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간 지역의 한 사건을 파헤쳐 2000건이 넘는 기사를 쓴 지역언론 기자의 취재물이 한 편의 연구보고서로 나왔다. 삼성중공업 태안바다 기름 유출 사고로 파생된 지역사회 붕괴 취재물을 바탕으로 한국환경연구원의 연구보고서 공동저자로 참여한 김동이 태안신문 취재부국장은 “지역신문 기자의 꾸준한 취재물을 인정해준 것”이라고 자평했다. 지역언론의 끈질긴 취재가 지역의 역사적 기록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은 김 부국장이 취재로 얻은 또 하나의 결과다.

한국환경연구원이 지난 4월 공개한 ‘환경오염 피해 공동체의 복원력 강화’ 연구보고서는 환경오염으로 인해 발생한 공동체의 분열과 피해 복구 과정에서의 갈등 양상을 분석했다. 삼성중공업 태안바다 기름유출 사고, 익산 장점마을 비료공장 환경오염 사고, 청주 북이면 소각산업시설 환경오염 사고 등 세 가지 사례에서의 사회적 갈등 양상을 분석하고 공동체 복원방안을 제시했다. 

▲ 김동이 태안신문 취재부국장. 사진=김동이 취재부국장 제공.
▲ 김동이 태안신문 취재부국장. 사진=김동이 취재부국장 제공.

태안바다 기름유출 사고를 지속적으로 연구해왔던 김도균 한국환경연구원 연구위원의 제안으로 공동저자에 참여하게 된 김동이 부국장은 2007년 충남 태안군 만리포 해상에서 발생한 삼성중공업 태안바다 기름유출 사고 이후 벌어진 지역사회의 분열과 그 중심에 있는 ‘허베이사회적협동조합’(허베이조합)의 문제점을 분석했다. 허베이조합은 기름 원유 유출의 원인을 제공한 가해기업 삼성중공업이 내놓은 기금 운용을 명목으로 2016년 설립됐는데, 피해민들이 아닌 조합원들만을 위해 기금을 사용한다는 점과 불투명한 운영 방식 등으로 설립 당시부터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김동이 부국장은 2016년 허베이조합 설립 당시부터 현재까지 약 7년 간 허베이조합의 문제점을 지적해왔다. 이사회 회의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전화를 피하는 등 허베이조합의 폐쇄성 때문에 취재가 어려웠지만, 김 부국장은 피해를 고스란히 감내해야할 유류피해민들을 생각하면 취재를 포기할 수 없었다고 했다. 허베이조합이 폐쇄적이어서 취재는 내부 제보와 정보공개청구 등을 이용했다.

▲ 김동이 태안신문 취재부국장 기사 갈무리.
▲ 김동이 태안신문 취재부국장 기사 갈무리.

연구보고서에는 김 부국장의 취재물이 필요했다. 보고서에는 김 부국장이 그동안 취재한 결과물들이 각각의 자료로 담겨 심층적인 현지조사를 토대로 한 분석과 현실적인 정책 제언이 있다. 보고서는 2008년 삼성중공업이 지역 발전 기금을 출연하겠다고 발표한 당시 협상 과정에서 발생한 갈등, 허베이조합 설립부터 설립 인가 취소 주장이 나오기까지 등의 과정을 거치며 태안 지역사회가 분열하는 과정을 상세히 설명했다. 허베이조합 대의원 숫자를 파악해 대의원 수 배정을 둘러싼 갈등을 파악하거나, 조합 설립을 둘러싼 군민과 조합의 이견을 대비했다.

김 부국장의 공동저자 참여는 지역언론 기자의 취재물들이 지역의 역사적 기록으로서 그 가치를 인정받은 사례다. 김 부국장은 지난 12일 미디어오늘에 “전문기관에서 공동저자 참여를 제안했을 때부터 기분이 좋았다. 그동안 내 기사를 봐오면서 이 연구보고서를 쓸 사람은 나밖에 없다고 인정해준 것이기 때문이다. ‘그동안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구나’라고 느꼈다. 사람들이 보고서를 읽고 현재 허베이조합이 어떤 상태고, 앞으로 어떤 형태로 가야하는지 알게됐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끈질긴 보도 끝에 열리는 ‘허베이조합’ 정상화 모색 토론회

‘지역사회 공동체의 갈등’은 김 부국장이 기자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 꾸준히 주목해 온 의제다. 김 부국장이 태안신문에 입사한 2009년은 공정하지 않은 잣대로 책정된 유류 피해 배보상으로 태안 지역의 공동체 붕괴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던 시기였다. 그리고 2016년 허베이조합 설립 후 갈등은 더 극대화됐다. “나는 100만원 주고, 옆집은 300만원 주는 것이다. 천차만별로 보상금을 주다보니 지역사회가 붕괴됐다. 이렇듯 주민들 사이, 공동체 내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중심으로 취재해왔다.”

김 부국장은 “허베이조합의 경우 첫 단추부터 잘못 꿰어서 지금까지 왔다. 전문적이지 못한 사람들이 조합을 맡아 운영하니 행정상의 착오도 많았고, 막무가내식 사업집행을 하다보니 조합본부와 지부와의 갈등이 불거졌다. 그 갈등이 지금까지도 지속돼 조합 운영의 파행이 이어지면서 모든 피해는 피해민에게 돌아갔다”고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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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동이 태안신문 취재부국장 기사 갈무리.

연구보고서는 관련 행위자와 제3의 중재자가 투입된 공정하고 투명한 ‘협력 거버넌스’와 피해민이 자신의 의사를 직접 표출하는 ‘피해의 공론장’의 필요성을 말한다. 그리고 허베이조합에 대한 7년 간의 보도 끝에 오는 6월14일 관련 당사자가 모두 참여하는 공론장이 열린다. 허베이조합의 유일한 관리·감독기관인 해양수산부와 삼성지역발전기금 집행기관인 사회복지공동모금회, 허베이조합과 산하 4개 지부, 유류피해민들 등 기금에 대한 이해관계 당사자들이 모두 모여 앞으로의 조합 방향성에 대해 결정 내리는 논의를 한다. 피해민 복리 증진과 지역공동체 복원사업 효율화 방안을 연구해 온 한국법제발전연구소도 참여한다. 

김 부국장은 “피해민들도 그동안 이 문제를 잘 몰라 큰 관심이 없었는데, 지속적으로 제기해 온 문제가 수면 위로 드러났다”며 “토론회의 결론은 피해민들을 고려해야 한다. 앞으로라도 기금이 피해민들에게 올바르게 쓰일 수 있는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지역 의제 하나 중점적으로 취재할 수 있는 자세 필요해”

연구보고서는 태안신문 기사를 전부 모아 재구성했다. 지난해 5월부터 집필을 시작해 12월까지 원고를 쓰며 시시각각 업데이트되는 내용을 추가 취재해 보고서가 발간되기 직전까지 가장 최신 내용으로 연구보고서를 작성했다. 추가로 취재한 부분은 그때그때 태안신문 기사로도 보도했다. 

김 부국장은 “폐쇄적인 조직을 취재하기가 너무 어려웠고, 취재하면서 중간에 그만둘까 생각한 적도 많았다. 근데 내가 놓으면 허베이조합에 대해 아무도 다루지 않을 것 같아 놓으면 안되겠다는 책임감이 생겼다”며 “관심을 끊고 싶어도 너무 오랫동안 취재해왔고, 조합에 대한 내부 사안을 잘 알기 때문에 손을 놓을 수가 없다. 14일 토론회에서 결론이 제대로 나면, 조합에 대한 취재를 멈출 수도 있을까”라며 웃었다. 

▲ 충남 태안신문사. 사진=윤유경 기자.
▲ 충남 태안신문사. 사진=윤유경 기자.

김 부국장은 “한 주제를 오랫동안 취재한다는 게 쉽지는 않지만, 지역신문 기자라면 지역 의제 하나를 중점적으로 취재할 수 있는 자세도 필요하다”며 “지역신문에서 오래 근무한다는 것 자체가 어렵고, 환경이 녹록치 않은 상황에서 사명감으로 취재해왔다. 지역언론 기자들이 지역의 여론 주도층이라고 생각하고 책임감을 갖고 취재해서 보도하고, 지역사회를 올바르게 바꿀 수 있는 사회의 공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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