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당이 내년 예산 심사 과정에서 원전 예산을 삭감하자 “예산안 테러”, “원전 생태계 사망” 등의 기사가 나왔다. 특히 SMR(소형모듈원전) R&D 예산을 없앤 것에 강하게 반발했는데 대부분 기사에서 미국 뉴스케일 사업 무산 등 SMR에 대한 현재 상황이 담기지 않아 “무책임한 언론보도”라는 비판이 나왔다.

▲ 지난달 20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전체회의가 여당 의원들이 불참한 채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 지난달 20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전체회의가 여당 의원들이 불참한 채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20일 더불어민주당은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전체회의에서 SMR R&D를 비롯해 원전 생태계 지원, 원전 수출 분야 예산 1820억 원을 삭감한 내년도 산업부 예산안을 단독 의결했다. 여당은 예산안에 반대하며 회의에 불참했다.

보수신문을 중심으로 원전 예산 삭감에 강한 반발이 나왔다. 조선일보는 지난달 21일 1면 <원전 생태계 두 번 죽이는 야당> 기사를 내고 “산업부의 원전 관련 예산은 7500억 원인데 방사성 폐기물 관련 예산과 원전 주변 지역 주민 지원, 국제 협약으로 매년 내는 국제핵융합실험로 분담금 예산 등 의무 지출 예산을 제외한 70%가 감액됐다”며 “중소벤처기업부의 R&D 예산 중 208억 원도 원전 R&D라며 삭감했다. 이대로 예산결산위원회와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 내년 국내 원전 산업의 연구·개발은 멈추게 되고, 원전 생태계 복원도 요원해지게 된다는 우려가 커진다”고 했다.

▲ 조선일보 지난달 21일자 기사.
▲ 조선일보 지난달 21일자 기사.
▲ 지난달 21일자 동아일보 1면 기사.
▲ 지난달 21일자 동아일보 1면 기사.

특히 SMR R&D 예산이 사라진 것을 비판했다. 동아일보는 1면 <野, 원전 예산 1813억 깎아… 與 “에산안 테러”> 기사에서 “차세대 원전으로 주목받는 소형모듈원전(SMR) 산업 관련 R&D 지원 대부분이 사라지는 셈”이라며 “관련 예산이 삭감되면 국내 SMR 산업에 타격이 불가피하다”는 원전 업계 주장을 인용했다. 중앙일보는 지난달 22일 <자가당착에 빠진 민주당의 SMR 예산 삭감 횡포>에 이어 28일 <세계는 SMR 경쟁, 한국은 예산 전액 삭감> 칼럼을 연달아 냈다.

조선일보는 지난달 20일 사설 <소형 원자로 332억 깎고 국회 예산 364억 늘린다니>을 내고 “SMR은 발전량이 500메가와트(㎿)급 이하인 소형 원전으로, 대형 원전보다 안전성·경제성이 뛰어나 차세대 에너지원으로 꼽힌다”며 “미국은 지난해 SMR 연구·개발에 16억5000만 달러의 예산을 배정했다. 프랑스도 10억 유로를 투자하겠다고 했고, 영국은 2050년까지 SMR 16기를 건설한다는 계획을 밝혔다”고 했다.

▲ SMR 예산 삭감 관련 온라인 기사들. 네이버 갈무리
▲ SMR 예산 삭감 관련 온라인 기사들. 네이버 갈무리

온라인에도 예산 삭감 보도가 수십 개 나왔다. “생태계 붕괴 우려 커진다”, “탈원전 망령 되살리나” 등의 제목이다. 아침신문 중에선 한겨레만이 지난달 26일 <소형모듈원전 예산 삭감에 반발하지만…성공 사례가 없다> 기사에 이어 지난 4일 <“새 원전은 좌초자산 확대” vs “재생에너지 위해 값싼 원전 포기 안돼”> 기사를 냈다.

업계 우려와 여당 비판이 주로 담길 뿐 SMR에 대한 검증이 없었다는 비판이 나온다. 에너지전환포럼은 지난달 26일 이슈브리핑을 내고 “정부·여당·언론이 SMR 허위과장 논리를 확대 재생산해 기업들의 잘못된 투자를 오도하고 있다”며 “교차검증없이 SMR을 홍보하고 있어 ‘묻지마’식 원전투자와 혈세낭비를 부추긴다”고 비판했다.

▲ 지난달 26일 에너지전환포럼 이슈브리핑.
▲ 지난달 26일 에너지전환포럼 이슈브리핑.

특히 SMR 예산 삭감 보도를 놓고 “비난성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원전 개발사업의 타당성을 판별할 전문성도, 교차검증할 의지도 없는 언론사들이 ‘SMR은 대형원전보다 안정성과 경제성이 뛰어나다’며 무책임하게 ‘아무말 대잔치’를 한다”며 “미국 뉴스케일에 투자한 국내기업들과 개인투자자들이 이미 수천억 원대의 손실을 입은 상황에서 일말의 반성도 없이 또다시 홍보성 SMR 언론보도는 주가조작 세력을 방불케 한다”고 했다.

SMR은 열을 식히기 쉽고 작은 부지를 활용하는 등 경제성이 예상돼 대표적 ‘미래 먹거리’로 꼽혔다. 하지만 가장 앞서가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던 미국 뉴스케일이 최근 미국 유타주 발전사업을 철회해 주가 폭락을 경험했다.

▲ 뉴스케일 SMR 설계안. 사진=뉴스케일 홈페이지
▲ 뉴스케일 SMR 설계안. 사진=뉴스케일 홈페이지

뉴스케일은 암호화폐 채굴업체 ‘스탠다드파워’와 대형전력공급 계약이 남아 있어 이번 사업 철회가 SMR 개발사업과 큰 영향이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미국 증권가에서 발표한 공매도보고서에 뉴스케일이 사업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재정여건과 사업규모에 걸맞지 않은 위장업체를 내세운 증권사기, 부실공시에 해당한다는 내용이 담겨있어 큰 논란이 일었다. 뉴스케일의 사업 철회 발표 전후로 16개의 증권 소송 전문로펌들이 뉴스케일에 대한 집단 손해배상소송 원고인단을 모집하고 있는 상황이다.

석광훈 에너지전환포럼 전문위원은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사실상 사망선고”라며 “최근이 아닌 2000년부터 미국이 지원한 프로젝트다. 사업 지역인 유타도 정상 시장이 아닌 틈새 시장이었다. 전기요금이 비싸 정상적인 전기 사업자가 영업이익을 올릴 수 없는 곳이었는데 거기서도 실패한 것”이라고 말했다.

석광훈 위원은 “뉴스케일과 다른 업체는 하늘과 땅끝 차이다. 뉴스케일은 2000년부터 지원을 받았지만 다른 업체들은 지원을 최근에 받기 시작했다”며 “설계를 완성하기조차 어려운 기업들이 대부분이다. 뉴스케일이 유일한 희망이었는데 틈새 시장에서도 재생에너지한테 밀려 어려워진 상황이다. 국내기업도 25년 동안 스마트 원전 지원을 받았는데 어떻게 생겼는지, 무엇이 문제였고 개선할 수는 있는지 등이 명료하게 나와 있지 않다. 따지지 않고 투자를 반복하면 과거를 반복하겠다는 이야기밖에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 지난 8월28일 조선일보 기고.
▲ 지난 8월28일 조선일보 기고.

지난 8월 말 2024년도 예산안 편성 당시 정부는 건전재정을 강조하며 R&D 예산을 삭감했다. 다수 신문은 그때 R&D 축소를 지지하는 사설·칼럼을 낸 바 있다. 조선일보는 지난 8월28일 <과도한 R&D 예산 들어내기… 누군가는 해야 한다> 기고에서 “R&D라는 탈을 쓰고 예산을 받아가며 결과물은 내지 않았던 사업은 또 얼마나 많았나”라고 했다.

한국경제는 지난 8월30일 사설 <긴축의지 돋보이는 내년 예산안…건전재정 원년 삼아야>에서 “윤석열 정부의 건전재정 의지가 분명히 담겼다고 평가할 만하다”며 “부문별 지출 내역을 보면 이모저모 많이 고심한 흔적이 엿보인다. 팽창 일변도로 그간 무풍지대였던 연구개발(R&D) 예산을 5조2000억 원, 효율성 없는 보조금 사업을 3조8000억 원 삭감하는 등 총 23조원 규모의 지출 구조조정을 단행했다”고 했다.

▲ 지난 8월30일자 매일경제 4면 기사.
▲ 지난 8월30일자 매일경제 4면 기사.

매일경제도 8월30일 <나눠먹기 R&D 예산 5조 삭감… 그 돈으로 'A·B·C·D' 키운다> 기사에서 “소규모 사업에 잘게 나눠 지원했던 ‘모래알’ R&D 예산을 수술하는 한편 실제로 산업적 성과를 낼 수 있는 분야에 재원을 쏟아붓겠다는 ‘선택과 집중’ 전략”이라며 “R&D 예산은 2018~2022년 연평균 10.9% 불어났으나 가시적 성과를 내지 못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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