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S 어린이 프로그램 <딩동댕 유치원>에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캐릭터 ‘별이’가 새로 등장했다. 40년 동안 방영된 EBS의 대표 어린이 프로그램 딩동댕 유치원은 지난해 5월 개편부터 다양한 아동의 모습을 한 손인형으로 프로그램을 만들어가고 있다. 

딩동댕 유치원에는 신체 장애가 있어 휠체어를 타는 ‘하늘이’, 다문화 가정 아동 ‘마리’, 태권도를 좋아하는 여아 ‘하리’, 책을 좋아하는 문학소년이자 조손 가정 아동 ‘조아’, 유기견이었던 ‘댕구’ 등 사회적 고정관념에서 벗어난 아동 캐릭터들이 출연한다. 젊은 여성을 유치원 선생님 역할로 등장시키는 대다수 어린이 프로그램과 다르게 ‘어린이의 감정을 잘 알고 갈등을 포용해줄 수 있어야 한다’는 기준으로 딩동샘 역할의 배우를 섭외했다. 

▲ EBS 어린이 프로그램 '딩동댕 유치원'. 사진=EBS 제공.
▲ EBS 어린이 프로그램 '딩동댕 유치원'. 사진=EBS 제공.

제작진은 차별에서 비롯된 편견을 깨고 모든 아이들이 공존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기 위해 다양한 캐릭터 등장을 이어가고 있다. 왜곡과 편견 없이 별이를 묘사하기 위해 손인형 연기자, 성우, 작가, PD가 다 함께 1년여간 준비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지현 EBS 유아어린이부 PD는 지난 18일 미디어오늘에 “모든 아동이 주인공인 어린이 프로그램을 만들고싶었다”며 “어린이 프로그램은 어린이와 학부모 모두를 교육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어린이 눈높이에서 이해할 수 있게” 노래·그림·비유로 표현한 별이의 생각

별이는 지난 18일 딩동댕 유치원에 처음 등장했다. 본래 지난해 5월 개편 당시 신체 장애를 가진 아동, 다문화 아동 등 다른 캐릭터들과 함께 등장시키고 싶었지만, 자폐 아동 캐릭터 묘사를 위한 제작진들의 공부가 부족하다는 판단에 1년 간 준비 시간을 가졌다. 

“미국 PBS 방송사의 어린이 프로그램 <세서미 스트리트>의 경우엔 이미 6~7년 전에 등장한 캐릭터들이고, 자폐가 있는 아동의 비율은 점점 늘고 있다. 당연한 시대적 흐름을 어린이 프로그램에서 반영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세서미 스트리트>(Sesame Street)에는 청각 장애를 가진 린다, 다운증후군을 가진 제이슨, 휠체어를 타는 타라, 시각 장애를 가진 아리스토텔레스, 자폐성 장애를 가진 줄리아가 등장한다.

▲ 세서미 스트리트의 한 장면.
▲ 세서미 스트리트의 한 장면.

제작진은 넓은 자폐 스펙트럼 중 어느 정도 수준의 자폐를 가지고 있는 아이인지 설정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전문가 자문을 받아 아이들이 주변에서 가장 자주 볼 수 있는 자폐 행동 특성을 꼽았고, 어떻게 5~7세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게 설명할 지 고민했다. 

“아이들은 노래, 그림으로 보다 쉽게 이해한다. 비유적 표현도 필요하다. 자폐 아동의 행동을 보여주고, 유치원생 아이들이 보기에 친구가 왜 이러한 행동을 하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게끔 대사로 궁금증을 풀어주려 했다. 딩동댕 유치원 선생님인 ‘딩동샘’이 대사로 설명해주고, 그걸 이해했을 때 아이들의 반응도 대사로 보여줬다. 별이라는 캐릭터를 잘 알고 이해시킬 수 있게 하는 데 가장 신경썼다.”

첫 방송에선 딩동샘이 친구들에게 별이를 소개하며 별이의 특성을 설명했다. 친구들이 별이의 행동에 당황하거나 궁금해하면, 딩동샘은 행동의 이유와 별이의 생각을 설명해준다. 아이들은 딩동샘의 설명을 듣고 별이를 이해하고, 별이와 함께 별이가 좋아하는 자동차 장난감을 가지고 논다. 별이의 생각과 감정들은 별이의 머릿속 그림으로 표현했다. 자폐 아동이 어떤 상태에서 어떤 행동을 하는지 알려주고, 자폐 아동과 똑같이 친구가 될 수 있다는 점을 말하는 것에 집중했다.

첫 방송 중 자동차 경적 소리를 듣고 크게 놀란 별이를 보고 의아해하는 친구들에게 딩동샘은 이렇게 말한다. 

“별이는 너희들이 놀란 것보다 조금 더 놀랐어. 왜냐면 별이는 소리, 빛, 냄새 같은 것에 훨씬 더 예민하거든. 별이가 어떻게 느끼냐면 (노래) 물소리, 바람소리, 경적소리, 세상의 모든 소리가 별이에게 이렇게 들려. 맴맴 매미소리가 더 크게, 짹짹 새소리가 더 크게, 세상 모든 소리가 더 크게, 그럴 땐 기다려줘. 별이 느낀 소리가 작아질 때까지”

▲ 지난 18일 방송된 EBS 딩동댕 유치원 '안녕, 별아?' 방송화면 갈무리. 별이의 머릿속을 표현한 그림이다.
▲ 지난 18일 방송된 EBS 딩동댕 유치원 '안녕, 별아?' 방송화면 갈무리. 별이의 머릿속을 표현한 그림이다.

편견과 왜곡 없이 자폐 아동을 그려나가기 위해 제작진은 1년 여의 시간동안 준비했다. 기본적 자료조사를 위해선 특수학교, 통합학급 교사 등을 찾아 자문을 구했다. 자폐를 가진 캐릭터들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국내외 픽션과 다큐멘터리를 찾아보며 공부했다. 특히, 자폐 아이를 둔 부모가 본인의 일상을 찍어 올리는 유튜브 브이로그 영상을 많이 참고했다. 대본을 쓸 때는 전문가들에게 몇 차례 피드백을 받으며 대사를 수정했다. 

손인형 연기로 진행되는 프로그램인 만큼 손인형 연기자와 성우의 역할도 중요하다. 눈 깜빡임, 눈 맞춤 등 인형으로 세밀하게 표현하기 어려운 부분들을 표현할 수 있는 방법과 대사상엔 없는 호흡 등을 연기하기 위해 노력했다.

“첫 촬영 때 성우님들이 본인 촬영이 끝나고 나서도 인형 연기자들의 촬영 장소로 와서 한참을 바라보셨다. 촬영이 끝난 후 고생했다고 말하다가 결국 우셨다. 본인도 이 캐릭터의 마음 속이나 생각을 100% 파악할 수 없다보니, 공부를 많이 했는데도 계속 힘드셨던 것 같다. 대사 하나, 표현 하나에 엄청 많은 고민과 공부를 하면서 제작하고 있다.”

▲ EBS 딩동댕 유치원 촬영 현장. 사진=EBS 제공.
▲ EBS 딩동댕 유치원 촬영 현장. 사진=EBS 제공.

첫 방송 직전 배포된 보도자료에 ‘별이는 보호자가 항상 곁에 있어야 하고 딩동댕 유치원에 다니지 않는다’는 문구로 논란이 되기도 했다. ‘또다른 차별과 배제’라는 비판이 이어졌고, 제작진은 논란 직후 보도자료 작성 과정에서의 실수였음을 밝히며 별이가 유치원에서 함께 어우러지는 과정을 보여주는 후속편이 이미 준비돼있다고 했다. 이 PD는 이에 대해 “별이는 당연히 딩동댕 유치원에 다닌다. 보도자료에서 잘못 작성된 해당 부분을 걷어냈어야 했는데 내가 놓쳤다. 더 명확히 하기 위해 첫 편에도 ‘전학 온 아이구나’하는 대사를 다시 넣었다”고 말했다. 

18일 방송 마지막에 나온 ‘상자 쓴 아이’ 영상은 발달장애 예술가들이 그린 동화 <상자 쓴 아이>의 작가, 편집자와의 협업을 통해 만든 별이의 테마곡 영상이다. 글과 그림은 책에 있는 내용 그대로 실었고, 곡은 EBS측에서 작곡했다. 

▲ 지난 18일 방송된 EBS 딩동댕 유치원 '안녕, 별아?' 방송화면 중 '상자 속 아이' 영상 갈무리. 
▲ 지난 18일 방송된 EBS 딩동댕 유치원 '안녕, 별아?' 방송화면 중 '상자 속 아이' 영상 갈무리. 

 

특정 주인공도, 초능력 가진 영웅도 없다…‘모두가 주인공’인 딩동댕유치원의 도전

딩동댕 유치원에는 특정 주인공도 없고, 초능력을 가진 캐릭터도 없다. 이 PD는 지난해 봄 딩동댕 유치원을 개편하면서 모든 아동이 주인공이 될 수 있는 캐릭터 서사를 중심에 뒀다. 장애 아동은 ‘불쌍한’ 위로의 대상이 아니고, 다문화나 조손, 이혼 가정 아동은 ‘이상한’ 아이들이 아니고, 고정된 성 역할은 없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 현실적이고 다양한 캐릭터들을 주인공으로 등장시켰다.

“차별과 배제에서 비롯된 우리 사회의 편견을 깰 수 있는 캐릭터 중 가장 시급하게 대표성을 가져야하는 것을 생각했을 때, 나에겐 성평등, 장애, 다문화였다. 공영방송이다보니 늘 더욱 집중하고 있는 주제이지만, 의무적으로 만드는 게 아닌 어린이, 학부모들에게 모두 재밌는 프로그램을 만들어보고 싶었다.”

▲ 자폐를 가진 아동 '별이'. 사진=EBS 제공.
▲ 자폐를 가진 아동 '별이'. 사진=EBS 제공.

‘화려하고 독보적이지 않은’ 캐릭터를 등장시키는 건 어린이 프로그램 연출자에겐 도전이다. “방송사에는 수익 창출도 중요한 부분인데, 사실 펭수나 번개맨처럼 독보적인 캐릭터가 있어야 상품화가 되고 수익이 난다. 그런 부분에 있어서 내부적 지적이 없진 않았다. 하지만 시대적 흐름에 맞게끔 캐릭터를 만들고 에피소드를 전개해 교육적 의미를 찾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앞으로의 에피소드에서는 딩동댕 유치원 친구들과 함께 놀고 배우고 어울리는 별이의 모습을 보여줄 예정이다. “딩동댕 유치원의 다양한 코너에는 모든 캐릭터들이 함께 어울린다. 통합교육 안에서 만약 오늘은 버섯을 탐구하는 날이면, 버섯을 탐구하는 상황에 별이도 있는 거다. 장애, 비장애 아이들이 함께 어울릴 수 있는 상황 안에서 별이를 녹여 ‘특별한’ 아이가 아니라 평범한 아이들이라는 점을 보여줄 것이다.”

딩동댕 유치원 프로그램에는 매일 다른 코너들이 방송된다. 지난해에는 ‘사회적 감수성’ 코너를 만들어 총 26편을 방송했다. 양성평등, 디지털 성범죄, 유기견, 죽음, 환경 등 ‘아이들은 몰라도 돼’라고 여겨졌던 주제들을 아이들이 이해하기 쉽게 풀어 설명하는 코너다. 올해 대부분 코너에서는 손인형이 아닌 실제 아동들도 많이 등장한다. 다문화 아동, 휠체어를 탄 아동, 다운증후군 아동 등이 직접 나와서 함께 그림을 그리는 등 어우려져 활동한다.

동요 코너 안에는 수어로 동요를 부르는 ‘코너 속 코너’도 만들었다. 청각장애인 문화 예술 단체 ‘핸드스피크’와 협업했다. “우리나라에선 수어 방송이 항상 오른쪽 하단에 조그맣게 뜬다. 우리는 전면에 나와서 수어를 하고싶었다. 핸드스피크 계정에 들어가서 처음 봤을 때 충격적일만큼 너무 멋있었다. 수어를 율동처럼 하면 춤같다. 어린이들을 위한 동요를 수어로 율동처럼 해서 아이들이 쉽고 재밌게 받아들일 수 있게 하고 있다.”

“부모와 아이 함께 교육할 수 있는 딩동댕 유치원 되고싶어”

어린이들은 미디어에 나온 내용을 더욱 빠르게 습득한다는 측면에서, 어린이 프로그램의 역할은 중요하다. 사회적 차별, 선입견을 담은 대사나 장면 등이 어린이 프로그램에 나와 아동기에 차별 메시지가 담긴 콘텐츠에 노출될 경우 왜곡된 사회적 인식을 형성하기 쉽다. 딩동댕 유치원처럼 아이들이 차별과 편견에서 벗어날 수 있게 만드는 미디어의 역할이 중요한 이유다. 

하지만 어린이 프로그램은 고정관념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시대적 흐름이 잘 반영되지 않는 프로그램 중 하나이기도 하다. 어린이 콘텐츠는 상대적으로 사람들이 덜 시청하고, 어린이들은 비판적 의견을 표출할 발언권이 현저히 적기 때문이다. 이 PD는 큰 수익이 발생하기 어려운 어린이 프로그램의 구조에서, 더 화려하고 자극적인 요소가 있어야 캐릭터가 성공할 수 있어 교육적 의미에 대한 고민이 잘 이뤄지지 못하는 측면이 있다고도 설명했다. 

▲ 이지현 PD. 사진=이지현 PD 제공.
▲ 이지현 PD. 사진=이지현 PD 제공.

이 PD는 어린이 프로그램은 단순히 어린이만이 아닌 어른들을 위한 재교육 역할을 해야한다고 강조했다. 부모와 아이를 함께 교육할 수 있는 ‘딩동댕 유치원’이 되고싶다는 바람을 전하기도 했다. 

“아이가 커가면서 여러 질문을 던지는데, 내가 아직 답변할 준비가 안 된 것 같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어린이 프로그램은 아이들이 실제 궁금해하는 것들, 이해했으면 좋겠다고 생각되는 것들을 질문으로 던져야 한다. 또한, 질문에 대답하는 내용을 담아 학부모가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알려줄 수 있어야 한다. 

별이가 등장한 첫 방송이 나간 후, 시청자 게시판에 어떤 학부모가 ‘아이가 자폐 아동의 행동에 대해 묻는 질문에 어떻게 대답해야 할 지 마음 속 정답이 없었다. 그 부분에 대한 대답을 대신해주는 프로그램 같았다’라고 써주셨다. 나는 여기서 시작한 것 같다. 내 삶과 지금의 프로그램은 맞닿아 있다. 어린이에 대한 교육과 그걸 보는 부모에 대한 교육도 함께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면 좋겠다. 아울러 어떤 아이들도 소외되지 않고, 소외를 당했을 때 소외에 익숙해지지 않는 세상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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