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경남신문 문화부 김용락 기자입니다. 예고도 없이 불쑥 우편을 보내 와 조금은 당황스러워 하시진 않았을까 생각하며 편지를 보냅니다. 경남신문이 신춘문예를 진행합니다. 이에 맞춰 홍보 포스터를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인다고 생각하는 공간들’에 보냅니다. 

(중략) 이렇게 포스터를 만들고 전달하는 건 처음 하는 일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경남 어딘가에 숨어있을 유명한 예비문학인들을 찾아내고자 개인적으로 준비했습니다. 수만 시간의 고민에서, 또는 찰나의 순간에서 시작된 작품들을 기다립니다.”

연말이면 다수 언론사에서 신춘문예를 진행한다. 형식적 행사로 진행하는 경우도 많지만, 경남신문은 다르다. 지역 청년 작가가 그려준 그림으로 포스터를 만들고, 지역 문화 공간들에 포스터와 함께 직접 쓴 편지를 보냈다. 김용락 경남신문 기자가 문화부에서 처음 시도한 일이다. 지난 14일 미디어오늘 전화를 받은 김 기자는 신춘문예 심사를 앞두고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 김용락 경남신문 기자가 작성해 지역 문화 공간에 보낸 편지. 사진=김용락 기자 제공.
▲ 김용락 경남신문 기자가 작성해 지역 문화 공간에 보낸 편지. 사진=김용락 기자 제공.

“지난해 12월 문화부에 오고 나서 처음 한 일이 신춘문예 준비였다. 문화부 안에선 가장 중요한 행사다. 기간 설정부터 심사위원 섭외, 상금, 홍보까지 문화부에서 한다. 신춘문예에 여력이 없고 상금도 크지 않은데 많이들 작품을 보내주신다. 처음엔 몰랐는데 신춘문예를 이어가는 데 너무 많은 분들이 희생하고 있었다. 기자들도, 심사위원들도, 작품을 보내주시는 분들도 말이다. 지역에서의 신춘문예는 경남도민들에게 문화 창구가 되겠구나, 그렇게 신춘문예의 가치를 느꼈다.”

신문사들이 보통 그렇듯, 경남신문도 ‘신춘문예 응모’ 단신 기사 외엔 별다른 홍보를 하지 않았다. 작품 수는 적지 않았지만 경남도민들의 작품은 잘 들어오지 않았다. 신춘문예를 하는지 모르는 지역민도 많고, 지역신문에서 등단해도 작가로서 활동하기 힘들다는 생각에 서울 언론에 지원하는 사람들도 많다. “경남도민들이 경남신문 신춘문예에 응모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김 기자의 목표였다. 

▲ 경남신문 신춘문예 포스터. 사진=김용락 기자 제공.
▲ 경남신문 신춘문예 포스터. 사진=김용락 기자 제공.

김 기자는 창원에서 활동하는 박준우 청년 화가에게 ‘신춘문예’를 주제로 그림을 그려달라고 의뢰했다. 흔쾌히 수락한 박 화가는 봄을 기다리는 노란색 개나리를 그림에 담아냈고, 김 기자는 이를 토대로 직접 포스터를 디자인했다. 그림을 사고, 포스터를 인쇄하는 등 비용엔 사비를 들였다. 작은 서점, 문화 관련 카페 등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경남의 문화 공간에 포스터를 보냈고, ‘경남신문을 믿고 보내달라’고 전하기 위해 직접 편지를 썼다. 

▲ 창원 화이트래빗바에 붙은 경남신문 신춘문예 포스터. 사진=김용락 기자 제공.
▲ 창원 화이트래빗바에 붙은 경남신문 신춘문예 포스터. 사진=김용락 기자 제공.

응모 수는 눈에 띄게 늘었다. 지난해에 비해선 500편 가량이 늘었다. 특히 단편소설의 경우 역대 최고 응모 수를 기록했다. 무엇보다 김 기자의 바람대로 경남도민 응모자들이 늘었다. “응모 봉투를 직접 뜯는데, 확실히 경남 응모자들이 많아졌다. 창원에도 포스터를 보냈는데 창원에서 온 응모가 확실히 많다. 나름 포스터가 효과가 있었나 보다(웃음)” 경남도민들의 ‘창구’ 역할을 하는 지역언론의 역할이 돋보인 순간이다. 

“지역만의 문화씬” 형성 담아낸 ‘무나공간’ 기획

김용락 기자는 1년 간 문화부에서 취재하며 다양한 기획을 시도했다. 가장 먼저 시작한 건 ‘무나공간’ 기획이다. 경남 지역에 있는 문화 공간을 직접 찾아가 소개하는 기획이다. “지역 문화부 기자가 해야 할 일은 도민들이 지역에 있는 문화 예술 콘텐츠를 향유할 수 있도록 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문화부에선 보통 공연, 책 전시를 소개하는데 ‘공간’에 대한 기사는 없었다.” 김 기자는 창원, 통영, 김해, 마산 등 경남 곳곳을 찾았다. 

‘누구나 편하게 갈 수 있는 문화 공간’을 발굴하고 알리는 게 목적이다. SNS로 찾아보고 알음알음 주변인들에게 추천받기도 한다. 무나공간은 ‘묘책’이라는 고양이 책방 소개로 첫 발을 뗐다. ‘살롱드계단길’에선 젠트리피케이션(구도심 지역이 활성화 된 후 유입한 계층이 기존 원주민을 대체하는 현상) 때문에 창원 가로수길에서 마산 구도심으로 이사하면서도 ‘그냥 좋아서’ 음악 공간을 운영하는 청년 이야기를 담았고, 라이더 카페 ‘브룸(VROOM)’을 취재하면서는 라이더들에 대한 안좋은 편견을 깰 수 있는 라이딩 문화를 알렸다.

▲ 무나공간 '살롱드계단길' 기사 지면.
▲ 무나공간 '살롱드계단길' 기사 지면.

한 달에 한 편 내보내는 기사로는 부족해 ‘무나공간’ 인스타그램 계정(@munagonggan)을 만들었다. 손 모양 챌린지도 만들어 도민들이 자연스럽게 문화공간을 알고 확산시킬 수 있게 했다.

▲ 무나공간 챌린지. 사진=김용락 기자 제공.
▲ 무나공간 챌린지. 사진=김용락 기자 제공.
▲ 무나공간 챌린지 참가자들. 사진=김용락 기자 제공.
▲ 무나공간 챌린지 참가자들. 사진=김용락 기자 제공.

“원래 문화에 하나도 관심이 없었다. 미술관을 한 번도 가본 적 없었을 정도다. 취재를 하면서 지역에 문화를 향유하는 분들이 많다는 걸 처음 알았다. 지역 문화공간은 많이 생기고 또 많이 없어진다. 보통 사람이 없어서 사라지는 경우가 많다. 많은 분들이 다른 일을 하면서 공간도 운영하고, 돈이 될 순 없지만 꿈을 키워가고 있다. 그러면서 ‘지역만의 문화씬(Scene)’이 형성되고 있는 것 같다. 지역 문화가 태동하고 있음을 느꼈다.”

<경남 예술인을 담다>는 김 기자가 가장 아끼는 기획이다. 인터뷰 코너가 따로 없었던 문화부에서 경남 지역의 인정받는 예술인들을 찾아가는 인터뷰 기획을 만들었다. 첫 번째 인터뷰로 성윤석 시인을 만나기 전엔 밤새 시인의 시집을 읽고 모든 시를 외워갔다. 서울에서 거주했던 성 시인은 김 기자와의 인터뷰를 계기로 다시 마산으로 돌아왔다. 성 시인은 지역에서 출판사를 만들어 지역 문학인들을 키워내고 있다. “한 분의 인생을 바꿨다고 말해주시기도 하셨다. 의미가 크게 느껴졌다.”

지역 문화 알릴 수 있는 유일한 창구인 ‘지역언론 문화부’

언론사에서 문화부는 사회부, 정치부에 비해 중요성이 떨어지는 부서로 인식되곤 한다. 1년 간의 문화부 취재를 마치고 이번 달부터 다시 사회부로 돌아가게 된 김 기자는 지역에서 문화부의 역할이 중요한 이유를 강조했다. 지역언론은 지역 문화를 알릴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창구라는 이야기다.

“기자들이 기사를 찾을 때 연합뉴스를 많이 본다. 그런데 연합뉴스 문화 코너에 지역 문화는 올라오지 않는다. 지역에선 그 지역 문화를 알려주는 사람이 없다. ‘우리 아니면 아무도 이들을 알리지 못한다’는 생각에 지역언론 문화부가 중요하다고 느꼈다. 경남도민들이 지역 문화를 즐기는 데 어려움을 느끼지 않았으면 좋겠다. 누구나 쉽게 지역 문화를 향유할 수 있게 역할을 해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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