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TV수신료 분리징수를 추진한 가운데 KBS 구성원들이 사장과 이사장 퇴진 등을 요구하며 집단으로 삭발식을 열었다. 삭발에 참여한 이들은 수신료 분리징수로 경영난이 예상되는 가운데 현 사태에 책임이 있는 경영진이 KBS 위기를 돌파할 능력과 의지가 없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았다. 일각에서 정치 투쟁으로 폄하하는 시선이 있지만, 이들은 언론 노동자로서 생존권 투쟁이라고 주장했다. 

KBS가 공정방송을 내걸고 파업 투쟁을 하던 2017년까지만 해도 ‘공영방송이 필요하다’는 사회적 합의가 있었지만 6년 새 이 합의가 깨졌다는 불안감이 KBS 직원 17명이 삭발에 동참한 배경이 된 것으로 보인다. 공개적으로 피력하진 못하지만 KBS 사내에도 ‘객관·공정성과 자정 능력을 잃은 공영방송이 필요한가’라는 질문에 자신있게 답하지 못하는 분위기가 있고, 인력 구조조정에 대한 구체적 규모가 소문으로 돌고 있었다. 

▲ 지난 26일 서울 여의도 KBS 본관 앞에서 삭발식을 마친 KBS 구성원들. 사진=새KBS공투위 제공
▲ 지난 26일 서울 여의도 KBS 본관 앞에서 삭발식을 마친 KBS 구성원들. 사진=새KBS공투위 제공

‘새로운 KBS를 위한 KBS직원과 현업방송인 공동투쟁위원회’(새KBS공투위)는 지난 26일 서울 여의도 KBS 본관 민주광장에서 김의철 사장과 남영진 이사장 퇴진을 요구하며 삭발식을 진행했다. 이날 삭발식에는 KBS 서울 본사 구성원뿐 아니라 KBS 지역총국, KBS 자회사 소속 구성원도 이름을 올렸다. 새KBS공투위는 KBS노동조합과 KBS공영노조, KBS방송인연합회가 모여 만들었다. 

27일 오전 미디어오늘은 삭발에 참여한 이들의 목소리를 들었다. 

장동원 KBS비즈니스 노조위원장은 이날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KBS비즈니스는 KBS본사에서 매년 수탁비를 받아 운영하는 자회사다. 수신료 분리징수로 경영에 타격을 입으면 우리는 존폐 위기라서 참여했다”며 “본사에서 경영이 어려워질 거란 소문이 들리면 우리도 당연히 영향을 받겠구나 싶다”고 말했다. 장 위원장은 “다른 계열사들은 그나마 우리보다 자생력이 있지만 KBS비즈니스는 수탁비 비중이 높다”고 했다. 

▲ 지난 26일 서울 여의도 KBS 본관 앞에서 삭발하고 있는 장동원 KBS비즈니스 노조위원장과 윤재구 KBS 촬영기자(서 있는 인물 중 오른쪽에서 세번째). 사진=새KBS공투위
▲ 지난 26일 서울 여의도 KBS 본관 앞에서 삭발하고 있는 장동원 KBS비즈니스 노조위원장과 윤재구 KBS 촬영기자(서 있는 인물 중 오른쪽에서 세번째). 사진=새KBS공투위

KBS비즈니스는 KBS 시설 관리, 환경 미화 업무를 담당하는 곳으로 매년 KBS에서 1년치 수탁비를 받아 운영하고 있다. 당장 올해 계약을 체결해 내년에 받을 수탁비부터 삭감될 거란 우려가 나온다. KBS비즈니스에는 3개의 노조가 있는데, 전국언론노조 KBS비즈니스지부(1노조), 민주노총 공공연대노조 KBS비즈니스지회(2노조), 장 위원장이 속한 KBS비즈니스 노조(기업단위 노조, 지난 5월22일 설립) 등이다. 

김의철 사장은 KBS 사장에 임명되기 전 KBS비즈니스 사장을 지냈다. 언론노조 소속 KBS비즈니스지부(1노조)는 원래 기업단위 노조(KBS비즈니스 노조)였다가 지난 2021년 언론노조에 가입했고 같은해 김 사장이 KBS 사장에 취임했다. 이후 1노조가 사측에 쓴소리를 하지 못하자 현재 KBS비즈니스 노조(기업단위 노조, 3노조)가 만들어졌다고 장 위원장은 전했다. 3노조는 김의철 KBS비즈니스 사장 당시 실적을 부풀린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장 위원장은 노조 출범 두 달이 지났지만 아직 가족에게 노조위원장을 맡았다는 말을 못하고 있다. 그는 “두 아이가 아직 어려 육아를 해야 하는데다가 (KBS 경영난으로) 실업자가 될 수도 있는데 차마 노조위원장까지 맡았다고 얘기를 못하겠더라”라고 말했다. 이어 “어제 삭발하고 집에 가니 아내가 ‘고생했다’고 했다”면서 눈물을 보였다. 

KBS비즈니스는 타임오프(노조 전임자가 노동 시간을 면제받는 제도)로 5000시간이 있고 1·2노조가 4000시간 가량 사용하기 때문에 3노조에 1000시간 가량을 배정할 수 있지만, 사측이 3노조를 배려하지 않는다고 장 위원장은 주장했다. 계열사로서 경영난이 예상되는데 사내에서 소수·신생 노조로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절박감에 이번 삭발식에 동참한 것이다. 

▲ 지난 26일 서울 여의도 KBS 본관 앞에서 삭발하고 있는 이해선 KBS 부산총국 PD. 사진=새KBS공투위
▲ 지난 26일 서울 여의도 KBS 본관 앞에서 삭발하고 있는 이해선 KBS 부산총국 PD. 사진=새KBS공투위

삭발하기 위해 부산에서 참석한 이도 있었다. 이해식 KBS 부산방송총국 PD는 이날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현 상황에서 수신료 분리징수를 넘어 폐지 주장까지 나온다”며 “KBS의 현 리더십은 해결할 능력도 없고 의사가 없기 때문에 물러나고, 직원 생계권을 보장하도록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PD는 “삭발은 하루아침에 하게 된 게 아니라 6~7년간 흐름 속에서 진행된 일”이라며 “(난) 소수파라서 여전히 부산에서 입이 있어도 말을 못하는 분위기”라고 했다. 현재 언론노조 KBS본부 조합원이 KBS노동조합 조합원 수의 두배 이상이다. 기자나 PD 직군으로 가면 언론노조 비율이 더 높아지고, 지역 총국에서도 언론노조 조합원 비율이 높다. 비(非) 언론노조 구성원들은 언론노조 KBS본부가 현 경영진을 제대로 견제하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 KBS 건물 내에 있는 피켓들. 사진=장슬기 기자
▲ KBS 건물 내에 있는 피켓들. 사진=장슬기 기자

윤재구 KBS 촬영기자는 미디어오늘에 “단순히 정권이 바뀌니까 사장, 이사장을 몰아내야 한다는 게 아니라 그들이 나가야 공영방송으로서 새로 시작할 수 있는 시발점을 세울 수 있다는 것”이라며 “이사장과 사장이 나간다고 분리징수가 통합징수가 된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바뀌는 건 없고 회사는 점점 어려워지고 있으니 보여줄 수 있는 진정성 있는 행동이 뭘까 고민했다”며 “방송 출연해야 하거나 취재원을 만나는 사람도 있으니 삭발이 쉽진 않았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다”고 말했다. 

윤 기자는 “MBC나 SBS는 흑자를 내는데 KBS는 적자를 냈다면 경영진이 책임을 져야 하지만 경영진은 CI 개선 작업 같은 걸 하고 있으니 답답하다”며 “재난주관방송사로서 역할 등 다양한 공정성을 강화하는 방안과 같이 KBS가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할 때”라고 말했다. 

최근 KBS 팀장급 이하 전 직원을 대상으로 김의철 사장 퇴진 찬반 투표에서 투표자 중 95%(재적 인원 4028명 가운데 1819명 투표 참여, 투표율  45.2%)가 퇴진에 찬성했다. 일선 현장에선 제작비 긴축 등 KBS 경영난을 체감하고 있는 것도 주요 배경이 됐다.

윤 기자가 취재 중인 스포츠 분야는 출장이 많다. 이번 호주·뉴질랜드 여자월드컵에 2명이 취재를 가려다 결국 취소됐다. 지상파 방송으로서 비인기종목 취재도 필요하지만 인력이 20% 정도 줄었다고 전했다. 스포츠 외 분야에서도 새로 준비 중이던 프로그램 제작이 잠정 중단됐다고 한다. 

최근 KBS에 대한 일부 매체의 비판 중 ‘무보직자들이 고액 연봉을 받는다’는 내용도 있다. KBS가 공영방송으로서 제 역할을 못했다는 비판과 별도로 이는 오해의 소지가 있다는 지적이다. 윤 기자는 “무보직은 팀장·부장 등을 맡지 않았을 뿐 오히려 고연차로서 전문성을 갖고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언론 노동자들”이라며 “무보직이 무노동으로 해석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 서울 여의도 KBS 건물 밖에 늘어선 근조화환들. 사진=장슬기 기자
▲ 서울 여의도 KBS 건물 밖에 늘어선 근조화환들. 사진=장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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