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가 위원장 없는 대행 체제에서 이례적으로 5년 만에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통심의위) 검사에 나선다. 방통위는 보조금 집행 점검이라는 입장이지만 한상혁 위원장 면직 이후 정연주 위원장을 표적으로 한 대응 아니냐는 의문이 나온다.

방통위 “심의 내용 아닌 보조금 집행 점검”
위원장 없는 방통위의 이례적 검사 입길에

방통위는 최근 방통심의위에 대한 정기 검사·감독 절차를 시작했다. 방통위는 방통심의위에 회의 개최 내역 등 실적 보고서와 회계감사 보고서 등 검사 및 감독을 위한 자료 제출 요청서를 송부했다. 방통심의위는 방송과 인터넷 게시물을 심의하는 기구다. 형식상 민간 독립기구지만 대통령에게 인사권이 있다. 위원은 대통령과 정치권이 추천한다.

방통위가 검사에 나서면서 여당이 편파적이라고 주장하는 ‘심의 내용’까지 들여다본다는 보도가 나왔지만 방통위는 사실과 다르다는 입장이다. 방통위 관계자는 “심의한 내역을 들여다본다는 건 잘못된 내용”이라며 “보조금 집행과 관련된 점검으로 예산이 규정에 맞게 쓰였는지 살피는 것”이라고 했다. 방통심의위 관계자 역시 “기금 집행 내역에 관해 요청을 받았다”고 했다.

방통위의 방통심의위 검사 범위는 예산 활용에 국한돼 있다. 방통심의위는 방통위가 관리하는 방송통신발전기금을 예산으로 쓰고 있기에 방통위에 예산에 대한 관리 감독 권한이 있다. 5년 전엔 직원들 시간외수당 부정 지급 논란이 불거지자 방통위가 감독에 나섰다. 

▲ 정연주 방송통신심의위원장. 사진=방통심의위 제공
▲ 정연주 방송통신심의위원장. 사진=방통심의위 제공

그렇다고 이번 검사에 정치적 의도가 없다고 보기는 힘들다. 방통위는 2018년 이후 5년 만에 검사에 나섰다. 더구나 한상혁 방통위원장 면직 이후 위원장이 부재한 대행 체제에서 검사가 이뤄진다는 점은 이례적이다. 통상 방통위가 대행 체제로 운영될 때는 중요한 의사 결정을 하거나 검사를 하는 경우는 드문데 방통위는 위원장 면직 일주일 만에 방통심의위 검사에 나섰다. 

여권을 중심으로 문재인 정부 때 임명된 기관장 퇴진을 요구해온 상황에서 정연주 위원장 퇴진 요구도 잇따랐다. 정연주 위원장 임기는 2024년 7월까지로 다른 기관장보다 남은 기간이 길다. 한상혁 방통위원장이 면직됐고 전현희 국민권익위원장 임기가 이달 만료되기에 향후 정연주 위원장을 향한 공세는 강해질 전망이다. 

지난 8일 공정언론국민연대와 바른언론시민행동 등 보수성향 단체들은 방통심의위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정연주 위원장 사퇴를 촉구했다. 이들 단체는 “방통심의위가 독립성과 공정성을 완벽하게 상실했다”며 “정연주 체제의 전면 퇴진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지난 2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여당 간사인 박성중 의원은 “KBS, MBC, YTN 등 언론사들이 이념적으로 좌편향됐다. 이는 방통심의위가 제 역할을 하지 않고 수수방관한 탓”이라며 정연주 위원장 사퇴를 촉구했다.

방통심의위 구성에 따라 방송은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방통심의위 심의에 돌입하는 것만으로 방송에 위축 효과를 줄 수 있고 제재 반복 시 진행자 교체를 압박할 수도 있다. 과징금 부과, 사과 방송 등 중징계 권한이 있어 방송사에 직접적 타격을 줄 수도 있다. 심의를 통한 법정제재는 방송사 재허가 재승인 심사에서 감점 요소이기 때문에 방송사 재허가 재승인에도 일정 부분 영향을 줄 수 있다. 통신심의의 경우 인터넷상 사회 질서를 혼란하게 하는 허위 정보에 심의를 할 수 있어 정부가 추진하는 가짜뉴스 대응에 일정 부분 집행력을 갖출 수도 있다. 

근태·업추비 논란 예상, 감사원 감사 가능성도
직무유기 고발된 정연주 위원장도 면직 수순?

향후 방통심의위 검사 과정에서 위원과 고위직 인사들이 사용한 예산을 중점적으로 들여다 볼 가능성이 높다. 정연주 위원장을 비롯한 상임위원, 사무총장 등의 업무추진비, 근태 문제 등을 들여다보고 관련 문제가 정치적 논란 거리로 이어질 수 있다. 

급작스러운 검사에 방통심의위는 뒤숭숭한 분위기다. 방통심의위의 다른 관계자는 “이번엔 우리 차례가 온 것 같다”며 “심의 내용을 직접 다루긴 어려울 것으로 본다. 근태나 업무추진비를 문제 삼을 수 있다”고 했다.

감사원이 직접 감사에 돌입할 가능성도 있다. 공언련은 방통심의위의 봐주기 심의 논란을 비롯해 업무추진비 부당 집행 및 허위 처리, 주요 직위자 근태 문제, 모니터 요원 선발 등에 문제를 제기하며 공익 감사를 청구했다. 

▲ 방송통신심의위원회 관제실 모습. 방통심의위는 방송과 인터넷 게시물을 심의하는 기구다. 사진=방송통신심의위원회 제공
▲ 방송통신심의위원회 관제실 모습. 방통심의위는 방송과 인터넷 게시물을 심의하는 기구다. 사진=방송통신심의위원회 제공

이미 방통심의위 업무추진비 허위 기재 및 과다 사용 등 의혹이 제기된 상황이다.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달 방통심의위 부위원장이 인원을 허위 기재하는 방식으로 1인당 3만 원 한도의 식비를 속이는 등 업무추진비 허위 기재가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지난해부터 방통심의위 블라인드 등에선 사무총장, 부위원장 등의 잦은 술자리에 대한 문제 제기가 이어지기도 했다.

가능성이 높진 않지만 검찰 수사가 이뤄질 수도 있다. 국민의힘 박성중·윤두현·홍석준 의원 등이 지난해 9월 MBC와 TBS 등에 ‘봐주기 심의’를 했다며 정연주 위원장 등을 직무유기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방통위 검사와 감사원 감사 등이 이어져 ‘중대 문제’가 발견될 경우 한상혁 위원장 때처럼 기소와 이에 따른 면직을 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방통심의위원장의 임명권자가 대통령이기에 면직이나 해임 역시 행정적으로는 가능하다. 이 경우 정연주 위원장 임기가 법으로 보장돼 있어서 부당함을 다투는 소송을 제기할 수 있지만 승소해도 이미 임기가 만료된 시점에선 복귀가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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