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연제 기자와 일면식은 없다. 같은 연차의 기자들이 서로 취재에 도움을 주는 언론사 입사자 ‘단톡’에서 이름만 봤을 뿐이다. 서로 도움을 주고받은 적도 없다. 그는 톡방에서 자주 이렇게 말했다. “추운데 다들 칼퇴하세요.”, “맛점하시고 미리 감사드립니다.” 서로 도움을 요청하는 동기 단톡방에서 이름이 많이 보였다는 건 많이 돕고 열심히 취재했다는 뜻이다. 그는 누구보다 이름이 자주 보인 사람 중 한명이었다. 동갑이라는 걸 알고 난 뒤에는 기자에 적응하기 위한 고군분투가 나랑 비슷했을 것 같다는 착각 아닌 착각도 했다.

갑작스런 부고 이후 쏟아지는 언론보도에 눈을 찌푸렸다. 그의 짧은 기자생활은 ‘미스코리아’, ‘고대 출신’으로 정리되고 있었다. MBN 노조에 따르면, 이 기자는 해당 경력을 동료들에 거의 언급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어떻게 알아냈는지 ‘아름다운 외모’를 운운하며 인스타그램 게시물을 기사에 첨부한다. 그가 어떤 기사를 써왔고, 무슨 마음으로 살아왔는지 궁금했지만 알 수 없었다. 단톡에서 봤던 그의 고군분투를 기억할 수 있는 방법은 사라졌다. 그의 부고 기사는 지금도 ‘미코 출신 기자 사망, 마지막 SNS 게시물 먹먹’과 같은 제목으로 올라오고 있다.

▲ 사진=Gettyimagesbank
▲ 사진=Gettyimagesbank

[관련 기사 : MBN 보도국 기자 사망에 언론 어뷰징 기사 쏟아내]

해당 기사를 쓴 사람들과, 데스킹을 본 사람들의 표정이 궁금해졌다. 조회수가 폭발할 것 같은 아이템이 생겨 그들은 ‘기뻐’했을까, 아니면 기사에 적은 문구처럼 ‘먹먹’했을까? 매일 사람은 죽고 세상은 무심히 흘러간다. 무심함을 비난하려는 건 아니고, 그저 어떤 표정이었는지 궁금할 뿐이다. 그들은 어떤 표정으로 ‘애도’, ‘뭉클’을 쓰고, 동시에 ‘미코 출신’을 앞에 편집했을까. 그들 중에선 이연제 기자와 실제 만났던 사람도 있지 않을까.

온라인대응팀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알고 있다. 일정한 수익을 위해 매일 할당량을 채워야 하는 기자들과 데스크는 별다른 고민을 하기 어렵다. 가치 판단을 할 시간도 없을 것이다. 젊은 여성이 기사의 대상이 되면 당연히 외모 평가를 하는 식이다. 그게 사람들의 관심사이기 때문이다. 이연제 기자뿐 아니라 또래 여성을 살해한 혐의로 구속된 정유정씨에 대해서도 ‘안경 벗고 화장한 모습’이 각종 포털 톱에 배치됐다. 자극성에 점철돼 잘못된 사회인식을 반복, 양산하는 사례는 너무도 많아 나열하기 지겹다.

그들은 언론을 조회수 경쟁에 내몬 포털 종속 구조에 책임을 돌린다. 혹은 선정적 기사만 탐닉하는 대중 인식을 얘기한다. 주변 환경이 이렇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옛날 교과서에서 배웠던 아이히만을 떠올리면 과장일까. 홀로코스트 실무를 맡았던 아이히만은 상부 명령, 주변 환경을 그대로 따랐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학살이 일상화된 구조 탓에 개개인의 고통은 깊게 생각하지 못했다고 했다. 인간의 죽음은 그에게 성실한 공무원의 삶을 영위하기 위한 수단이 됐고, 한나 아렌트는 아이히만이 지독히도 평범해 보였다고 했다.

지금 온라인대응팀의 기사도 비슷하다. 동료 기자의 죽음마저 수단이 된다. 같은 업계 종사자한테도 이런데, 다른 개인한테는 얼마나 무자비할까. MBN 노조와 기자협회는 언론사들의 기사에 “어뷰징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미스코리아’ 등의 부분을 삭제해 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다수 기사가 아직 그대로 남아 있다. 아마 영영 삭제가 안 될지도 모른다.

[관련 기사 : MBN 노조·기자협회, 보도국 기자 사망 어뷰징 기사 수정 요청]

기계적으로 돌아가는 온라인대응 기사의 메커니즘 사이에도 인간이 있다. 한 인간이 단어를 고르고, 기사를 등록하고, 승인을 누른다. 그 순간의 선택과 판단, 그리고 표정을 생각해봤다. 모니터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기사와 함께 올라오면 어떨까. 그때도 환경, 구조 탓을 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한나 아렌트는 일상성에 묻혀 스스로 생각하기를 멈춘다면 누구나 악을 저지를 수 있다고 했다. 사람이 수단화되는 지금의 온라인 기사 유통 구조가 이미 사람들의 일상이 된 건 아닐까. 지금이라도 조회수가 아닌, 이연제 기자의 추모를 목적으로 하는 기사가 나왔으면 하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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