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작가·영화배우·싱어송라이터 등 각계 문화예술인들이 국회 본회의가 열리는 21일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2·3조 개정안 통과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문화예술노동연대 등은 2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문화예술노동자의 실질적 사용자인 ‘진짜 사장’이 책임지도록 노조법을 개정하라”고 촉구했다. 노조법 2·3조 개정안은 사용자 범위를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사용자’로 확대하고 노동자 파업에 대한 회사의 무분별한 손해배상청구·가압류를 제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노란봉투법’이라고도 불리는 개정안은 21일 오후 열리는 본회의에 부의돼 상정 여부가 주목 대상이다.

▲문화예술노동연대 등은 본회의 개최를 앞둔 2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문화예술노동자의 실질적 사용자인 ‘진짜 사장’이 책임지도록 노조법을 개정하라”고 촉구했다. 사진=김예리 기자
▲문화예술노동연대 등은 본회의 개최를 앞둔 2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문화예술노동자의 실질적 사용자인 ‘진짜 사장’이 책임지도록 노조법을 개정하라”고 촉구했다. 사진=김예리 기자

이들은 공동성명을 통해 “우리 예술인은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노동자가 아니라는 착각을 강요받아 왔다. 이곳저곳에서 활동해 ‘전속성’이 없다는 이유로 노동조합 활동할 권리조차 온전히 보장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직접계약을 체결하지 않더라도 노동조건에 관해 실질적 권한을 행사하는 이들과 노동자들이 교섭을 할 수 있게 돼야 한다. 노조법 개정은 헌법이 정한 우리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한 발걸음이자 최소한의 법적 정비”라고 강조했다.

하신아 웹툰작가노동조합 위원장은 “이럴 줄 몰랐다. 2·3조 개정을 아직도 촉구해야 한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웹툰작가 대다수는 제작사와 계약을 맺고 일하며 제작사는 거대 플랫폼과 계약을 맺는다. 그러나 웹툰작가들은 플랫폼으로부터 지시·감독과 평가를 받으며 일해 플랫폼과 교섭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플랫폼은 우리 작업에 세세하게 개입한다. ‘(캐릭터가) 입은 옷을 검정색이 아니라 빨간색으로 바꿔라, 여기는 펜 선이 끊겼으니 이어달라’ 등등이다. 우리는 분명히 관리받고 통제 받으며 일하는데 그들은 우리가 그냥 자유롭고 대등한 개인사업자란다. 현행법상 플랫폼을 사용자로 호명하기 쉽지 않고 제작사를 상대로도 마찬가지다.”

하신아 위원장은 “2021년 ILO(국제노동기구) 기본협약 98호(단결권과 단체교섭권 보호)와 87호(결사의 자유와 단결권) 등이 드디어 비준됐을 때 우리 웹툰창작 노동자들도 보호받을 수 있겠다고 안심했는데 섣불렀다”며 “ILO 협약 이행을 책임져야 할 고용노동부 장관이 노조법 개정안에 반대 의견을 표명하고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까 말까하는 상황이 기막히고 참담하다”고 말했다.

▲문화예술노동연대 등은 본회의 개최를 앞둔 2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문화예술노동자의 실질적 사용자인 ‘진짜 사장’이 책임지도록 노조법을 개정하라”고 촉구했다. 사진=김예리 기자
▲문화예술노동연대 등은 본회의 개최를 앞둔 2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문화예술노동자의 실질적 사용자인 ‘진짜 사장’이 책임지도록 노조법을 개정하라”고 촉구했다. 사진=김예리 기자

영화배우도 발언에 나서 노조할 권리 보장을 요구했다. 지난 8월 노동조합 설립 신고를 한 한국영화배우조합의 박근태 위원장은 “노동청이 현재까지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설립필증을 교부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노동청이 아는지 모르겠지만 배우는 두 가지 방식으로 활동한다. 하나는 소속사와 전속계약을 맺는 것인데 이 경우 소속사가 제작사와 교섭하고 출연계약서를 쓰며 배우에게 수익금을 분배한다. 또 하나는 배우가 직접 제작사와 출연계약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노동청은 소속사가 있는 조합원은 이를 이유로 (근로계약이 아니라며) 노동자로 인정할 수 없다고 하고, 전속 계약서가 없는 배우는 개인사업자라는 이유로 노조할 권리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노조법 2·3조가 조속히 개정돼 돈 받고 일하는 노동자가 누구나 노동자로 인정받고 사용자와 교섭할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미디어비정규직 노동인권 단체 ‘방송을 만드는 사람들의 이름 엔딩크레딧’의 진재연 집행위원장은 “수많은 방송 현장의 문제를 제기한 지 수년째다. 그러나 책임지고 해결해야 할 방송사는 비정규직 프리랜서 노동자의 노동 조건을 결정하고 저임금에 부려먹으며 경제적 이익을 누리면서도 사용자 의무는 지키지 않는다”고 했다.

진재연 집행위원장은 “노조법 개정 통과로 방송사업장에도 노조할 권리가 보장돼야 한다”며 “현재 노조법상 노조로 인정받아 제작사와 교섭을 하는 한국방송연기자노동조합도 이번 노조법 개정으로 OTT 등 수많은 새로운 사용자와 교섭이 열릴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했다.

▲문화예술노동연대 등은 본회의 개최를 앞둔 2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문화예술노동자의 실질적 사용자인 ‘진짜 사장’이 책임지도록 노조법을 개정하라”고 촉구했다. 사진=김예리 기자
▲문화예술노동연대 등은 본회의 개최를 앞둔 2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문화예술노동자의 실질적 사용자인 ‘진짜 사장’이 책임지도록 노조법을 개정하라”고 촉구했다. 사진=김예리 기자

출판 편집자인 안명희 언론노조 서울경기지역출판지부장은 “우리 출판노동자는 보통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하거나 외주 프리랜서다. 이 말을 듣고 출판산업이 열악하다 생각하겠지만 그렇지 않다. 한국 콘텐츠산업 가운데 최대 매출을 올리고 세계 10위권에 드는 규모”라며 “5인 미만과 외주화는 ‘영세성’이 아닌 ‘양극화’의 문제다. 출판사의 사용자 책임 회피를 위한 것”이라고 했다.

안 지부장은 “초기업단위로 산별교섭을 해야 하기에 대한출판문화협회에 교섭 신청을 했지만, 사용자단체임을 거부하고 있다”며 “오늘 본회의에 올라갈 노란봉투법의 한계는 분명히 존재하지만, 많은 예술노동자들이 노조할 권리를 보장 받으려면 오늘의 노조법이 개정돼야 한다”고 했다.

이씬정석 문화예술노동연대 대표 겸 뮤지션유니온 조합원은 “모든 문화예술노동자들이 노동을 제공하는 것 자체로 사용자가 존재함에도 우리 사회에서 이를 지우고 있다. 노조법 개정 운동은 문화예술인들이 자기 존재, 직업적 정체성을 찾는 과제이기도 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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