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암동 MBC사옥.
▲상암동 MBC사옥.

“이명박 정부 때도 최시중 방통위원장 시절 MBC 민영화 이야기를 계속했다. 저 사람들은 여전히 그것(민영화)을 프로그램으로 갖고 있다. 그때 못했으니 이번에는 ‘죽어도 해야겠다’ 일 것….” (윤창현 전국언론노동조합 위원장, 8일 ‘김어준의 겸손은힘들다 뉴스공장’에서)

국가정보원을 수사하던 서울중앙지검이 2017년 11월5일 ‘MBC 방송장악 관련 청와대 홍보수석실 관련성 검토’라는 제목의 수사보고서에서 2010년 3월2일자 <MBC 정상화 전략 및 추진방안> 국정원 문건을 두고 “청와대 홍보수석실이 실질적인 문건 작성 지시자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당시 홍보수석이 이동관 방통위원장 후보자다. 이 문건에는 구체적인 ‘MBC 민영화’ 시나리오가 담겼다. 이 후보자가 위원장이 되면 이 시나리오가 다시 생명력을 얻을 수도 있다. 

국정원 문건에 등장하는 ‘MBC 정상화’ 당면과제는 “노영방송 척결”이다. 이를 위한 세부 추진방안은 △1단계 ‘간부진 인적 쇄신·편파 프로 퇴출로 개혁 기반 조성’ △2단계 ‘노조 무력화 및 조직개편으로 근본적 체질 변화 유도’ △3단계 ‘소유구조 개편논의로 언론 선진화에 동참’이었다. ‘정상화’의 최종 단계는 ‘민영화’였다. 

국정원은 “MBC 민영화에 대한 야권의 반발을 막기 위해 방통위의 민영미디어렙 허가 문제를 연계, MBC 스스로 소유구조를 개편하도록 유도”, “방통위 차원에서 공영방송 지정위탁 원칙을 고수, MBC에 대한 민영미디어렙 허가 거부로 민영화 논의 촉발” 등 민영화 세부 전략을 언급했는데, 이는 실제로 현실에서 벌어졌다. 

2011년 말 MBC는 ‘미디어렙’(방송광고판매대행) 구조 재편 당시 SBS가 자사 미디어렙을 갖게 되자 마찬가지로 자사 미디어렙을 주장했으나 결국 코바코가 MBC 광고 판매를 대행하는 ‘공영미디어렙’에 묶이며 노사 모두 강하게 반발했다. 당시 MBC 내에서는 ‘이럴 거면 민영화하자’는 사내 여론이 거셌다. 당시 장면은 MBC 민영화라는 ‘큰 그림’의 일부였을 수 있다.

▲2010년 국정원이 작성한 'MBC 정상화 전략 및 추진방안' 문건 가운데 MBC 민영화 방안을 언급한 대목.
▲2010년 국정원이 작성한 'MBC 정상화 전략 및 추진방안' 문건 가운데 MBC 민영화 방안을 언급한 대목.

문건에 등장하는 MBC 민영화 방안은 크게 3안이다. 1안은 ‘지방 MBC 광역화를 완료한 후 방문진이 지방 MBC 매각대금으로 정수장학회 지분 30%를 인수한 후 우리사주조합과 국민주 형태로 매각’이다. 사실 정수장학회는 MBC 민영화의 최대 걸림돌이다. 정수장학회 지분을 처리하지 않으면 정수장학회가 민영화 이후 MBC 대주주가 될 가능성이 높아서다. 

1안은 정수장학회가 MBC 대주주가 되는 일을 막는 방안으로, 실제 MB정부 때 추진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2010년 김재철 사장 취임 이후 지역MBC는 광역화라는 이름의 ‘통폐합’ 작업이 꾸준히 진행됐다. 한겨레 단독보도로 세상에 알려진 최필립 정수장학회 이사장과 이진숙 MBC 기획홍보본부장, 이상옥 MBC 전략기획부장의 2012년 10월8일 만남 목적은 정수장학회 지분 인수였다. 인수가격은 6000억 원 규모였다. 당시 최필립 이사장은 “전에 김우룡 (방문진) 이사장이 처음 임명됐을 때 제일 먼저 나에게 와서 이야기한 게 MBC 민영화였다”고 말했다.

1안은 유효할까. 정수장학회가 사실상 박근혜 전 대통령의 것으로 인식되는 현실에서 MBC 또는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는 정수장학회에 최소 6000억 원 이상을 줘야 한다. 2012년에는 유력 대선후보였던 정치인 박근혜에게 이익을 주며 민영화도 가능케 하는 선택이었다면, 지금은 현직 대통령의 검사 시절 수사 대상이었던, 탄핵 된 전직 대통령에게 이익을 주는 선택이어서 국민 정서나 정치적 후폭풍 등을 감당해야 한다. 이동관 후보자 등 현 정부 주요 라인들이 ‘MB계’라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이동관 방통위원장 후보자. ⓒ연합뉴스
▲이동관 방통위원장 후보자. ⓒ연합뉴스

2안은 ‘현재 자산규모에 맞춰 유상증자를 실시, 신주발행을 통해 인수자 공모’다. MBC 자산규모는 2조4634억원(2022년 기준)이다. 대주주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최소 30% 지분이 있어야 한다고 가정하면 7390억 원이 필요하다. 2안의 쟁점은 ‘과연 누가 MBC를 사려고 할까’다. 

국정원이 문건을 작성했던 2010년은 지상파 플랫폼 독과점 시대의 끝자락이었다. 그러나 2011년 12월 종편4사가 개국했고 2012년을 기점으로 CJENM 등 케이블채널이 급성장했다. 2012년 한국은 스마트폰 보급률 세계 1위가 되었고, 영상 플랫폼의 주도권은 유튜브와 OTT에게 넘어갔다. 2023년 현재 MBC가 갖는 시장가치는 2010년과 비교할 수 없다. 

그럼에도 인수자가 나타난다면 YTN처럼 한전이나 마사회 같은 공공기관이 연합해 주주로 참여하는 방안이 있을 수 있지만 정치적 부담을 각오해야 하고, ‘반쪽 민영화’에 그칠 수 있다. 또는 KT 같은 통신사나 카카오‧네이버 같은 플랫폼사업자가 인수전에 나설 가능성도 있지만 이를 위해선 대기업의 지상파방송 지분 소유 제한(10%)을 명시한 방송법을 바꿔야 한다. 

3안은 ‘방통심의위의 왜곡 보도 제재를 축적, 방송 재허가 거부로 폐업 후 자산매각 방식으로 신규 사업자 인수 추진’이다. 그러나 3안은 군부독재 시절에나 가능한 가장 비현실적 방안이며, 이후 이어질 행정소송에서 방통위가 패소할 가능성도 있다. 또 MBC가 폐업할 경우 MBC가 대주주인 16개 지역MBC 또한 존폐 위기에 놓이게 되고, 미디어렙에 묶여 MBC와 광고를 연계판매하고 있는 중소방송사들도 경영난에 처할 수 있다. 코바코 체제도 사실상 끝난다. 

13년 전 ‘MBC 정상화 문건’의 최종 목표는 “MBC 구성원 스스로 민영화를 선택하도록 함으로써 현재 다공영-1민영 체재를 1공영-다민영 체제로 전환, 시장원리 확립”이었다. 현 정부 여당 인사 역시 ‘1공영-다민영’ 체제를 주장하고 있는 만큼, 이동관 방통위원장 취임 이후 기존 시나리오를 변형하거나, 새로운 시나리오를 통해 MBC 민영화를 ‘재추진’할 가능성이 있다.

민영화를 위해선 방문진이 보유한 MBC 지분 70%를 어떻게든 해결해야 하고, 이를 위해선 기존 방문진법을 무력화하는 법안이 나올 수도 있다. 2010년 국정원 문건에는 ‘MBC 민영화를 위한 특별법’ 제정이 한 방안으로 나와 있다. 결국 ‘MBC 민영화’는 법을 바꿔야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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