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래 여성을 살해한 혐의로 구속된 정유정씨의 범죄 행태를 분석하며 자폐 성향이 있다는 전문가 발언을 방송한 SBS <그것이 알고싶다>에 대해 정신장애에 대한 편견을 조장한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비판에 대해 제작진은 자폐를 범죄와 연결하려는 의도가 아니었다며 당사자들을 만나 소명하겠다고 밝혔다. 

SBS <그것이 알고싶다>는 지난 17일 ‘밀실 안의 살인자, 정유정은 누구인가’라는 제목으로 정유정씨의 범행을 다뤘다. 방송은 정씨의 고등학교 친구들이 정유정에 대해 묘사하는 인터뷰를 담았고, 이후 이에 대한 전문가 인터뷰가 이어졌다. 

이광민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고등학교 친구들의 증언을 보면 정유정이 가지고 있는 성격의 맨 바탕에는 자폐적인 성향이 엿보인다”며 슬리퍼를 신고 있었던 정유정의 차림새와 걸음걸이를 두고도 “자폐적 특성을 고려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도 “자폐 성향이 조금 적은 특성을 ‘아스퍼거’라고 한다. ‘고기능성 자폐’라고도 이야기한다”며 ‘고기능성 자폐’의 특성에 대해 말했는데, 방송은 고기능성 자폐를 자막과 내레이션으로 자세히 설명했다. 

이 전문의는 “자폐적인 성향이라는 게 누군가를 해할 수 있다거나 악의적이라거나 범죄화될 수 있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그냥 하나의 특성”이라고 덧붙였다. 임 교수의 “(정유정의 자폐 성향과 반사회적 범죄는) 다르다. 그래서 의아하다. 아무리 심각한 정신질환이나 사이코패스도 선천적인 것만으로 사고를 치지 않는다”는 발언 이후 내레이션은 “자폐는 정유정을 이해하는 하나의 특성일 뿐 그 자체가 범행의 동기를 설명할 수는 없다고 한다”고 했다.

방송에서 전문가들은 정씨의 자폐 성향에 대해 묘사했다. 자폐 성향이 범죄와 직접적 관련이 없다는 설명도 있었지만, 방송은 반복적으로 자폐 성향에 대한 인터뷰를 내보내고 자폐에 대해 설명하며 ‘정유정’과 ‘자폐’라는 키워드를 연결시켰다. 전문가 발언 중 자폐가 범죄의 원인이 아니라는 내용이 있지만 자폐에 대해 상당한 분량을 할애했기 때문에 방송을 본 시청자들은 자폐가 정유정의 범행의 직접적 원인은 아니더라도 연관이 있는 것처럼 오인할 수 있다.

이는 실제 <그것이 알고싶다>를 인용한 언론보도를 봐도 확인할 수 있다. 방송 직후 타 언론에서 자폐와 정유정의 범행을 연결짓는 보도가 쏟아졌다.

서울경제 <“정유정 자폐 성향 보인다”는 전문가들…그 몇 가지 이유>, 파이낸셜뉴스 <‘그알’ 단독 확보 영상서…정유정 ‘사패’ 아닌 ‘자폐 성향’ 드러났다>, 뉴스1 <정유정, 아스퍼거 증후군?…“머리 자르고 슬리퍼, 범행때 행적 특이”>, MBN <“정유정에게서 자폐 성향 보인다?”…전문가들 진단 이유는?> 등 언론은 <그것이 알고싶다> 방송 내용을 인용하며 이 전문의와 임 교수의 발언을 받아썼다.

자폐를 범죄의 원인인 것처럼 연결짓는 언론보도에 전국장애인부모연대는 지난 20일 성명을 내고 “장애는 개인의 반사회적 범죄를 규명하는 도구가 아니다. 단편적으로 언급되는 모습들에 대한 묘사만으로 평생에 걸쳐 나타나는 장애를 진단할 수도 없다”며 “범죄자의 동기를 자폐와 연관 짓는 언론 보도의 양태는 장애를 낙인화하는 전형적인 구태”라고 비판했다. 

전국장애인부모연대는 언론보도에 대해 김승섭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의 자문을 받았다. 김 교수는 “범죄자와 직접 만나 진단하는 과정을 거치치 않은 상태로 몇몇 주변 사람들의 증언으로 미루어 짐작하는 진단명을 언론을 통해 공개적으로 논하는 일은 부정확하고 경솔할 수 있다”며 “한 인간이 어떤 정신적 상태를 가지고 있는지를 판단하고 그것을 공개적으로 언론을 통해 말하는 과정은 충분한 검토를 거치고 신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잔혹한 범죄를 저지른 이와 자폐 증상을 연결지어 자폐에 대한 비과학적이고 잘못된 낙인을 강화시킬 위험이 있다”며 “아스퍼거 증후군이나 자폐증을 가진 이들은 범죄의 가해자이기보다는 피해자인 경우가 많다고 알려져 있으며, 자폐 성향을 가진 이들이 다른 이들보다 평균적으로 더 폭력적이라는 근거는 없다. 해당 기사들은 잘못된 인식을 재생산하며 차별을 강화할 우려가 있다”고 했다. 

전국장애인부모연대는 “<그것이 알고싶다>의 차별적이고 무성의한 보도 이후 너도 나도 앞다투어 검증되지 않은 정유정의 자폐 성향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장애에 대한 감수성은 전혀 없고 언론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고려는 전혀 하지 않은 베껴쓰기 언론의 전형적인 모습”이라며 “방송의 목적이 ‘범죄자가 되기 쉬운 자폐장애인’이라는 프레임을 강화하려는 것이 아니라면 무차별적으로 유포시킨 장애 낙인에 대해 반드시 사과해야 한다”고 했다. 

대한소아청소년정신의학회도 21일 성명을 내고 “당사자와 가족을 직접 대면해 심층적으로 면담하고 평가하지 않은 상태에서, 자폐 성향 가능성을 언급하는 것은 장애 당사자와 가족들에게 고통을 주고 사회적 편견을 조장할 수 있다”며 “정신장애인들이 불필요하게 잘못된 편견과 낙인에 노출되지 않도록 좀 더 신중하고 사실관계에 입각한 보도를 당부한다”고 했다. 학회는 정신장애와 관련한 언론보도 가이드라인을 마련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국자폐인사랑협회는 <그것이 알고싶다>측에 방송 정정 및 사과를 요구하는 공문을 보냈다. 

자폐에 대한 편견을 강화했다는 비판에 대해 <그것이알고싶다> 제작진은 자폐를 범죄와 연결하려는 의도는 아니었고 정씨에 대한 정보를 밝히는 과정을 보여주고 싶었다면서 당사자들을 만나 소명하겠다고 밝혔다. 

한재신 SBS <그것이알고싶다> 담당 CP는 21일 미디어오늘에 “방송을 통해 하고 싶었던 말은 단정해선 안된다는 취지였다. (자폐) 성향이 있을 가능성이 있지만 그게 문제가 아니고 정유정이 (범죄를) 실행했을 수밖에 없던 이유를 밝히지 못했으니 연구를 해서 밝혀내자는 것이었다”며 “절대 (자폐 당사자가) 잠재적 범죄자라고 말한 것이 아니고, 정유정에 대한 정보가 너무 없는 상태에서 ‘이런 증상을 보였는데 어떻게 해석해야할까. 연구할 때 고려해봐야하지 않을까’라고 한 단계 나아간 걸 시청자들에게 공유하고 싶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한 CP는 “범죄자의 서사를 다루는 일은 제작진에게 항상 조심스럽고 부담스러운 일이다. 그럼에도 범죄자를 들여다보는 것은 앞으로 또 다른 무고한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우리 사회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모색하는데 지혜를 보태기 위함”이라며 “그런 취지로 정유정을 분석했던 것인데, 이 과정에서 방송을 보시고 불편하셨다면 당사자 분들의 심정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 앞으로 더 조심해서 방송을 만들겠다. 그알 제작진은 당사자 분들을 직접 만나 뵙고 설명드릴 예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