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명의 여성 선수들이 나오는 프로그램에서 66명 각자가 스스로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확인하고 색깔을 찾아가는 게 우리 프로그램 성격이 된 게 아닌가 싶다. 세상 사람들이 봐왔던 정형화된 여성 직업인들에 대한 이미지가 있다면, 여기는 그냥 나를 만나는 공간 인거다. 이를 악물고 인상을 찌푸리고 뛰는 것도 보여줄 수 있고, 가끔은 분해서 울기도 하고, 경기하다가 든 멍을 자연스럽게 보여줄 수도 있고. 그런 다양한 모습 말이다.” (SBS ‘골 때리는 그녀들’ 장정희 작가)

▲ SBS '골 때리는 그녀들' 스틸컷. 사진=골 때리는 그녀들 홈페이지 갈무리.
▲ SBS '골 때리는 그녀들' 스틸컷. 사진=골 때리는 그녀들 홈페이지 갈무리.

2021년 시작한 SBS 스포츠 예능 프로그램 ‘골 때리는 그녀들’은 각 분야의 여성들이 축구 경기를 펼치는 모습을 보여주며 여성 스포츠의 저변을 확대하고 스포츠와 성별에 대한 편견을 깼다는 평가를 받는다. 최근 여성들이 일상에서 적극적으로 스포츠 동호회를 만들어 활동하는 데에는 ‘골 때리는 그녀들’이라는 예능 프로그램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다.

지난 12일 전국언론노동조합 SBS본부(노조) 제3회 성평등언론실천상을 수상한 스튜디오프리즘 ‘골 때리는 그녀들’의 김화정 PD, 장정희 작가는 노조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재밌는 스포츠, 여성도 즐겨야겠다’는 생각으로 프로그램 기획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 SBS '골 때리는 그녀들' 스틸컷. 사진=골 때리는 그녀들 홈페이지 갈무리.
▲ SBS '골 때리는 그녀들' 스틸컷. 사진=골 때리는 그녀들 홈페이지 갈무리.

이 인터뷰에서 장 작가는 “애초에 시작할 때는 ‘여자도 축구를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기 보단, 내가 직접 뛰어보면 ‘와, 이 재밌는 걸 남자들만 하고 있었네? 이렇게 재밌는 걸 왜 우리는 몰랐지? 우리도 즐겨야겠다’는 생각이었다”며 “팀 스포츠라는 게 이렇게 매력 있는 건지 몰랐던 거다. 그래서 일단 이걸 즐기는 여성들이 많아졌다는 자체가 반갑고 즐거운 마음이다. 요즘엔 여성 남성 혼성으로 뛰는 게임도 늘었더라. 지금까지도 충분히 반가운 변화”라고 했다. 

본래 4팀으로 시작했던 프로그램이 지금은 11팀, 선수들은 총 66명으로 늘어났다. 장 작가는 “요즘엔 골때녀라는 프로그램이 일종의 플랫폼이라면, 여기서 선수들이 자율적으로 진정성 있게 축구에 대한 사랑, 각자의 세계관 같은 것들을 구축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된다”며 “처음 프로그램이 잘 됐던 것도 출연자들이 ‘나 요즘 축구해’ ‘나 이게 너무 재미있고 열심히 하고 있어’ 이렇게 SNS에 사진을 찍고 글을 쓰면서다. 바이럴이 된 것”이라고 말했다. 

▲ 지난 12일 성평등언론실천상 시상식 당시 (왼쪽부터) 장정희 작가, 김화정 PD. 사진=전국언론노동조합 SBS 본부 제공.
▲ 지난 12일 성평등언론실천상 시상식 당시 (왼쪽부터) 장정희 작가, 김화정 PD. 사진=전국언론노동조합 SBS 본부 제공.

이젠 ‘여성도 이런 분야에 도전할 수 있어’라는 메시지를 넘어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위한 고민도 있다. 김 PD는 “젠더 롤이 바뀐 것만으로 신선해 했던 시청자들이 이제는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간 메시지를 원한다는 생각을 한다”며 “시대에 걸맞은 우리의 발맞춤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라고 했다.

김 PD는 “그런 의미에서 여성 캐스터가 익숙해질 수 있게 매번은 아니더라도 이벤트처럼 만이라도 시도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아직까지 스포츠 캐스터는 남성의 전유물처럼 돼있으니 시도해 보고 싶다. 감독님들이 뛸 때 여성 선수들이 감독을 맡아본 것도 그런 맥락”이라며 “의미를 부여하고 여러 설명을 하지 않더라도 화면에서 전엔 볼 수 없었던 어떤 장면들, 시도들이 자연스럽게 느껴지게 하는 것. 그것이 예능이 할 수 있는 역할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정형화된 방식으로 소수자 다루는 언론’ 자성에서 시작한 SBS ‘더 스피커’

SBS 보도국 2030세대 기자 7명이 ‘비주류란 이유로 마이크를 가지지 못했던 사람들의 스피커가 되기’ 위해 지난해 8월 새로운 플랫폼을 만들었다. SBS 구독 플랫폼인 ‘스브스 프리미엄’의 코너 ‘더 스피커’는 레거시 미디어가 소수자와 약자를 정형화된 방식으로 다루고 있지 않은가라는 고민에서 시작됐다. 사회에 혐오와 갈등이 판치는 동안 언론이 관찰자적 시선과 기계적 중립을 견지하느라 제 역할을 하지 못한 것은 아닌가 하는 자성도 담겼다.

▲ SBS 스브스프리미엄 '더 스피커' 홈페이지 갈무리.
▲ SBS 스브스프리미엄 '더 스피커' 홈페이지 갈무리.

‘더 스피커’ 기자들은 이러한 문제의식을 공유한 채 출입처에 얽매이지 않고 매주 자유롭게 취재 대상을 선정한다. 제3회 성평등언론실천상 수상자인 ‘더 스피커’ 기자들은 “차별과 불평등 같은 관심사를 개인적 앎에 그치지 않고 기사로 풀어내고 싶었다”며 “평소 비슷한 갈증을 느끼던 동료들 7명이 모여 시작했지만 필진이 자유롭게 드나드는 열린 플랫폼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지난해 11월 보도한 <‘유모차 대 유아차’ 논쟁이 보여주는 어떤 현실>에선 유튜브 예능 프로그램에서 나온 ‘유모차’라는 단어를 ‘유아차’라는 자막으로 표기했단 이유로 제작진에게 가해진 낙인과 공격을 지적했다. 기사를 작성한 조윤하 기자는 “국립국어원이 권고한 ‘유아차’를 썼다는 사실이 사상검증의 요소로 사용되고, 집단 공격으로 이어지는 상황에 문제의식을 느꼈다”며 “모성만을 강조하는 유모차 대신 성평등 용어인 유아차를 사용한 게 결코 낙인이나 표적 테러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 지난 12일 성평등언론실천상 시상식 당시 (왼쪽부터) 김혜영 기자, 이현정 기자, 김민정 기자. 사진=전국언론노동조합 SBS 본부 제공.
▲ 지난 12일 성평등언론실천상 시상식 당시 (왼쪽부터) 김혜영 기자, 이현정 기자, 김민정 기자. 사진=전국언론노동조합 SBS 본부 제공.

지난해 12월 기사 <“여성 대리기사는 이 바닥에서 죄인 아닌 죄인입니다”>에선 여성 대리운전기사에게 가해지는 편견과 ‘노동 펜스룰’ 등 차별을 지적했다. 기사를 쓴 원종진 기자는 “방송기자라는 타이틀을 달고 8시 뉴스를 생산하는 것을 주 업무로 삼으면서 배우는 것도 많지만, 그 장르가 담아내지 못하는 많은 것들을 놓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문법의 틀을 앞세웠다면 50대 여성 대리기사들의 인터뷰를 이렇게 긴 형태로 담아내진 못했을 것”이라며 “‘방송뉴스의 위기’가 상투어가 된 시대에서 좀 더 넓은 시각으로 사회 현상들을 바라보고 어떻게 담아낼지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는 걸 느꼈다”고 말했다. 

아르바이트 중개 플랫폼 통한 성착취 범죄 추적한 ‘그것이 알고싶다’

SBS 시사교양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싶다’의 김재환 PD, 신진주 작가, 유진훈 PD는 지난해 10월 <짱구맨과 이상한 면접-20살 선아는 왜 죽음을 선택했나?>편에서 아르바이트 면접을 미끼로 한 성착취 사건을 조명했다. 김재환 PD는 제3회 성평등언론실천상 수상 인터뷰에서 “무엇보다 이런 사건이 우리 주변에서 빈번하게 이뤄지고 있고, 대부분의 유입 경로가 누구나 접속할 수 있는 아르바이트 플랫폼들이라는 걸 시청자들에게 알려주고 싶었다”고 전했다.

▲ SBS 그것이알고싶다 1371회 짱구맨과 이상한 면접-20살 선아는 왜 죽음을 선택했나? 방송화면 갈무리.
▲ SBS 그것이알고싶다 1371회 짱구맨과 이상한 면접-20살 선아는 왜 죽음을 선택했나? 방송화면 갈무리.

김 PD는 성범죄 경로로 사용되는 아르바이트 중개 플랫폼에 대한 규제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구직자들이 답장을 하는 순간 개인 번호가 노출되고 플랫폼에서 공개한 이름, 사진, 연락처, 주소 등이 모두 협박 요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김 PD는 “성매매나 유사 성매매에 대한 공급이 이 플랫폼들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한다면 어떤 식으로든 규제가 생겨야 한다”며 “특히 이번 사건은 비교적 관리를 하고 있다는 메이저 플랫폼에서 발생하였는데, 중소 플랫폼들의 상황은 더 심각할 것이다. 이용제한을 해서 막더라도 다른 중개 플랫폼으로 가서 유사한 행위를 할 수 있어 동종 업계의 공동 대응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다”고 설명했다.

▲ 지난 12일 성평등언론실천상 시상식 당시 (왼쪽부터) 신진주 작가, 김재환 PD. 사진=전국언론노동조합 SBS본부 제공.
▲ 지난 12일 성평등언론실천상 시상식 당시 (왼쪽부터) 신진주 작가, 김재환 PD. 사진=전국언론노동조합 SBS본부 제공.

무엇보다 성착취에 대한 제대로 된 처벌이 중요하다. 김 PD는 “이 일이 발생한 부산 지역에서 비슷한 사건으로 기소된 사람들이 초범인 경우에는 대부분 집행유예을 받았다. 공동으로 유사 성매매 업소를 운영하면서 한 사람이 집행유예 받고 그럼 나머지 다른 사람이 운영을 하는 식으로 대처하기 때문에 사실상 아무도 제대로 된 처벌을 받질 않는 것”이라며 “성착취에 대한 제대로 된 처벌이 이뤄지지 않으면 연쇄적으로 성폭행이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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