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연합뉴스
▲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연합뉴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삼성그룹 경영권 불법승계 의혹’ 관련 1심 무죄를 받자 ‘재벌총수 봐주기 판결’이란 비판이 나오는 가운데 다수 언론은 삼성의 ‘사법리스크 해소’를 환영하는 보도를 냈다. 삼성 경영권 승계 관련 이 회장의 뇌물공여를 인정했던 대법원 판결과 배치되는 결과에도 의문을 품는 언론은 소수였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5-2부(재판장 박정제)는 지난 5일 ‘불법승계 의혹’ 관련 부정거래행위 및 시세조종(자본시장법 위반)과 업무상 배임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재용 회장에 무죄를 선고했다. 함께 재판에 넘겨진 삼성 전현직 임직원들도 무죄를 받았다. 재판부는 “이 사건 공소사실은 모두 범죄의 증명이 없어 무죄”라고 했다.

참여연대는 5일 <‘이재용 무죄’ 최소한의 사회정의마저 외면한 법원 규탄한다> 성명을 내고 “재벌총수 봐주기 판결”이라고 비판했다. 참여연대는 “검찰이 이재용 회장에게 징역 5년을 구형한 것도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을 위한 포석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었으나 법원이 한술 더 떠 무죄를 선고한 셈”이라며 “재벌들은 지배력을 승계하기 위하여 함부로 그룹회사를 합병해도 된다는 괴이한 선례를 남김으로써, 재벌봐주기의 대명사로 역사에 남을 것”이라고 했다.

“검찰의 무리한 기소… 이재용 가둬두는 게 무슨 도움”

다수 언론은 검찰의 무리한 기소였다고 결론짓는 모습이다. 검찰은 수사를 시작한 이후 이재용 회장을 두 차례 소환하고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기각된 바 있다. 2020년에도 검찰수사심의위원회(수심위)가 이 회장에 대한 수사 중단과 불기소를 권고했지만 검찰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당시 수사와 기소를 주도했던 검사는 이복현 현 금융감독원장이다.

▲ 6일자 동아일보 사설.
▲ 6일자 동아일보 사설.

동아일보는 6일 <檢 ‘수심위’ 묵살하고 기소한 이재용, 19개 혐의 전부 무죄> 사설을 내고 “검찰이 이 사건을 수사하고 기소할 때부터 무리수라는 지적이 많았다”며 “수사팀이 전문가의 의견과 비판 여론을 무시하고 기소를 고집한 결과가 ‘전부 무죄’다. 검찰로서는 자업자득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기소를 밀어붙인 이 원장은 무죄 판결에 대체 뭐라고 할 건가”라고 했다.

‘사법리스크’에 삼성을 가뒀다는 지적도 이어진다. 국민일보는 6일 사설에서 “이 회장은 1심 공판 106회 동안 95회나 출석했다. 정상적 경영 활동이 가능했겠나”라며 “삼성그룹은 그사이 대규모 인수·합병(M&A)도 하지 못한 채 정체를 겪었고 반도체와 휴대전화의 시장 지배력도 약해졌다. 한국 경제도 동반 뒷걸음쳤다. 뚜렷한 증거도 없이 글로벌 기업 최고 경영자를 장기 사법 리스크로 가둬둔 게 과연 누구에게 도움이 됐는지 묻고 싶다”고 했다.

▲ 6일자 조선일보 사설.
▲ 6일자 조선일보 사설.

조선일보는 검찰의 기소가 문재인 정부의 영향이라고 주장했다. 조선일보는 6일자 사설 <이재용 전체 무죄, 국가 경제만 피해 끼친 反기업 ‘적폐 몰이’>에서 “이 수사는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 때 시작됐지만 실제 수사를 본격화하고 관련자들을 기소한 것은 문재인 전 대통령의 심복이던 이성윤 서울지검장이 검찰을 장악했을 때였다. 문 정부의 적폐 몰이와 반기업 풍조가 검찰의 무리한 기소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며 “국가를 대표하는 간판 기업을 이렇게 괴롭히고 발목 잡는 나라는 없을 것”이라고 했다.

중앙일보는 무죄 판결 이후 삼성의 경쟁력 강화를 주문했다. <‘사법 리스크’ 벗은 이재용…신사업·경쟁력 확보 전념하길> 사설에서 중앙일보는 “이제 삼성은 사법 리스크를 털어낸 만큼 컨트롤 타워를 재정비해 미래 신사업 확보를 위한 M&A와 투자 등에 속도를 내야 한다”며 “지속적인 준법 경영을 통해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는 세계 일류 기업의 면모를 갖춰야 한다. 치열해지는 반도체·기술 전쟁에서 삼성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것이 국가와 사회에 보답하는 한편 위대한 기업으로 가는 길”이라고 했다.

가려진 삼성의 사회적 책임… 경제지 ‘삼성2.0 기대한다’

이번 1심 무죄 판결이 삼성에 ‘면죄부’를 준 건 아니다. 승계 작업의 실체는 인정됐으며 이전 대법원 판결에서 승계 관련 뇌물도 인정됐다. 항소심 판단도 끝나지 않은 상황이지만 삼성의 사회적 책임 대신 경제지들은 ‘삼성2.0’, ‘뉴삼성’, ‘신경영’ 등 삼성의 미래 전략 특집 기사를 냈다.

▲ 6일자 한국경제 사설.
▲ 6일자 한국경제 사설.

한국경제는 ‘JY 뉴삼성 시대’ 타이틀을 붙인 <사법 족쇄 벗은 이재용…기술 경영·M&A로 ‘초일류 삼성’ 속도> 기사에서 “경제계에선 사법 리스크 족쇄를 벗은 이 회장의 첫 번째 숙제로 ‘강한 삼성’ 복원을 꼽는다. 바이오, 차세대 이동통신 같은 ‘JY표 신사업’을 한층 더 강화하는 동시에 글로벌 선두 기업들과 벌어진 인공지능(AI) 기술 격차도 단시일 내 줄여야 한다는 이유에서”라고 했다. 4면엔 <李 회장, 등기이사 복귀 유력…그룹 ‘컨트롤타워’ 부활 가능성> 기사를 냈다.

서울경제는 ‘뉴삼성2.0’ 기획으로 3면에 <삼성, 7년만에 사법리스크 해소…'3대 성장엔진' 드라이브 건다> 기사를 내고 “잦은 출석, 해외 경영 활동의 제약은 물론 법의 잣대를 어깨에 짊어진 심리적 위축이 그만큼 컸던 것”이라며 “삼성 안팎에서 보는 이 회장의 숙제는 △메모리반도체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바이오 등 3대 과제로 귀결된다”고 했다. 매일경제도 13면에 <“M&A·반도체 위기 돌파”… 글로벌 경영 ‘李리더십’ 탄력> 기사를 실었다.

▲ 6일자 서울경제 사설.
▲ 6일자 서울경제 사설.

합병 위한 뇌물은 인정되지만 합병이 불법은 아니다?

이번 판결엔 여러 의문이 남는다. 이미 2019년 박근혜 전 대통령 ‘국정농단’ 대법원 판결에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 대한 이 회장의 뇌물공여죄가 인정됐기 때문이다. 합병을 위해 뇌물을 준 건 인정하지만 합병 자체는 불법이 아니라는 모순이다. 이 회장은 승계가 목적이 아닌 합법적인 합병을 위해 쓸 데 없는 뇌물을 준 셈이다. 그 과정에서 삼성물산의 주가 하락 등 주주들의 손해도 이번 1심은 인정하지 않았다.

▲ 6일자 경향신문 5면 사진기사.
▲ 6일자 경향신문 5면 사진기사.

이런 의아함을 지적하는 신문은 소수였다. 경향신문은 6일 사설 <경제정의 시비 부른 이재용 삼성 합병 무죄 판결>에서 “재판부의 무죄 판단엔 논쟁이 뒤따른다. 두 회사 합병에 이 회장의 승계와 지배력 강화 외에 다른 이유가 조금이라도 있으면 봐줘도 된다는 얘긴가. 두 회사의 합병 절차·과정에 위법 행위가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부당하지 않다는 소리인가”라며 “이 회장이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으로 그룹 지배력을 강화한 것은 불변의 사실이다. 이 과정에서 이 회장은 뇌물을 건네고 자본시장 질서를 흔들어 물의를 빚었다. 합병 이후 삼성물산 주주들은 평가 손실을 입었고, 국민연금 가입자도 피해를 봤다”고 지적했다.

한겨레도 “이 회장은 승계 작업을 지원해주는 대가로 박근혜 대통령과 최서원씨에게 뇌물을 준 혐의로 징역 2년6개월이 확정됐는데, 이번 판결에 따르면 뇌물까지 써가며 진행한 승계 작업에 불법적 요소가 전혀 없었다는 게 된다”며 “모든 게 합법적이었다면 굳이 형사처벌 위험을 무릅쓰며 권력자에게 뇌물을 건넬 이유가 없다”고 했다.

▲ 6일자 한겨레 사설.
▲ 6일자 한겨레 사설.

한겨레는 “이번 판결은 검찰의 역량과 의지에 대해서도 의구심을 던진다. 검찰은 수사심의위원회의 ‘수사중단·불기소’ 권고에도 기소를 강행하며 자신감을 비친 바 있다. 하지만 비록 1심 재판이기는 하나 수많은 공소사실 중 단 한가지도 입증하지 못한 꼴이 됐다”며 “압수수색 절차상 위법으로 다수의 증거가 배척되기도 했다. 수사를 지휘했던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그사이 검찰을 떠났다. 검찰이 수사와 공소 유지에 최선을 다했는지 의문이 남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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