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만화인지 내 인생인지” (3화 베스트댓글 중)

“보는데 숨 막힌다. 지금의 나를 보는 것 같아서 보는 게 무섭다.” (19화 베스트댓글 중)

웹툰 <무직백수 계백순>에는 종종 이런 댓글이 눈에 띈다. 방에서 게임만 하며 시간을 보내는 백순의 일상이 자신과 똑 닮아 도저히 보기 어렵다며, 이제 웹툰에서 하차한다는 독자도 있을 정도다.

<무직백수 계백순>은 제목 그대로 ‘백수’인 ‘백순’의 일상을 그린다. 백순은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거의 외출하지 않는다. 옆방의 소음이 생생하게 들릴 정도로 벽이 얇은 집에 사는 그는 밤새 게임을 하다가 오후까지 잠을 잔다. 생활비는 어머니가 입금해 주는 용돈으로 충당한다. 백순은 거의 방 한 칸에서 일상을 보낸다. 편의점과 피시방 정도가 활동 반경의 최대치다.

▲ 웹툰 ‘무직박수 계백순’ 포스터. 사진=네이버 웹툰
▲ 웹툰 ‘무직박수 계백순’ 포스터. 사진=네이버 웹툰

백순이 항상 이랬던 건 아니다. 그도 나름대로 회사에 취업해 열심히 일하려 노력했지만, 열악한 근무 환경과 상사의 괴롭힘 때문에 퇴사를 선택했다. 퇴사 이후 백순은 오랜 꿈이었던 웹소설 작가 데뷔를 준비한다. 초반에는 열심히 글을 써서 공모전에 응모했지만, 공모전에서 번번이 탈락한 이후에는 집필에 점점 소홀해진다. “조금만 스트레스를 받아도 잠이나 게임으로 도망쳐 버”(19화)린 탓이다. 거듭되는 실패 속에 백순은 사회로 나아가려는 의지를 서서히 잃어간다.

이런 백순의 모습은 만화 속에만 존재하지 않는다. <무직백수 계백순>에 댓글을 남긴 이들처럼, 실제로 백순과 같이 사회와 다소 동떨어진 삶을 이어가는 청년들이 있다. 바로 ‘고립·은둔 청년’이다. 지난 13일 국내에서 처음으로 시행된 <2023 고립·은둔 청년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고립·은둔 청년은 약 54만 명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이번 조사에서는 약 2만 명 가까이 되는 고립·은둔 청년을 대상으로 심층 조사를 거쳤는데, 이중 방에서도 나오지 않는다고 응답한 ‘초고위험군’은 504명에 달했다. 전체 응답자 중에는 여성이 72.3%, 남성이 27.7%로 두 배 이상 차이 났으며, 연령대로는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 비율이 가장 높았다.

▲ 청년. 사진=gettyimagesbank
▲ 청년. 사진=gettyimagesbank

그중에서도 눈에 띄었던 항목은 재고립·은둔 경험이다. 80% 이상의 청년이 현재의 상태를 벗어나고 싶어 하지만 방법을 찾지 못하며, 그중 45%는 탈고립을 시도했으나 다시 고립되었다. 재고립될 수밖에 없던 이유로는 ‘돈과 시간의 부족(27.2%)’과 ‘힘들고 지쳐서(25.0%)’가 과반을 차지했다. 이들이 사회로 돌아가는 데에 있어 많은 돈이 필요했던 것도 아니다. 조사 보고서에는 교통비, 식사비 등 외출하기 위한 최소한의 금액을 마련하기 어려웠다는 내용이 주석으로 달려 있었다. 공적 언어로 건조하게 쓰인 보고서였지만, 적힌 숫자와 글자 하나하나가 가시가 되어 찌르는 듯 저리고 아팠다.

백순은 어떻게든 사회로 나아가려 노력한다. 백순을 오랫동안 믿고 기다려주는 가족, 닫힌 문을 두드리며 운동하러 나가자고 제안하는 이웃 주민, 어느 날 백순 앞에 나타난 길고양이 등 여러 존재가 백순을 뒷받침해 주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다가오는 크리스마스에 소원을 딱 하나만 말할 수 있다면, <무직백수 계백순>을 보며 자신의 이야기라 괴로워하는 이들의 곁에 그런 존재들이 나타나기를 빌고 싶다. 다정한 손길이 어렵다면, 다정한 정책이라도. 우리 사회는 언제나 ‘빠르게’ 성과를 내는 속도감에 취해있지만, 고립·은둔 청년 지원 정책은 그들이 고립되어 있던 시간만큼이나 그들을 오래 기다려주는 정책이기를 바란다. 백순이 그랬던 것처럼, 이들이 잠긴 문을 스스로 열고 나올 수 있을 때까지.

▲ 이기일 보건복지부 1차관이 12월1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고립·은둔 청년 지원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보건복지부 제공
▲ 이기일 보건복지부 1차관이 12월1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고립·은둔 청년 지원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보건복지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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