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년(2024년) 적용될 최저임금 논의가 계속되는 가운데 7월12일 서울 마포구 서부고용복지플러스센터에 올해 최저임금이 안내돼 있다. ⓒ 연합뉴스
▲ 내년(2024년) 적용될 최저임금 논의가 계속되는 가운데 7월12일 서울 마포구 서부고용복지플러스센터에 올해 최저임금이 안내돼 있다. ⓒ 연합뉴스

최저임금 의결 시한이 다가올 때마다 국내 최저임금이 OECD 상위권이라거나 최저임금 인상으로 일자리가 수만 개 없어진다는 보고서가 나온다. 해당 보고서가 부실하다는 팩트체크가 이어지지만 경영계는 매년 비슷한 내용의 보고서를 반복하고 언론은 다시 이를 인용한다. 최저임금위원회의 사용자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는 한국경영총협회(경총) 등 단체의 의도를 감안해 언론이 종합적으로 분석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 지난 4월 경총은 보고서를 내고 한국 최저임금 수준이 ‘OECD 8위’라고 주장했다. 자료=‘2022년 최저임금 미만율 분석 및 최저임금 수준 국제비교’ 갈무리.
▲ 지난 4월 경총은 보고서를 내고 한국 최저임금 수준이 ‘OECD 8위’라고 주장했다. 자료=‘2022년 최저임금 미만율 분석 및 최저임금 수준 국제비교’ 갈무리.

지난 4월2일 경총은 ‘2022년 최저임금 미만율 분석 및 최저임금 수준 국제비교’ 보고서를 내고 한국 최저임금 수준이 ‘OECD 8위’라고 주장했다. 경총은 “OECD 국제비교 방식을 활용하여 최저임금 수준을 추정한 결과, 우리나라의 2022년 최저임금은 중위임금 대비 62.2% 수준”이라며 “우리나라의 최저임금 수준은 세계시장에서 우리와 경쟁하는 미국(28.0%), 일본(46.2%), 독일(54.2%)과 최소 8.0%p에서 최대 34.2%p에 이르는 상대적 수준 격차를 보인다”고 했다.

▲ 경총 보고서를 그대로 인용한 보도들. 네이버 갈무리.
▲ 경총 보고서를 그대로 인용한 보도들. 네이버 갈무리.

언론은 한국의 최저임금이 지나치게 높다는 주장을 담은 해당 보고서를 적극 인용했다. 네이버 기준 발표 당일 해당 보고서를 그대로 인용한 보도만 33건에 달한다. ‘최저임금도 못받은 근로자 275만명… OECD 30개국 중 8번째로 높아’, ‘G7중 가장 높아… 노동시장 감당 못해’ 등의 제목이 쏟아졌다. 경총이 보도자료에 쓴 문장이 거의 그대로 기사에 담겼다.

이후 최저임금이 다뤄질 때마다 해당 수치가 높은 확률로 인용됐다. 중앙일보는 지난달 20일 <최저임금 결정, 저임 근로자와 소상공인 우선 배려해야> 칼럼에서 “2022년 기준으로 우리나라 최저임금은 중위임금 대비 62.2%로 최저임금제도가 있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0개국 중 8번째로 높다”고 했다. 통계 출처는 밝히지 않았다.

▲ 지난 4월6일자 한국경제 사설.
▲ 지난 4월6일자 한국경제 사설.

한국경제도 지난 4월6일 <불황에 생존 위협받는 중기·자영업…최저임금 올릴 때 아니다> 칼럼에서 “우리 최저임금이 중위임금 대비 62.2%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저임금제도가 있는 30개국 가운데 8번째로 높아진 것은 그 결과다. 국내 노동생산성이 낮은 수준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초과속이라고 할 만하다”며 “이런 과속 인상은 자영업자 몰락과 고용 참사 등 갖가지 부작용을 불렀다”고 했다.

“나라마다 최저임금 산출 방식 달라… 순위 비교 큰 의미 없다”

다른 단체 보고서에선 OECD 관련 다른 순위가 나온다. ‘OECD 8위’가 절대적인 숫자가 아니라는 뜻이다. 한겨레가 보도한 한국노동연구원의 ‘OECD 주요 국가의 최저임금 수준 통계자료 비교’에 따르면, 한국의 중위임금 대비 최저임금 수준은 2021년 기준 30개국 중 12번째였다. 경총은 지난달 25일 2021년 기준 한국 최저임금 순위가 OECD 회원국 중 7위라는 보도자료도 냈는데, 이와 5계단 차이 나는 결과가 나온 것이다.

▲ 지난달 29일자 한겨레 기사.
▲ 지난달 29일자 한겨레 기사.

이러한 차이는 나라마다 최저임금 산출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발생한다. 연구 주체에 따라 ‘의도’가 들어갈 여지가 있다는 의미다. OECD는 최저임금을 중위·평균 임금에 따라 순위를 매기는데, 이 중위·평균 임금 계산 방식이 유럽연합 회원국 상당수는 10인 이상 사업체 노동자, 한국은 전체 사업체 노동자를 기준으로 한다. 1인 사업체까지 모두 포함하는 한국은 유럽보다 중위임금이 낮아질 수밖에 없어 중위임금 대비 최저임금 비율이 높아지게 된다. 한국노동연구원 보고서는 이러한 상대적 차이를 조정해 순위를 매겼다고 밝혔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국제 순위를 단순 비교를 하는 것에 큰 의미를 두기는 어렵다. 범위도 다르고 계산법도 다르기 때문”이라며 “추세 정도는 참고할 수 있겠지만 나라마다 시스템이 다르다. 예를 들어 복지나 실업 급여가 잘 돼 있는 나라가 있고, 그런 것이 좀 부족한 나라가 있다. 또 각 나라에서 최저임금이 갖는 사회적 의미가 조금씩 다를 수도 있다. 그런 걸 좀 감안해야 한다”고 말했다.

매년 반복되는 경총·전경련 보고서… “의도 파악하고 해석하는 건 언론 몫”

최저임금 결정 시한만 다가오면 경영계가 보고서를 내고 언론이 이를 인용하는 현상이 반복된다. OECD 순위 보고서를 냈던 경총은 최저임금위원회 사용자단체에 속해 있다. 지난해 7월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최저임금 인상이 결정되자 입장문을 내고 “우리나라의 최저임금 수준은 OECD 30개국 중 3위(근로자 평균임금 대비 최저임금 비율)에 달할 정도로 매우 높은 수준”이라며 유감을 표했다. 역시 다수 언론이 전경련의 통계를 그대로 인용했다.

▲ 전경련 주장에 대한 SBS 팩트체크팀의 판정 결과. ‘판단유보’ 판정이 나왔다. SBS보도 갈무리.
▲ 전경련 주장에 대한 SBS 팩트체크팀의 판정 결과. ‘판단유보’ 판정이 나왔다. SBS보도 갈무리.

일부 언론은 보고서를 단순 인용하지 않고 팩트체크를 따로 했다. 전경련 통계에 대해 지난해 7월 SBS 팩트체크팀은 “국가 별로 수집 기준이 달랐다”며 “이를 보정하면 한국의 최저임금이 중간 수준이라는 연구 결과도 있었다”고 했다. 전경련의 주장에 대한 ‘판단 유보’라고 밝힌 것이다. 오마이뉴스도 지난 2021년 ‘한국 최저임금이 아시아 1등’이라는 경영계 주장에 대해서 “기준을 무엇으로 잡느냐 차이”라며 ‘대체로 거짓’ 판정을 내렸다.

하지만 통계 및 보고서를 단순 인용하는 기사에 비하면 팩트체크 기사는 극소수다. 특정 단체가 최저임금에 대한 부정적 여론을 환기하고 싶은 의도가 있다면 부실함을 지적받더라도 매년 보고서를 내는 게 이득인 셈이다.

▲ 전경련 의뢰로 진행된 연구에 따르면 최저임금 1만 원 인상 시 일자리가 6만 9천개 사라진다. ‘최저임금 상승이 일자리에 미치는 영향’ 갈무리.
▲ 전경련 의뢰로 진행된 연구에 따르면 최저임금 1만 원 인상 시 일자리가 6만 9천개 사라진다. ‘최저임금 상승이 일자리에 미치는 영향’ 갈무리.
▲ 전경련 의뢰로 진행된 연구보고서를 인용한 보도들. 네이버 갈무리.
▲ 전경련 의뢰로 진행된 연구보고서를 인용한 보도들. 네이버 갈무리.

최저임금이 1만 원이 되면 일자리가 수만~수십만 개가 없어진다는 보고서 역시 마찬가지다. 전경련이 지난달 26일 최남석 전북대학교 무역학과 교수에 의뢰해 작성된 ‘최저임금 상승이 일자리에 미치는 영향’에 따르면, 최저임금이 현 9620원에서 3.95% 올라 1만 원이 되면 일자리가 0.8~2.0% 감소할 것으로 예측됐다. 숫자로는 일자리 최소 2만 8000개에서 최대 6만 9000개에 해당한다. 최남선 교수는 2022년엔 최저임금 1만 원 기준 일자리 16만 5000개, 2021년엔 일자리 30만 개 감소를 예측했다. 모두 전경련 의뢰로 실행된 연구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지난달 26일 MBC라디오(신장식의 뉴스하이킥)에서 해당 보고서를 놓고 “미국은 주마다 최저임금 인상 폭이 다르게 결정돼 자연적인 ‘실험집단’이 생긴다. 최저임금 올린 실험집단과 최저임금을 올리지 않은 통제집단이 있는 것”이라며 “이 보고서엔 아예 그런 비교집단 통제집단 이야기가 없다. 어떻게 이런 숫자가 나왔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전경련이 이렇게 학술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선동적인 보고서를 내는게 본인들에게 별로 좋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라고 했다.

하준경 한양대 교수는 “최저임금 관련 연구는 답이 일률적이지 않다. 학계에서도 상당히 다양한 결과들이 있다. 나라 또는 기관에 따라 효과도 상당히 다르다”며 “해당 연구에서 수만 개가 감소한다 이렇게 나온 건 그 연구가 가정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렇다는 거지, 현실이 꼭 그렇다는 건 아니다. 과거 조건이 미래에 똑같지 않고 연구자에 따라 다양한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걸 염두에 둬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해 관계자가 자신한테 유리한 정보를 제공하려는 건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것”이라며 “이것을 잘 해석하고 국민에 종합적으로 전달하는 건 언론의 몫”이라고 말했다.

SBS 팩트체크팀은 지난해 전경련 통계를 팩트체크하며 “일부 언론과 영향력 있는 인사들이 이 통계를 인용하기 위해서는, OECD 국가들 간의 수집 방식의 차이를 명확히 설명할 필요가 있다”며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여러 통계들도 다양한 층위와 맥락이 있다는 점이다. 달리 말하면, 통계는 늘 정확하고 딱 떨어져 보이지만, 인용하는 사람의 의도에 따라 얼마든지 달리 활용될 수도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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