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한국언론학회 2023 가을철 정기학술대회에서 박종민 경희대 미디어학과 교수가 제50대 신임 학회장으로 임명됐다. 박 학회장은 지난해 차기 학회장으로 선출됐을 당시부터 “100년 언론학”을 강조해왔다. 언론학 탄생 100년이 넘어가는 만큼 언론학회 역시 언론학의 미래를 준비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언론은 위기 속에 있다. 정치권 공격 속에 언론 전체가 흔들리고 있으며, 시민사회에서 주장해 온 ‘공영방송의 정치 독립’은 후퇴하고 있다. 언론 신뢰도 지수는 쉽게 오르지 않고 이른바 ‘기레기’ 등으로 대표되는 언론인 혐오도 가시지 않고 있다. 학계 차원에서 사용을 지양하자고 이야기해온 ‘가짜뉴스’라는 말이 정치권에서 횡횡하고 있다. 미디어 산업 지형 역시 빠른 속도로 변해간다.

미디어오늘은 현재 상황에 대한 해결책을 듣기 위해 지난 11일 박종민 학회장을 만났다. 박 학회장은 자신의 의견일 뿐 학회 전체의 입장이 아니라는 것을 수차례 강조하면서 공영방송이 정치적으로 독립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가짜뉴스’라는 단어가 남용되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했다. 아래는 박 학회장과의 일문일답이다.

▲박종민 경희대 교수. 사진=박종민 교수 제공.
▲박종민 경희대 교수. 사진=박종민 교수 제공.

- 언론학회장 선출 소감을 부탁한다.

“1년간의 학회장 역할이 결코 쉽지만은 않다. 학회에 대한 진지한 애정과 회원에 대한 친화감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한국언론학회는 저널리즘이 강조된 학회이고 관련 학문을 대표하는 가장 뿌리 깊은 역사와 전통을 가진 학회이기 때문에 커뮤니케이션 윤리, 미디어 사회 책임, 연구윤리와 관련된 특별위원회를 구성하여 우리 사회 미디어의 자유와 책임에 관한 진지한 고민을 하고자 한다.”

- 언론학을 통틀어 가장 영광의 순간은 언제라고 보는가.

“전체 언론학으로 봤을 때, 미국의 닉슨 대통령이 하야했을 당시(1970년대)라고 본다. 워터게이트 사건을 통해 언론의 역할과 중요성이 대두됐다. 당시 미국에선 저널리즘 전공이 의과대학과 맞먹을 정도의 위상을 가지고 있었다. 지금도 인기가 없는 건 아니지만, 과거보다는 약해진 게 사실이다. 언론이 자신들의 긍정적 효과를 보여줬기 때문에 학문이 각광받을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사실 언론학은 꺾이지 않고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다양한 기술과 결합되기 때문이다. OTT와 1인 미디어가 등장하면서 미디어 양태가 변하고 있고, 최근에는 AI와 미디어가 결합했다. 연구 주제는 끝이 없다.”

- 그렇다면 위기의 순간은.

“한국 기준으론, 전두환 정권의 언론 통폐합 때가 아닐까. 어두운 시절이었다. 언론학에 제한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언론의 자유’라는 것 자체가 흔들릴 때였으니까.”

- 과거 신문방송학과가 미디어, 커뮤니케이션, 광고 홍보 등으로 이름을 바꾸고 있다. 산업의 흐름을 반영한다고 볼 수 있는 것인가.

“실제 실무 교육이 줄어가고 있다. 교육 방법이 바뀌고 있는 거다. 과거에는 언론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취재시키고, 레거시 미디어에 기사가 나가도록 도와줬다. 텍사스·미주리 대학 등 미국 저널리즘 스쿨의 모델이기도 하다. 물론 아직도 이와 같은 교육을 하는 학교가 있지만, 옛날만큼은 아니다. 등록금 문제도 있고, 도제식 교육을 잘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문제도 있다. 최근 학생들이 관심을 갖는 동영상 콘텐츠 제작은 교수들이 따라가기 힘들다. 학원도 늘어나고 있고.

다만 분명한 건 언론학은 전문 언론인으로서 가져야 할 소양을 교육한다는 점이다. 언론학회 정관에도 나오는데, 흔히 저널리즘이라 불리는 언론과 함께 커뮤니케이션도 함께 연구한다. 언론학이 K-콘텐츠, 헬스 커뮤니케이션, 조직커뮤니케이션 등 모든 것을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 신문. 사진=gettyimagesbank
▲ 신문. 사진=gettyimagesbank

- 실제 레거시 미디어의 영향력은 이전보다 줄어들고 있다. 레거시 미디어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학과 내에서도 레거시 미디어 진출을 희망하는 학생들의 수가 줄어든 느낌이 있다. 영상의 경우에도 1인 미디어, 미디어 콘텐츠 제작 분야를 지망하는 학생들이 늘었다. 이는 산업의 흐름이기도 하다. 예전에 언론고시반을 지도했을 때는 기자 지망생이 7명, PD지망생이 3명이었다면 지금은 5대 5다. PD지망생 역시 시사교양뿐 아니라 예능·드라마를 지망하는 학생이 크게 늘었다. 레거시 미디어의 영향력이 줄어드는 건 분명하다.

결국 해결책은 융합이다. 신문사라고 활자에만 치중해선 안 된다. 영상 콘텐츠 제작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한국경제의 경우 유튜브를 통해 지식 전문 채널을 개설했고, 이는 신문 구독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시너지를 내는 것이다. 이게 레거시 미디어가 지향해야 할 방향이다. 종합적인 콘텐츠 제작을 해야 한다. 전문 지식 콘텐츠 플랫폼으로 나아가야 한다.

- 언론학계와 현업 언론이 괴리됐다는 문제의식은 오래됐다. 언론학계는 현업 언론인들의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고, 언론계는 학계의 요구 사항을 따라주지 못한다는 서로 간의 지적이 있는 것 같다. 학회장 출마 당시 이에 대한 공약도 냈는데, 앞으로의 계획은.

“1959년 언론학회 창립 당시 정한 존립 취지·목적이 있다. 첫 번째가 언론·저널리즘과 커뮤니케이션 연구를 위한 학술공동체, 두 번째가 산학협력을 통한 공익 실현, 세 번째가 바람직한 언론문화 창달이다. 산학협력을 통한 공익 실현은 학회가 가져가야 할 중요한 부분임이 분명하다. 언론사 관련 협회·단체와 기자협회, 관훈클럽 등과 교류하고 있다. 이 같은 산학협력과 함께 언론인 재교육을 기자협회와 함께하고, 팩트체크 사업이나 기사 콘텐츠 수상 등을 협회들과 함께 지속적으로 실시할 예정이다. 미디어 정책과 관련해서도 세미나 등을 통해 바람직한 모델을 구축하려 한다.”

- 언론 관련 협회는 언론사주들의, 관훈클럽은 고위직 언론인들의 모임이다. 기자협회와의 교류는 좋지만, 곧바로 현장과 연결되는 것도 아니다. 기자들은 더 직접적인 소통을 원한다.

“좋은 제안이지만 학회는 협회와는 차별되기에 한계가 있다. 우선 학회 회원들의 욕구를 해소하는 걸 우선으로 추진할 수밖에 없다. 학술지의 전문화, 국제학회와의 교류 등이 일차적인 추진 과제가 될 것 같다. 하지만 현업 언론인과의 교류는 계속해나가겠다. 산학협력이 존립 근거이기 때문이다. 꾸준히 노력해야 한다.”

▲ KBS, MBC, EBS 사옥. 사진=미디어오늘 자료사진·EBS
▲ KBS, MBC, EBS 사옥. 사진=미디어오늘 자료사진·EBS

- 공영방송 지배구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현재 공영방송 지배구조를 어떻게 바꿔야 한다고 보는가.

“학회 입장이 아닌, 학자의 개인적 입장이라는 걸 분명히 하고 싶다. 공영방송 지배구조 문제는 거버넌스의 문제다. 방송문화진흥회나 KBS 이사회 거버넌스를 어떻게 구성하느냐에 대한 논의가 있어야 한다. 한국 역사를 봤을 때, 공영방송 이사회가 정치적으로 독립되지 못한 면이 있다. 정치권이 직접적으로 관여된 측면이 있다. 장기적으로 공영방송 이사회가 정치적으로 독립된 형태로 가야 한다. 공영방송의 힘과 능력이 이전만 못 하다. 그런데 정치적으로 보면 공영방송 지배구조에 너무 많이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시민들과 구성원들은 지배구조에 영향을 크게 받지 않고 있다.”

- 현행 명예훼손 법리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가.

“헌법을 보면 표현의 자유를 보장함과 동시에 책임성에 대한 언급도 있다. 표현의 자유를 최우선적으로 여기는 미국 수정헌법과 달리, 한국 헌법의 경우 사회주의적 성격을 가진 거다. 이에 따라 언론의 표현의 자유도 일부 제한받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미국은 피해를 주장하는 쪽에 입증책임이 있다고 보고 있는데, 한국은 반대다. 언론사가 직접 위법성 조각 사유를 입증해야 한다. 이 같은 문제 때문에 언론사들이 위축되는 경향도 있다. 기사를 마음대로 못 쓰는 문제도 있고. 그러나 레거시 미디어를 넘어 미디어 자체가 양이 광범위해져, 언론의 자유가 넘치는 것도 사실이다. 실제 지난 정부 때도 언론중재법을 만들려고 했다가 실패했지 않은가. 결국 표현의 자유와 명예훼손 문제는 사안별로 자세히 살피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

- 가짜뉴스 문제는 어떤가. 최근 가짜뉴스라는 키워드가 사회적 화두가 되고 있다.

“가짜뉴스 논란, 지난 정부의 언론중재법과 같은 흐름이라고 본다. 가짜뉴스를 낸 언론사를 제재하겠다는 건데 계산식을 세워서 정답을 매길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방정식처럼 ‘이건 죄가 되고, 이건 죄가 안 된다’고 결론을 내릴 수 없다. 진짜와 가짜를 가려내는 문제도 마찬가지다. 딜레마가 명확한데 명확한 해결책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가짜뉴스라는 단어가 트렌디하게 사용되고 있는데, 용어를 정확하게 쓰는 게 더 좋을 것 같다. ‘가짜뉴스’는 뉴스의 사실성에 문제가 있다는 뜻인데, 악의적인 의도를 가지고 있다는 느낌도 함께 가지고 있다. 즉 가짜뉴스는 ‘허보’다. 이는 단순한 ‘오보’와는 분명히 다르다. 하지만 지금의 ‘가짜뉴스’는 허보와 오보의 뜻을 모두 가지고 있다. 조금 더 명쾌해질 필요가 있다. 허보와 오보의 차이를 인정하고, 가짜뉴스라는 말 대신 정확한 단어를 사용해야 한다.”

▲ 가짜뉴스. 사진=gettyimagesbank
▲ 가짜뉴스. 사진=gettyimagesbank

- 미디어 전환기에 언론학회장을 맡게 됐다. 책임감이 무거울 것 같은데.

“매체 환경이 바뀌면서 언론, 방송, 광고 등 여러 개념이 재정립되고 있다. 과거에는 주파수 희소성 원칙에 따라, 주파수를 할당받은 사업자를 방송사라 불렀는데, 이제 유튜브 등 1인 미디어도 방송으로 불러야 하는 것 아니냐는 논의가 나온다. 네이버처럼 기사를 중계하는 플랫폼을 언론으로 불러야 한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런 혼돈의 시대에 언론학회는 국제표준을 따라 중심축을 잘 잡아야 한다. 언론학회의 무게감이 중요해진 시점이다.”

- 언론을 둘러싼 여러 논란이 가시지 않으면서 언론인의 직업만족도도 낮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언론인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정보 홍수 시대다. 진부한 이야기일 수 있지만, 기득권이 누리는 정보는 더 이상 가치가 없어졌다. 예컨대, 대학교 수업에서 나오던 학문적 이야기는 이제 유튜브에서 다 볼 수 있다. 정보 독점의 시대는 의미 없어졌다. 이제 언론인이라면 전문적인 정보에 대한 관점과 시각을 제시해줘야 한다. 어떤 정보가 가치있는 것인지에 대한 식견과 전문성을 이야기해야 하는 것이다. 혜안이 필요하고, 관찰력도 있어야 한다. 발 빠른 통찰력이 필요한 시기다. 스페셜리스트만 살아남을 수 있다. 어렵지만, 해내야 한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