다. 현실을 반영하고 비판하는 데에는 사실적인 묘사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해학적으로 풀어내는 방법도 있는 것이다.

나는 ‘웃으며 싸우는’ 작품을 좋아한다. 폭력적인 현실을 가볍게 밟고 도약하며 ‘너희는 그렇게 살아, 나는 더 나은 세계로 떠날래’ 하고 배시시 웃는 류의. 네이버웹툰에서 연재하다 최근 완결된 웹툰 <그렇고 그런 바람에>(아니영 작가)도 내겐 그런 작품 중 하나였다.

▲ 웹툰 ‘그렇고 그런 바람에’ 포스터. 사진=네이버웹툰
▲ 웹툰 ‘그렇고 그런 바람에’ 포스터. 사진=네이버웹툰

<그렇고 그런 바람에>의 주인공 ‘오바람’은 뜨거운 소문 한가운데에 있는 이다. 미래가 촉망받는 교수를 홀려 A+ 성적을 받아내고, 그의 가정을 파탄 낸 데다 집에 찾아가 자해 소동을 벌였다는 어마어마한 소문의 주인공, 그 유명한 '미대 불륜녀'가 바로 오바람이다.

사실 이건 바람의 잘못이 아니었다. 교수가 유부남인 사실을 속이고 바람에게 접근했고, 바람은 그가 유부남인 사실을 알자마자 그를 떠나고 가족에게도 사과했으니. 바람의 탓이 아니었음에도 바람은 도망가듯 휴학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난 뒤 다시 돌아와 복학 신청서를 냈다. 첫 화에서 바람은 ‘미대 불륜녀’에 대해 쏟아지는 무성한 말을 뚫고 강의실 문을 연다. 눈에 띄는 분홍색 머리에 화사한 분홍색 재킷과 치마를 입은, 소문만큼이나 화려한 모습으로.

바람 앞에 펼쳐진 제2의 캠퍼스 생활은 쉽지 않다. 애써 낸 작품은 누군가의 악의로 훼손되고, 게시판에는 아무리 떼어내도 끊임없이 바람을 비난하는 대자보가 붙는다. 불륜 상대로 지목된 김상남 교수는 이미 자살했는데, 죽은 김상남 교수의 이름으로 연일 바람에게 의문의 편지가 배송되기까지 한다. 바람을 악랄하게 괴롭혀 어떻게든 학교 밖으로 쫓아내려는 시도가 이어지지만 바람은 끝내 웃으며 버틴다. 그냥 홀로 버티는 게 아니라 그렇게까지 자신을 괴롭혔던 이들을 끝내 용서하고 받아들이고 화해하며 함께 ‘해피엔딩’을 맞기를 제안한다.

▲ 웹툰 ‘그렇고 그런 바람에’ 갈무리. 사진=네이버웹툰
▲ 웹툰 ‘그렇고 그런 바람에’ 갈무리. 사진=네이버웹툰

‘저러니까 불륜녀지, 지팔지꼰이지…’ 바람이 겪었던 진상을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은 바람에게 손쉽게 ‘○○녀’라는 딱지를 붙이고선 모든 것을 그에 맞춰 이해한다. 화려한 옷을 입는 것도, 향수를 뿌리는 것도, 명품 가방을 들고 다니는 것도 ‘○○녀’라서 그렇다는 듯이.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바람이 이런 착장을 포기해야 할 이유는 없다. 바람은 변하지 않은 채, 매번 용기 내 학교의 문을 연다. 인형 탈을 뒤집어쓰고 땀범벅이 되어 부스 홍보를 하고, 밤샘 작업도 마다한 채 그림에 몰두하며, 무엇보다 언제나 헤실헤실 웃으면서. 그를 괴롭혔던 이들마저 용서할 수 있는 단단한 내면은 자기 자신을 믿어주는 깊은 신뢰에서 나오는지도 모른다.

주인공을 사지에 밀어 넣은 악역들에게 그 이상의 복수로 되갚아주는 것이 요즈음 콘텐츠 업계의 대세지만, 솔직히 말해 나는 복수보다 화해를 더 사랑한다. 악역마저 용서하는 품 넓고 다정한 이야기에 빠져들다 보면, 내가 마주한 현실과도 싸워 볼 용기가 솟구치기 때문이다. 닮고 싶은 캐릭터를 만나는 것만으로도 때론 커다란 힘이 되기도 하니까. <웡카>의 윌리 웡카처럼, <그렇고 그런 바람에>의 오바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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