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철도공사(코레일)가 지난해 게시한 노동조합의 필요성을 알리는 지하철 광고물을 올해 심의에선 불허하면서 ‘정부 노조탄압 코드맞추기’라는 논란이 일고 있다. 코레일 측은 올해 광고물이 ‘정치적’인 탓에 불허했다고 밝혔지만 정작 지난해 심의 기준으로 정당 홍보금지 외 별다른 기준을 밝히지 않았다.

민주노총 금속노조는 지난달 25일 ‘코레일유통’ 광고 대행사로부터 공공장소 게시가 부적절하다는 이유로 노동조합 광고 도안에 대해 ‘심의 불가’ 통보를 받았다. 금속노조는 지난해부터 수도권 전철 1호선 코레일 구간에 광고를 게시하는 등 광고 게재 사업을 벌여오고 있다.

광고 도안은 “사실 커피가 아니라 노동조합이 필요한 거예요”라는 문구를 내걸고 있다. 지난해 지하철에 게재된 광고와 동일한 도안으로, ‘생활임금 보장하라’고 밝힌 문구를 ‘최저임금 대폭 인상하라’로 바꾼 점이 유일하게 수정된 대목이다. 금속노조는 지난해부터 전국 25개 공단에서 커피차와 함께 진행하는 노조 상담 사업 일환으로 광고 사업도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해 금속노조가 수도권 전철 1호선에 심의통과해 게재한 광고 시안(위)과 최근 코레일유통이 심의불가 통보한 광고 시안. 사진=금속노조 
▲지난해 금속노조가 수도권 전철 1호선에 심의통과해 게재한 광고 시안(위)과 최근 코레일유통이 심의불가 통보한 광고 시안. 사진=금속노조 

금속노조에 따르면 코레일유통은 지난달 25일 돌연 심의 불허를 통보하면서 “공공장소 게시 부적절”이라는 이유를 밝혔다.

금속노조는 이 같은 결정에 ‘이중잣대’라고 비판했다. 불허 이유를 납득할 수 없는 데다가 올해도 광주 지하철과 부산 버스 등 전국 대중교통에 광고를 게재하는데 코레일유통만 불허 결정을 내렸다는 것이다. 금속노조는 지난 31일 보도자료를 내고 “같은 내용의 노조 광고에 다른 잣대를 적용했다”며 “윤석열 정부의 노조혐오 기조와 이에 눈치를 보는 사회 분위기 탓이라고밖에 설명할 수 없다”고 밝혔다.

코레일유통은 물의가 일자 언론에 ‘최저임금은 정치적’이라는 취지로 반론하면서 되레 반발이 커지고 있다. 코레일유통 홍보담당자는 4일 통화에서 “작년과 올해 문구는 각각 ‘생활임금 보장하라’와 ‘최저임금 인상하라’로 다르다”며 “생활임금은 노동자 최소 생활 보장을 위해 조례로 보장하는 것이라 사회적 개념이지만 최저임금은 법으로 정하고 현재 심의 중이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번 광고가) 정책적 의견 개입이 될 수 있다는 판단(으로 불허한 것)”이라고 했다.

▲지난해 수도권 전철 1호선 코레일구간에 금속노조 광고가 게재된 모습. 사진=금속노조
▲지난해 수도권 전철 1호선 코레일구간에 금속노조 광고가 게재된 모습. 사진=금속노조
▲코레일유통의 ‘2022 광고 도안 심의 사례집’은 심의요소로 “정당의 행사안내, 행사고지, 정책홍보, 당원모집 등 정치활동 일체”만을 밝히고 있다. 사례집 갈무리
▲코레일유통의 ‘2022 광고 도안 심의 사례집’은 심의요소로 “정당의 행사안내, 행사고지, 정책홍보, 당원모집 등 정치활동 일체”만을 밝히고 있다. 사례집 갈무리

이희태 금속노조 전략조직국장은 이에 “조례로 정하면 비정치적이지만 법으로 정하면 정치적 개념이라는 말 자체를 이해할 수 없다”며 “생활임금과 최저임금 모두 법제도적 절차를 거쳐 정치적 과정으로 결정되는 것임에도 올해만 광고를 불허한 것은 자의적 판단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반박했다.

한편 코레일유통이 지난해 스스로 밝힌 심의기준도 이번 불허 결정에 맞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금속노조가 코레일유통으로부터 받은 ‘2022 광고 도안 심의 사례집’을 보면, 코레일유통은 금지 광고 기준 가운데 ‘정치’ 항목에서 게재 불가능한 요소로 “정당의 행사안내, 행사고지, 정책홍보, 당원모집 등 정치활동 일체”를 밝혔다. 이밖에 다른 기준이나 ‘생활임금’은 게재 허용하지만 ‘최저임금’은 불허할 근거는 밝히지 않고 있다.

코레일유통 홍보 담당자는 이와 관련 “앞서 공식입장 외에 추가 입장은 없다”며 “(광고사업처로부터 생활임금과 최저임금의) 세부 개념이 어떻게 다른가에 대해 받은 자료는 없다”고 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