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을 앞두고 가장 큰 걱정은 모듬전 한 접시를 먹을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실은 평소에도 워낙 잘 먹고 살아서, 명절음식이라고 특별한 걸 찾진 않지만 이상하게도 명절이면 전 한 접시는 꼭 먹고 싶어진다.

친척들과 척을 질 특별한 사건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언젠가부터 자연스레 명절에 만나는 이들이 적어졌다. 삶의 발전을 좇거나 불운을 피해 자의로 타의로 점점 흩어졌고 마땅한 선언도 없이 제사도 지내지 않게 되었다. 올해는 하나뿐인 형제마저도 좋은 기회로 외국에 있어, 긴 연휴 동안 뵐 가족이 어머니 한 분뿐이었다. 올릴 제사상도 없는데 어머니도 나도 굳이 전을 꼭 챙기지는 않지만, 올해는 어머니가 그냥 마음이 내켰다며 전 몇 종류를 부쳐놓으셔서 다행히 거르지 않았다.

추석날 밤, 식은 모듬전 한 접시를 앞에 두고 우리사회의 가족에 대해 생각했다. 혈연 가족에게 친밀성을 기대하기 어려운 많은 이들은 연휴 기간에도 내내 플랫폼 배송을 하며 여윳돈을 챙긴다. 동성 애인과 십수년 째 같이 살고 있는 내 친구 부부는 각자 찢어져 본가에 가서 왜 결혼도 연애도 안 하냐는 핀잔을 가득 챙겨온다. 200만 명을 넘긴 국내 체류 외국인들은 가게가 문을 닫는 명절 전에 미리 편의점 도시락을 사놔야 굶지 않는다는 팁을 공유한다. 그리고 너무나 많은 빈곤 노인 1인가구들은 공공시설이 문을 닫는 연휴에 가장 고립된 시간을 보낸다.

명절은 누가 누구와 어떤 방식으로 돌보고 함께 사는지, 또는 함께 살 수 없는지를 보여주는 시간이다. 지난 시대 명절에 대한 논란은 가족 내 공정과 차별에 대한 것이었다. 형제 간 재산 분쟁이 일어난다던지, 주부들이 명절 증후군에 시달리고 친정에 가지 못하거나 하는 모습처럼 말이다. 요새의 명절 풍경은 이런 모습에 더해 가족이 점차 재생산되지 못하고 점점 흩어지기만 하는 모습이 겹쳐진다. 가부장적인 가족 의무에서는 점차 벗어나고 있지만, 이런 의무가 사라진 이후에 우린 어떤 동기와 감정을 가지고 서로 함께 살아가며 환대해야 할지를 찾지 못하고 있다. 이 나라의 명절엔 소비만 남고 ‘함께 사는 즐거움’은 사라지고 있다.

▲ 이정미 정의당 대표가 5월31일 오전 국회 본청 앞에서 열린 가족구성권 3법(혼인평등법·비혼출산지원법·생활동반자법) 발의 기자회견에서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 이정미 정의당 대표가 5월31일 오전 국회 본청 앞에서 열린 가족구성권 3법(혼인평등법·비혼출산지원법·생활동반자법) 발의 기자회견에서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우리 사회의 다양한 동거 관계를 보호하기 위한 생활동반자법의 입법 논의는 전혀 진척이 없다. 국회에서 법안심사가 집중적으로 이뤄지는 9월이 다 지났는데도 말이다. 소관 상임위인 법제사법위원회는 9월 내내 법사위 소관 법률안을 대상으로 한 법안소위를 실질적으로 한 번 여는데 그쳤다. 지난 4월, 5월 생활동반자법안이 연이어 발의된 데 이어 6월 법사위 전체회의에서 격론이 벌어진 것에 비하면 논의가 너무 빨리 잦아들었다.

재선을 위한 국회의원들의 지역구 관리에 치이고 정치 현안들에 밀려, 생활동반자법은 한번 훑어보아질 기회도 갖지 못했다. 특히 모든 안건이 일단은 한번 거쳐야 하는 상임위 전체회의와 달리, 법안소위는 상임위 국회의원이 직접 챙기지 않으면 안건으로조차 채택되기 어렵다. 생활동반자법처럼 전례가 없고 내용이 많은 제정안의 경우 누군가 책임지고 물밑에서부터 논의를 진행시켜야 하지만 그렇게 발 벗고 나서는 의원들은 보이지 않는다. 총선을 6개월 앞두고 거리 곳곳에 걸린 추석인사를 빙자한 홍보 현수막들을 보자니 국회의원들은 외로움과 돌봄 공백을 느낄 새 없이 바쁘긴 한 듯 했다.

▲ 다큐멘터리 영화 '홈그라운드' 스틸컷.
▲ 다큐멘터리 영화 '홈그라운드' 스틸컷.

다큐멘터리 영화 <홈그라운드>의 주인공인 ‘명우형’ 윤김명우는 26년 째 레즈비언바를 운영하고 있다. 그는 명절이면 각종 전을 비롯한 명절음식을 잔뜩 마련해 손님을 맞이한다. 그의 가게는 연휴 내내 닫히지 않는다. 우리가 그래도 명절을, 매일매일을, 그리고 그 누계인 인생을 즐거워 할 수 있는 건 이런 환대들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환대들은 결코 혈연과 혼인이라는 법적 가족의 틀에 갇히지 않는다. 누군가와 같이 살아가겠다는 마음, 서로를 환대하는 자세, 서로 돌보고 의지하겠다는 의지는 우리 사회에서 너무나 귀한 것이 됐다. 이런 귀한 것들을  좀더 귀하게 대우해야 한다. 혈연과 혼인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이들은 너무 한가해보인다. 지금 우리 사회는 제발 좀 어떤 관계든 함께 좀 살아달라고 애걸복걸해야 할 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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