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구석구석 크고 작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동네 해결사’를 자처한 지역 신문 기자가 있다. 지난 1년간 본인 이름을 걸고 수백 명의 이웃을 만난 김재경 경남신문 기자다.

김재경 기자는 평소 신문 지면에서 보기 어려운 소외된 이웃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작은 문제도 해결하자는 목표를 세웠다. 언론 역할이 현상 취재를 넘어 해결까지 이르기 어려운 현실에 걱정도 많았다. 그럼에도 “도민들과 함께 힘을 모으는 게 문제 해결의 시작”이라며 “지역언론은 도민만 바라봐야 한다”고 강조하는 김 기자를 지난 25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만났다.

▲ 지난 25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만난 ‘우리동네 해결사’ 김재경 경남신문 기자. 사진=윤유경 기자.
▲ 지난 25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만난 ‘우리동네 해결사’ 김재경 경남신문 기자. 사진=윤유경 기자.

사소하게 취급했던 동네 문제 취재·해결까지 “지역언론이 만든 기적”

지난해 2월 뉴미디어출판국으로 발령된 김 기자는 ‘김재경 기자의 우리동네 해결사’ 기획을 시작하며 사회부에선 엄두를 내지 못했던 주제들을 떠올렸다. ‘케케묵은’ 이야기라거나 시의성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기사화가 어려웠던 주제들, 사소하게 취급돼왔지만 누군가에겐 무엇보다 절박한 문제들을 심층 취재해 보도하고 싶었다.

▲ 경남신문 2023년 12월13일 10면 지면 갈무리.
▲ 경남신문 2023년 12월13일 10면 지면 갈무리.

“사회부에선 매일 기사를 생산해내느라 이런 문제들을 깊게 고민하지 못했다. 지금 그 순간 중요한 기사들이 너무 많아 엄두가 안 났던 아이템들이었다. 사회부에선 시민단체의 봉암 갯벌 살리기 노력은 단순히 ‘활동했다’ 정도로 보도되고, 음주운전·취객 문제도 ‘많다’ 정도로만 끝나는 경우가 많다. 이번 기획을 통해 내가 해보고 싶었던 이야기들을 직접 가서 듣고 담아보고자 했다.”

1년 간 한 달에 한 편, 취재 시간을 넉넉히 정해두고 여유가 생길 때마다 취재했다. 이솔희 PD는 김 기자의 취재를 함께하며 매 편마다 ‘우리동네.SSUL’ 유튜브 영상을 제작했다. 신도시 개발 시 발생하는 치안 공백부터 구도심 상권 침체까지 절박한 곳들을 찾았다. 김 기자는 ‘우리동네 해결사’ 5편을 마친 지난해 6월부터 부서 이동으로 사회부 사건팀장(캡)을 맡았지만, 동료들 응원에 이 기획을 10편까지 이어갔다. 

▲ 경남신문 유튜브 [우리동네.SSUL] 취재하면 해결될까?ㅣ동네를 1년 동안 심층 취재한 결과는?(2023년 12월12일) 영상 갈무리. 이솔희 경남신문 PD가 제작했다.
▲ 경남신문 유튜브 [우리동네.SSUL] 취재하면 해결될까?ㅣ동네를 1년 동안 심층 취재한 결과는?(2023년 12월12일) 영상 갈무리. 이솔희 경남신문 PD가 제작했다.

취재 아이템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식으로 정해지기도 했다. 4편에선 ‘벚꽃 마을’로 유명한 창원시 진해구 여좌동 등의 빈집 마을을 보도했다. 당시 진해구 여러 동네를 취재하던 중 진해국가산업단지에 편입됐지만 수십 년간 이주 약속이 지켜지지 않아 고통받고 있는 주민들의 이야기를 알게 됐고 이를 7편에서 다뤘다.

‘해결사’를 자처한 만큼 기사에는 다방면의 해결책을 담았다. 전문가의 목소리로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을 넘어 여러 주민들의 목소리에서 해답을 찾고자 했다. 김 기자가 직접 나서기도 했다. 김 기자 본인이 경찰에 치안 강화를 요청하거나, 상권 살리기를 위해 쇼핑을 하고 옛 사진을 실어 사람들 향수를 자극하는 식이다. 지역사회의 갈등을 대화로 해결할 수 있도록 지역사회 경험담을 나눈 경우도 있었다. 기사 말미엔 취재수첩 형태로 기사엔 담지 못한 숨은 이야기를 기록해 독자들에게 전했다.

마지막 편에선 ‘지역언론이 만든 기적’이란 제목으로 보도 후에 일어난 변화를 정리했다. 창원 북면 감계리 신도시 치안 문제를 보도한 뒤, 경찰이 마을 지킴이와 함께 간담회를 갖고 합동 순찰에 나섰다. 치안 시설 보완과 캠페인 등도 시작됐다.

소멸 위기에 놓여 학생과 선생님들이 직접 학교 살리기에 나섰던 창원 의창구 동읍 봉강초등학교는 보도 이후 전·입학생이 늘어 희망을 찾았다. 총동창회에서 전달한 3000만 원의 발전기금으로 인근 광역통학구역(주소지 이전 없이 도심지에서 작은학교를 다닐 수 있는 제도)에 있는 북면 감계리와 무동리 등으로 통학버스를 한 대 더 운영하게 됐다. 

▲ 경남신문 2023년 7월12일 16면 지면 갈무리.
▲ 경남신문 2023년 7월12일 16면 지면 갈무리.

“해결사를 시작하기 전에 이름값을 못 하면 어떡하나 걱정이 커서 우여곡절도 겪었다. 실은 우리동네 해결사가 아니라 우리동네 이야기로 보도를 시작할 뻔 했다. 하지만 이웃의 고민을 진지하게 듣자 지역사회가 공감했고, 여러 주체가 더 나은 내일을 만드는 데 함께 힘을 모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컸다. 함께 힘을 모으는 것, 바로 문제 해결의 시작이었다.”

김 기자가 ‘우리동네 해결사’로 지난해 12월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이 지면에 실리자 한 이웃은 “축하합니다. 기자상. 꼭 따뜻한 국밥 대접하고 싶어요”라는 문자를 보내왔다. “1편 보도 이후엔 동네에서 암행순찰차가 목격됐다거나 경찰이 순찰하는 모습을 봤다는 연락이 왔고, 2편 합성동 지하상가의 어려움을 보도하자 합성동 지상상인들이 우리도 힘들다며 도와달라고 연락이 쏟아져 자칭 해결사가 된 것을 실감했다.” 

▲ 김재경 기자는 ‘우리동네 해결사’로 2023년 12월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을 수상했다. 지난 1월25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김재경 기자(오른쪽, 왼쪽 박종현 한국기자협회장)가 수상하고 있다. 사진=윤유경 기자.
▲ 김재경 기자는 ‘우리동네 해결사’로 2023년 12월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을 수상했다. 지난 1월25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김재경 기자(오른쪽, 왼쪽 박종현 한국기자협회장)가 수상하고 있다. 사진=윤유경 기자.

“지역언론 기자 수 눈에 띄게 줄었지만…지역언론은 도민만 바라봐야 해”

언론 환경이 급변하면서 지역언론 기자 수는 눈에 띄게 줄었다. ‘더 작은 지역’을 주목하는 기사는 더 줄었다. 김 기자는 “10년 전과 비교해 지역언론 기자 수가 거의 절반 정도로 줄었다고 체감한다. 지역의 구석진 곳, 소외된 이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것이 점점 어려워지는 것을 실감한다”며 “나조차 현장에서 생산하는 기사가 예전만 못하다는 것을 느끼며 반성한다”고 말했다.

김 기자는 “빈집을 다니다 보면 ‘나는 지금 지역언론 기자라서 주민들을 찾아가 목소리를 듣는데, 만약 지역 언론이 없다면 이 주민들이 다 떠나거나 동네가 사라지고 나서 지방이 붕괴된다는 보도가 나오겠다’는 생각이 든다”라며 “그 전에 주민들이 좀 더 잘 살 수 있게 알리는 게 지역언론의 일”이라고 했다.

아울러 “지역 언론은 주민만 바라본다. 언제나 이웃 옆을 지키고 먼저 다가가 안부를 묻고 목소리를 대변하고 있다”며 “나는 경남에서 자랐고, 2015년 경남신문 면접을 보던 날 ‘왜 기자가 되고 싶냐’는 질문에 ‘아름답고 살기 좋은 경남이 좋아서 이웃들과 기쁜 일과 슬픈 일도 함께 하며 웃고 울고 싶다’고 답했다. 그 마음은 지금도 그대로”라고 말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