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주장한 운동권 청산론이 정치권 화두에 올랐다. 4월 총선에서 ‘운동권 청산론 대 정권심판론’ 구도가 형성될 것이라는 언론의 전망도 쏟아진다.

운동권 청산론은 정부 여당이 내세운 일종의 프레임이다. 야당을 운동권이란 틀로 가둬 고립시키는 전략의 일환이다. 운동권 청산론 대 정권심판론으로 구도가 굳어지면 정권심판론 대상이 희석되는 효과를 낼 수 있다. 정부 여당의 실정을 탓하는 것은 운동권을 주된 동력으로 한 야당의 공세로 치부할 수 있다. 정부 여당이 사활이 걸린 것처럼 운동권 청산론을 시대정신으로 격을 올리려는 움직임도 이 같은 배경을 깔고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신년 기자회견에서도 운동권 청산에 대한 질문이 나왔다. 이 대표는 “지금 청산해야 할 가장 중요한 과제는 검사 독재”라고 반박했다. 정치권을 강타한 운동권 청산론을 경계하는 모습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29일 낮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과 윤재옥 원내대표를 용산 집무실로 초청해 오찬 회동을 하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윤석열 대통령이 29일 낮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과 윤재옥 원내대표를 용산 집무실로 초청해 오찬 회동을 하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전략공천' 대상자로 거론되는 여러 인사들도 운동권 청산을 입에 올리고 있다. 서울 중구 성동갑에 출마한 윤희숙 전 의원이 대표적이다. 윤 전 대표는 지난 28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이번 선거의 정신은 ‘껍데기는 가라’”라며 “민주화 운동 경력이란 완장을 차고, 특권 의식과 반시장 반기업 교리로 경제와 부동산 시장을 난도질하는 것이 껍데기”라고 말했다. 상대 후보인 민주당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을 운동권 정치 청산 대상으로 저격한 것이다.

이재명 대표 지역구 인천 계양을에 도전장을 낸 원희룡 전 국토부 장관도 운동권 청산론에 호응했다. 원 전 장관은 30일 국민의힘 당사를 찾아 총선 출마 후보신청서를 제출한 자리에서 “현재 청산해야 한다는 건 운동권 자체가 아니라 완장, 훈장으로 삼아서 국민들이 일으켜놓은 경제를 뽑아먹는 빨대를 꽂는 기생적인 세력으로 군림하면서 내로남불 위선과 혁신적인 에너지를 가로막고 있는 바로 그 무능을 청산해야 한다”고 말했다.

원 전 장관은 2020년 11월 자신의 페이스북에 “지금 문재인 정부를 장악하는 실세들은 소위 ‘586’ 세대다. 이 ‘586’ 세대의 태생적 한계가 한국을 망치고 있다”며 일찍이 운동권 청산론을 주장해왔다.

운동권 청산론을 시대정신이라고 치켜세우고 있지만 한동훈 위원장표 공천에 힘을 실기 위한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조선일보는 윤희숙 전 의원과 원희룡 전 국토부 장관, 정청래 민주당 최고위원 지역구 서울 마포을에 나온 김경율 비대위원을 거론하며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이 내세운 ‘운동권 청산’ 공천이 본격화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한동훈 위원장이 운동권 청산을 구호로 내걸고 전략공천 대상자가 호응하고 이를 언론이 확산시켜 자연스레 주목도를 높이는 전략이다. 운동권 청산을 말할수록 한동훈 위원장의 전략공천도 함께 언급될 수 밖에 없다. 한 위원장은 “임종석과 윤희숙 누가 경제를 살릴 것 같나? 운동권 경력 하나로 수십 년간 기득권 차지하면서 정치 무대를 장악해 온 사람들이 민생 경제를 말할 자격이 있는지 묻고 싶다”고 말해 윤 전 의원에게 힘을 보탰다.

운동권 청산론 대 정권 심판론 구도를 기정사실화하는 보도 흐름도 대세가 되고 있다.

KBS는 30일 <‘운동권 청산론 vs 정권 심판론’…대결 구도 윤곽 잡히나?> 리포트에서 “태영호 의원은 국민대 총학생회장을 지낸 윤건영 민주당 의원 등과 겨루겠다며 출마 선언을 했고, 앞서 박민식 전 국가보훈부 장관은 서울대 총학생회장 출신, 3선의 민주당 김민석 의원 등과 대결하겠다고 나섰다. 호준석 국민의힘 대변인도 전대협 초대 의장을 지낸 4선 민주당 이인영 의원 지역구에 도전장을 냈다. 민주당 박성준 의원의 서울 중·성동을에는 종로에서 옮긴 하태경 의원과, 이혜훈 전 의원, 이영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등이 각축전을 예고하고 있다”고 전했다. 모두 야당 후보를 운동권으로 규정한 내용이다.

안일원 리서치뷰 대표는 31일 통화에서 “운동권 청산론은 보수층 결집엔 효과가 없겠지만 진보층 리버럴 여론에 영향을 줄 수 있다”며 “2020년 국회의원 당선자 300명 중 소위 86세대가 177명이다. 김민석을 필두로 제도권에 진출해 단독 과반을 형성했는데 한국 사회 구조적 모순은 단 하나도 해소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안 대표는 “진보진영의 비교우위에 있는 도덕성 가치가 훼손된 상태에서 586세대 청산론 구도가 형성돼 맞물리면 운동권 카르텔 심판론이 파괴력을 가질 수 있다”며 “운동권 청산론이 시대정신이라고 할 수 없지만 한동훈 위원장이 굉장히 치밀하게 전략으로 내세운 키워드다. 보수언론의 기조도 보면 윤석열 대통령으론 안되고 한동훈 위원장에 힘을 실으려는 기류가 읽힌다. 운동권 청산 관련 언론 보도 흐름도 이 같은 일련의 과정으로 보여진다”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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