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대 7’ 경상남도 거제시의 토박이와 외지인 비율이다. 거제시 인구는 지난달 기준 23만 명이다. 1950년대엔 한국전쟁으로 기존 주민들은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고 피난민이 많이 몰려왔다. 1970년대엔 조선소가 들어오면서 외부 인력이 늘었다. 공교롭게도 거제의 조선업 종사자 비율은 70%다. 인구구성이 바뀌다보니 점점 지역문화가 사라지고 있다. 관광형 전문 테마 박물관만 있을 뿐, 거제 역사를 체계적으로 수집한 거제시립박물관도 없다.

거제엔 대학이 거제대학교뿐이다. 학생들은 성인이 되면 거제를 떠나고, 떠난 이들이 다시 돌아올 확률은 높지 않다. 말그대로 ‘물 건너 유학’길을 떠나는 셈이다. 한때 경남에서 청년 비율이 가장 높았지만, 조선소에서 일만 하러 오는 청년들이 대다수다. 거제에 유독 원룸촌이 많은 이유다. 

“그래서 저희가 역사에 진심인 거예요.” 지난 15일 오후 경남 거제 고현동 <거제신문> 사무실에서 만난 기자들이 입을 모아 말했다. 거제신문 기사는 거제역사의 초고다. 거제에 유일하게 남은 종이신문인 거제신문은 아직 조명받지 못한 거제 지역사(史)를 기록하고 있다. 16년 차 경력의 최대윤 기자는 8년 동안 거제 학생들과 함께 거제 역사 탐방을 다니고 있다. 학생들을 대상으로 역사 강의를 한 지는 4년째다. 강의 횟수만 1년에 20회 이상이다. 

▲ 지난 15~16일 경남 거제에서 만난 최대윤 거제신문 기자. 사진=윤유경 기자.
▲ 지난 15~16일 경남 거제에서 만난 최대윤 거제신문 기자. 사진=윤유경 기자.

강의할 때 쓰는 교재에 잘못된 부분이 많아서 고증을 거쳐 거제 역사 교재도 직접 만들었다. 거제시 연혁 중 틀린 부분을 고쳐주다가 직접 1년에 걸쳐 거제 역사 연혁표를 다시 만들었다. 올해에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지발위) 사업 금액을 학생들을 위한 <교과서엔 없는 거제역사 이바구> 책을 제작하는 데 썼는데, 학교와 거제시청 등에서 추가 요청이 쇄도해 2부를 찍을 계획이다. 거제신문이 꾸준히 기록해 둔 거제 역사를 바탕으로 만든 해당 책은 2016년 처음 제작해 매년 수정·보완 작업을 거쳐 배포한다. 최 기자는 사학과 대학원도 다니고 있다. 

▲  '교과서에 없는 거제역사 이바구' 책에 담긴 거제역사 연표. 사진=거제신문 제공.
▲  '교과서에 없는 거제역사 이바구' 책에 담긴 거제역사 연표. 사진=거제신문 제공.

“학생들이 거제를 떠나면 거제 역사를 배울 기회가 없는데, 교과서엔 유명한 내용 외엔 지역사가 거의 없다. 거제 역사책이 따로 만들어 진 적도 없다. 학생들에게 올바른 역사를 가르쳐보자 해서 교과서를 만들었다. 지역사는 우리 동네에 유리하게 기록하는 경우도 많은데, 교과서에선 정확성을 위해 그런 내용들을 빼기도 했다. 강의 나가면 학생들 반응도 열띠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거제 역사이기 때문에 질문도 많이 한다. 모두 거제신문이 십수년 동안 취재하며 모은 사료들이다.” (최대윤 기자)

취재 기반으로 제작한 역사·관광책…돈 안 되는 책을 5권이나 낸 이유

현재까지 거제신문이 자체 제작한 거제시 역사·관광책은 총 5권이다. 취재한 내용을 기반으로 만든 책들이다. “독자들에게 서비스로 해줄 다른 게 없지 않나. 그래서 연말이나 명절에 선물로 직접 만든 책을 보낸다.” 모든 책의 디자인부터 편집을 도맡아 한 김은아 편집기자가 말한 ‘매년 책 만드는 이유’다. 책은 지역 학교, 도서관, 시청 등에 무상으로 배포해 따로 수익을 얻진 않는다. 

▲ 거제신문이 자체 제작한 책 5권. 사진=윤유경 기자.
▲ 거제신문이 자체 제작한 책 5권. 사진=윤유경 기자.

2019년엔 거제 섬 14개를 다니며 음식·문화·역사를 발굴해 책 <거제 섬&섬길을 걷다>를 제작했다. 2020년 만든 책 <거제 다크투어>에는 임진왜란·정유재란·2차대전·한국전쟁 등 거제의 아픔과 치욕의 역사를 ‘다크투어’ 주제별로 세분화해 취재한 내용을 담았다. 2021년 책 <거제성곽답사여행 성곽박물관 거제>에선 거제의 성곽문화재와 봉수대 등을 조명하고 거제 역사와 엮은 관광코스를 발굴했다. 거제는 한국에서 성곽이 24개로 가장 많은 지역인데, 문화재로 지정된 12개 외에는 훼손이 심해 겨우 형태만 유지하고 있다. 이에 타 지역에선 성곽을 어떻게 관리·홍보하는 지도 취재했다. 거제신문이 기사로 꾸준히 기록해 둔 거제 역사를 바탕으로 만든 책 <교과서엔 없는 거제역사 이바구>는 2016년 처음 제작해 매년 수정·보완 작업을 거쳐 배포하고 있다. 

거제신문의 역사 기록은 범위가 다양하고 깊이가 있다. 올해 3월부터는 <거제사투리 늬우스 뭐라쿠노! 보이소, 이기 뭔말이고 알아 듣것소>라는 기획을 통해 매주 1편씩 거제 사투리로 쓴 기사를 싣는다. 기사에 QR코드도 같이 게재해 표준어로 바꾼 원문으로 바로 연결해 비교할 수 있도록 했다. 거제신문은 지난해 전국의 사투리 활용 사례를 취재해 사투리가 잊히는 거제의 상황과 비교했는데, 거제신문의 꾸준한 보도 이후 거제시에선 사투리를 소재로 한 도시재생사업 등을 시도하고 있다. 

▲ 거제신문 기획 '거제사투리 늬우스 뭐라쿠노! 보이소, 이기 뭔말이고 알아 듣것소' 기사. 2023년 7월24일 거제신문 지면. 사진=거제신문 제공.
▲ 거제신문 기획 '거제사투리 늬우스 뭐라쿠노! 보이소, 이기 뭔말이고 알아 듣것소' 기사. 2023년 7월24일 거제신문 지면. 사진=거제신문 제공.

시민들이 미처 알지 못했던 거제포로수용소의 역사적 배경을 보도한 기획기사로는 2019년 지역신문 컨퍼런스 대상을 수상했다. 거제포로수용소는 한국전쟁 당시 포로들을 수용하기 위해 1951년 2월부터 거제시 고현·수월지구를 중심으로 설치했는데 시인 김수영이 갇혔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포로수용소의 기록물을 세계기록유산에 등재하려는 과정에서 일본이 이를 막으러 법을 바꿔버린 사건이 있었고 거제신문은 포로수용소가 세계기록유산에 등재해야 하는 당위성을 보도했다.

이렇듯 거제신문의 꾸준하고도 깊이 있는 ‘지역 취재’는 최대윤 기자가 돌고 돌아 다시 거제신문으로 온 이유다. 2010년경 거제신문을 떠난 후 다른 언론사에서 근무한 최 기자는 3년 전 다시 돌아왔다. “이전에 일했던 지역신문은 재정악화로 종이신문이 휴간돼서 나왔다. 이후 통신사에서 일할 땐 충격이 컸다. 내가 배웠던 언론 윤리와는 많이 달랐다. 너무 자극적이었고, 지역문화 기사를 써도 ‘경찰서나 가지 왜 이런거 써오냐’며 달갑지 않게 생각했다. 지금 국장, 대표에게 다시 전화했다. 처음 시작한 거제신문에서 기자 생활을 마무리하고 싶다고 말했다.”

▲ 지난 15~16일 경남 거제에서 만난 백승태 거제신문 편집국장. 사진=윤유경 기자.
▲ 지난 15~16일 경남 거제에서 만난 백승태 거제신문 편집국장. 사진=윤유경 기자.

거제 지역엔 우후죽순으로 생긴 인터넷신문만 30여개, 대부분 1인 미디어에 가깝다. 거제에 유일하게 남은 종이신문 ‘거제신문’은 창간 후 34년 간 중심을 잡아왔다. 백승태 편집국장은 “인터넷신문이 많이 생기면서 편이 많이 갈린다. 요즘은 선거를 많이 치르다보니 편가르기가 더 심하다”며 “거제신문은 전체적 시류에 흔들리지 않고, 거제시의 중심 언론이 되려 노력해오고 있다”고 말했다. 

‘아니 신문 1면이 두 개라고?’ 거제신문만의 톡톡 튀는 아이디어 비결은

지역 생활밀착형 보도도 거제신문이 놓치지 않는 분야다. 거제 바다 지역에서 차박(차에서 잠을 자며 머무르는 것)하는 캠핑족을 추적해 차박 문화의 명암과 지자체의 미비한 대책 문제를 지적했고, 낙동강에서 거제로 밀려오는 쓰레기와 어업 등으로 버려지는 해양쓰레기를 중점적으로 다루며 지역의 쓰레기 문제에 경종을 울렸다. 거제 조선업으로 유입되는 외국인 노동자 문제를 파헤치기 위해선 직접 베트남을 찾았다. 거제 곳곳 붙은 ‘해루질은 불법입니다’ 플래카드를 보고선 불법 해루질 탐사보도를 시작했다. 

▲ 거제신문 '新해적 불법 해루질과의 전쟁 1편' 유튜브 영상 갈무리.
▲ 거제신문 '新해적 불법 해루질과의 전쟁 1편' 유튜브 영상 갈무리.

신문 1면이 두 개인 ‘거꾸로 신문’도 만들었다. 앞면부터 12면까지는 거제신문이고, 맨 뒷면인 16면부터 시작해서 4면까지는 면·동 소식을 다룬 마을신문이다. 정확하게는 하나의 신문이지만, 2개의 신문이 합쳐진 형태다. 9면·9동으로 이뤄진 거제시에서 인구가 3000명 이하인 작은 면 지역 소식까지도 주요하게 다뤄보려는 목적이다. 지난해 12월엔 거제시 하청면 소식을 취재해 ‘하청신문’을 만들었다. 마을신문은 직원들이 직접 신문을 거꾸로 접어서 끝 면이 1면으로 나오도록 해 배포한다. 김은아 편집기자는 ‘거꾸로 신문’으로 올해 바른지역언론연대 편집부문 최우수상을 받았다.

▲ 1면이 두 개인 거꾸로 신문. 사진=윤유경 기자.
▲ 1면이 두 개인 거꾸로 신문. 사진=윤유경 기자.

인력 문제로 아직 한 번밖에 발간하지 못했지만, 거꾸로 신문 형식은 거제시 단체 소개 등의 내용으로 꾸준히 시도해왔다. 김 기자는 “섹션지 형식으로 본판과 따로 인쇄하면, 사람들이 섹션지만 가져가고 우리 신문은 안보지 않나. 그래서 일부러 한 신문으로 인쇄했다. 작은 면·동 소식은 지면에 잘 못 담아서 독자들이 실어달라고 요청하기도 한다. 우리 마을 소식만 다루는 신문이 나오니 좋아하신다. 매달 이렇게 신문을 내고 싶다”고 말했다. 

책부터 거꾸로 신문까지, 모든 편집을 도맡아 하고 있는 김 기자의 편집실은 작은 규모의 사무실임에도 따로 공간이 마련돼있다. “과거 조선소 비판 기사를 쓰면, 신문을 직접 배포하던 기자들을 따라다니며 신문을 수거해가기도 했다. 마감 날마다 다음날 나올 지면을 확인하러 사무실에 찾아와서 그때부터 편집실은 따로 뒀다. 이미 기사가 넘어가서 지면을 만들고 있는 ‘편집실’만큼은 흔들리지 않기 위함이다.” (김은아, 최대윤 기자)

▲ 지난 15~16일 경남 거제에서 만난 김은아 거제신문 편집기자. 사진=윤유경 기자.
▲ 지난 15~16일 경남 거제에서 만난 김은아 거제신문 편집기자. 사진=윤유경 기자.

거제신문에 이렇듯 톡톡 튀는 아이디어가 넘쳐나는 비결은 뭘까. 기자들은 입을 모아 “회의가 길다”고 말했다. 최 기자는 “취재도 가야하고 바쁜데 하기 싫은 경우도 있지만, 여럿이 같이 의논해야 낫다. 기획취재는 100% 전체 회의를 한다. 다같이 못하면 소회의를 30분씩이라도 하면서 논의한다. 뭐라도 아이디어를 던져야 회의가 끝난다”고 말했다.

2021년부터 연재 중인 ‘류정남 사진작가와 거제 한 컷 찾기’ 기획은 거제의 숨은 명소를 알려주는 ‘조회수 1등’ 기획 기사다. 올해는 기사를 모아 <#핫 플 거제 요 어때>라는 책도 만들었다. 30년간 거제를 기록해 온 류정남 작가와 기자들이 조선업 이미지로만 굳어져 있는 거제의 다양한 아름다움을 알리려 시작했다. 기사엔 기본 지역 설명, 가는 경로, 전문 사진작가가 알려주는 사진 잘 찍는 팁 등을 담는다. 명소를 찾은 관광객 사진을 찍어주기도 하고, 요즘은 거제신문 기자들도 모델로 많이 참여한다.

▲ 책 '#핫 플 거제 요 어때' 66쪽. 사진=거제신문 제공.
▲ 책 '#핫 플 거제 요 어때' 66쪽. 사진=거제신문 제공.

지난 15일 해질녘인 오후 4시경, 기자·작가들과 함께 ‘한 컷’ 촬영을 위해 거제 둔덕기성을 찾았다. 구불구불하고 높은 산길을 차를 타고 20여 분을 올라갔다. 류 작가는 사진이 잘 나오는 장소와 구체적인 자세를 가르쳐주며 사진을 찍었다. ‘거제 사진을 찍는 이유’를 묻자 류 작가는 단번에 “거제 사랑”이라고 답했다. ‘사람들이 거제의 아름다움을 너무 모른다’는 생각과 사명감으로 거제를 기록한 류 작가가 찍은 사진들은 전국적으로 유명해져 거제 알리기에 큰 역할을 해왔다.

캄캄해진 후 둔덕기성에서 내려온 최 기자는 둔덕면사무소를 찾았다. 둔덕면의 ‘거꾸로 신문’ 섭외를 위해서다. 부담될까 일부러 찾아가 말은 못하지만, 지날 때마다 들러 이야기한다. “면장님 지금 안해줘 갖고 끝에서 보는 우리 신문 할 거리가 없다.” 연신 “아참 뭐꼬? 어떻게 만들어야하나”라고 말하던 둔덕면장은 최 기자의 설득에 마을신문을 만들어보기로 했다. 오후 6시경 면사무소에서 나와 하루를 마무리하는 최 기자의 발걸음이 가벼웠다.

▲ 거제신문을 찾은 본지 기자는 11월 셋째주 '거제 한 컷' 촬영에 참여했다. 사진=류정남 사진작가.
▲ 거제신문을 찾은 미디어오늘 기자는 11월 셋째주 '거제 한 컷' 촬영에 참여했다. 사진=류정남 사진작가.

 

월요일마다 직접 신문 배달, 유일한 종이신문 기다리는 지역민들

거제신문 전 직원들은 매주 월요일 오전 직접 신문 배달을 나간다. 9면·9동을 다섯 개의 구역으로 나눠 각자 신문 100부씩 들고 마을을 찾는다. 동네를 한 바퀴 돌면서 동네 사랑방인 농협도 가고, 면사무소, 경로당도 찾는다. 어르신들께 신문을 드리면서 매주 얼굴 보고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시간이다. 새로운 길로 걸어보거나, 차가 아닌 버스를 타는 것도 평소 지나쳤던 동네 모습을 보기 위한 나름의 방법이다. 

어르신들은 지역에 하나 남은 종이신문을 받으려 미리 기다리기도 한다. 거제신문의 변화 하나하나엔 즉각 어르신들 반응이 온다. “지금은 대판으로 신문을 찍고 있는데, 타블로이드를 찍었을 땐 어르신들이 ‘이거는 밥상도 못덮는다’고 뭐라하고, 베를린형으로 찍었을땐 ‘신문이 뭐 이리 장난감 같나’라고 뭐라하셔서 결국 다시 대판으로 바꿨다.(웃음)” (최대윤 기자)

2008년부터 10년간 ‘길거리 인터뷰’ 코너도 운영했다. 매주 거리로 나가 그 주 지역 현안을 시민들에게 물어보는 기획으로, 매주 1면에 실었다. 전 직원이 출동해 성비, 나이대, 지역별로 나눠서 질문한다. 과거 인터뷰했던 사람들을 다시 찾아가 보는 기획, 동네 어르신들 집을 찾아가 집밥 한 끼 얻어먹으며 이야기를 듣는 <밥 한그릇 주이소> 등 작지만 재밌는 기획들도 시도해왔다.

▲ 10년간 연재한 거제신문 길거리 인터뷰 기사. 사진=거제신문 제공.
▲ 10년간 연재한 거제신문 길거리 인터뷰 기사. 사진=거제신문 제공.

취재기자 4명, 편집기자 1명, PD 1명의 적은 인력에도 수많은 기획들을 숨가쁘게 해오고 있는 거제신문 기자들은 “지역 사람들이 지역을 알 수 있는 창구는 지역신문 뿐이다. 지역언론이 있어야 지역이 발전할 수 있다. 다른 신문 끄트머리에 있는 기사를 1면 머리기사로 당당하게 끌고 올 수 있는 게 지역신문이다”라고 강조했다. 

“우리도 우리의 신문을 만든다” 사람 목소리 담아내는 거제신문 역할

“우리도 우리의 신문을 만듭니다.” 지역신문의 필요성을 묻는 질문에 최대윤 기자가 1989년 거제신문 창간준비호를 언급했다.

“지금 있는 신문도 다 못 보는데 뭐하러 또 신문을 만드냐고요? 일간신문 한 모퉁이에 거제 관련 기사가 나면 남다른 관심으로 읽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 바로 우리끼리 꼭 해야 할 이야기가 있습니다. (중략) 그런데 어디 이런 이야기 맘놓고 할 터가 있었습니까? 우리 이야기 전부를 할 수도 없었고, 우리 목소리도 아니었습니다. 지금 거제신문은 이런 우리의 이야기터, 바로 우리 신문이 되고자 합니다.” (1989년 7월20일자 창간소식지 1호 <우리의 신문을 만듭니다> 중)

▲ 1989년 7월20일자 창간소식지 1호 '우리의 신문을 만듭니다'. 사진=거제신문 제공.
▲ 1989년 7월20일자 창간소식지 1호 '우리의 신문을 만듭니다'. 사진=거제신문 제공.

“지금도 그때 창간호에 담긴 내용처럼 노력하고 있다. 거제시민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게 우리의 사명이다. 과거에 비해 지역신문 인력도 줄어들고, 주간지는 경찰서에서도 출입 제외돼 할 수 있는 영역이 줄어들었다. 그래서 더 심층 보도에 파고들고, 깊이 있게 설명하려고 한다. 1면 기사가 동네잔치 기사, 경로잔치 기사라도 좋다. 사람들 목소리를 충분히 담아내는 동네신문이 되고 싶다. 지역신문이 이장까지는 아니어도 통·반장 역할은 해야하지 않을까.(웃음)” (최 기자)

거제신문에 최근 새로운 기자 두 명이 입사했다. 몇 년간 편집국장과 둘이서 기사를 써오던 16년차 전직 막내 최대윤 기자는 설레는 표정으로 말했다. “한 명은 베테랑이고, 한 명은 신입인데 보는 눈이 좋아요. 올해 조금 더 박차를 가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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