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민의힘 유튜브 채널 '오른소리' 갈무리
▲ 국민의힘 유튜브 채널 '오른소리' 갈무리

정부가 TV수신료 분리징수 ‘속도전’에 나섰다. KBS와 방송통신위원회 야당 추천 위원, 언론계와 시민사회의 반발에도 ‘일방통행’을 강행해 논란이다. 정부의 행보를 보며 윤석열 대통령이 후보 시절 공영방송 공약을 기억하는지 의문이 들었다. 당시 TV수신료 분리징수 공약이 없었다는 점을 지적하려는 게 아니다. 당시 공약은 분리징수와 대척점에 서 있었다. 

지난해 1월 윤석열 후보는 유튜브 쇼츠를 통해 첫 언론공약을 선보였다. 

영상은 이준석 대표의 “KBS 요즘 이상하지 않아요?” 질문으로 시작한다. 이어 원희룡 선대본부 정책본부장이 “공영방송이 PPL 못한다고 5년 동안 사극 한번 안 찍는 게 말이 돼?”라고 반문한다. 이어 그는 “공영방송이면 시청률 신경 쓰지 말고 국제뉴스도 해야지”라고 발언한다. 둘은 “수신료의 가치 국민에게 콜?” “‘태종이방원’처럼 사극 의무적으로 만들게 하고” “국제뉴스 메인뉴스에 30%이상 편성하고”라고 말한다. 이어 윤석열 후보가 등장해 “후보님! 추진할까요?”라는 질문에 “좋아 빠르게 가!”라고 화답한다. 

▲  윤석열 대통령 후보의 쇼츠 공약 영상 갈무리
▲  윤석열 대통령 후보의 쇼츠 공약 영상 갈무리

당시 이 공약은 논란이 됐다. 공영방송의 제작과 편성의 독립을 침해하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당시 윤석열 후보가 이렇다 할 언론 공약을 발표하지 않은 상황에서 핵심 사안을 외면하면서 내놓은 공약이라는 점에서 지적을 받기도 했다. 논란에도 이 공약은 정식 공약집에 포함됐다. 

지금 시점에서 짚어보면 이 공약의 최대 문제점은 ‘진정성’이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출연해 강조한 공약이지만 어떻게 이를 실현할지 방법을 제시하지 않았고, 당선 이후에도 이행할 의지를 보이지 않았다.

KBS가 제작비 탓에 정통사극 편성을 줄인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불멸의 이순신’ ‘대조영’과 같은 장편 정통사극은 300억 원이 넘는 제작비가 들었다. 주로 KBS1 채널에서 편성돼 PPL이나 협찬은 물론 광고 자체를 편성할 수 없는 경우가 많았다. 2014년 방영된 ‘정도전’은 편수를 줄여 제작비를 크게 줄였음에도 100억 원의 제작비가 들었다. ‘국내용’이기에 글로벌 OTT의 투자를 받아내기도 어렵다. KBS 입장에선 사극 제작 자체가 ‘예정된 대형 적자’인 셈이라 기피할 수밖에 없다. 

KBS가 사극 편성을 늘리려는 시도를 전혀 하지 않은 건 아니다. 지난해 KBS가 국회에 제출한 수신료 인상안에는 대하사극 투자 계획이 담겨 있다. 2022년부터 2026년까지 정통 대하 역사 드라마에 2300억 원을 투입하겠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정부여당은 인상안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KBS사극 의무편성’을 언론 1호공약으로 내놓은 윤석열 후보가 대통령 당선 후 최우선적으로 선보인 언론 정책은 ‘TV수신료 분리징수’였다. 대통령이 스스로 공약을 무너뜨리는 행보를 보인 것이다.

TV수신료를 분리징수하면 수신료 수입이 3분의 1이상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KBS는 분리징수에 따른 대대적인 비용절감에 나설 수밖에 없다. 지금보다 재정 상황이 좋을 때도 사극 제작이 어려웠는데, 분리징수로 인해 대하사극 의무화는커녕 몇 년에 한번씩 제작되는 사극마저 자취를 감출 가능성이 높아졌다. KBS가 국제뉴스를 강화하려면 더 많은 특파원을 해외로 보내야 하는데, 이 역시 어려워졌다.

‘분리징수’를 무조건 반대하려는 게 아니다. 정부는 ‘분리징수’가 왜 필요한지 제대로 설명하지 않은 채 충분한 의견수렴을 거치지 않은 채 강행하고 있다. ‘분리징수’로 인해 후보가 직접 나서서 내세운 공약이 무산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후보도 알기 힘든 수 많은 공약 중 하나가 아니라 후보가 직접 출연하고 캠프 측이 영상까지 제작해 올린 주요 공약이었다. 분리징수 이후 공약은 어떻게 할 것인지, 왜 공약을 역행하게 됐는지 설명이 필요하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