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고 : 국립대 무용학과 교수 A씨.
피고 : MBC.
사건 : 손해배상 및 정정보도 등 청구소송.
주문 : 法 “MBC, A씨에 100만원 지급하고 정정보도하라”
선고일 : 1심 2022년 5월13일, 2심 2023년 1월13일, 3심 2023년 5월18일.

한 국립대 무용학과 교수가 대법원까지 가는 소송 끝에 2년 전 MBC 보도에 대한 정정보도를 받아냈다.

MBC는 지난 20일 뉴스데스크에서 “본 방송은 지난 2021년 5월18일 한 국립대 무용학과 교수가 제자들의 명의를 도용해 소송을 냈다고 보도했다”며 “그러나 보도된 내용과 달리, 소송 당사자들이 된 제자들은 관련 쟁송 절차가 진행된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그 참여 의사로 인적 사항을 전달했다는 점이 밝혀져 이를 바로 잡는다”고 정정했다. 대법원이 국립대 무용학과 교수 A씨 손을 들어준 결과다.

MBC 뉴스데스크는 2021년 5월18일 <고소장에 적힌 내 이름…알고 보니 우리 교수님이?>라는 제목의 리포트를 보도했다. 보도 내용은 한국무용협회 이사장으로 출마하고자 한 A씨가 한 표라도 더 받으려고 제자들을 협회 회원에 가입시키고 학생들 명의를 도용해 선거권을 요구하는 소송(선거권자 지위확인 소송)까지 걸었다는 것이다. MBC는 ‘피해 제자’라는 인물의 주장(“내가 선임한 변호인이 있다는 걸 알게 돼 충격을 받았다”)을 전하며 “정작 해당 학생은 고소 사실을 전혀 몰랐다”고 했다.

▲ MBC는 지난 20일 뉴스데스크에서 2년 전 보도를 바로 잡았다.
▲ MBC는 지난 20일 뉴스데스크에서 2년 전 보도를 바로 잡았다.

法 “MBC, 100만원 지급하고 정정보도하라”

국립대 무용학과 교수 A씨는 2021년 7월 MBC를 상대로 정정보도·손해배상 등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A씨 측은 “원고(A씨)는 소 제기 당사자가 된 학생들에게 소송 취지를 설명하고 당사자들의 동의를 받아 소를 제기했다”며 “MBC의 허위 사실 보도로 원고 명예가 훼손됐기 때문에 MBC는 정정보도할 의무가 있다. 원고가 입은 정신적 고통에 대한 손해배상으로 100만 원을 지급할 의무도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MBC는 △‘명의도용’은 원고의 행태에 대한 의견 표명일 뿐 사실 적시가 아니라는 점 △설령 사실 적시라 해도 ‘명의도용’은 진정한 동의 없이 제3자가 명의를 사용하는 것도 포함하기 때문에 보도는 허위가 아니라는 점 △원고는 국립대 교수로서 공인에 해당하고, MBC는 교수 갑질 행태를 고발하고 사회적 경각심을 불러일으킴으로써 학생들 인권을 보호하고자 하는 공익적 목적에서 보도한 것이기 때문에 위법성이 없다는 점 등을 주장했다.  

서울서부지법 민사12부(재판장 성지호)는 지난해 5월 “MBC는 원고(A씨)에게 100만 원을 지급하고 정정보도문을 게재하라”고 판결했다. MBC는 항소했으나 서울고등법원 민사13부(재판장 강민구)는 지난 1월 “MBC 항소를 기각한다. 항소 비용은 MBC가 부담한다”며 원심을 유지했다. 

MBC는 2심에 불복해 상고했으나 대법원은 지난 18일 심리불속행으로 기각했다. 심리불속행 기각은 원심이 헌법에 반하거나 법령을 잘못 해석한 경우가 아니고, 기존 대법원 판례와 상반되지 않으면 사건 자체를 심리하지 않고 상고를 기각하는 것이다. A씨의 일부 승소 판결이 확정된 것이다. 

▲ MBC 뉴스데스크는 2021년 5월18일 ‘고소장에 적힌 내 이름…알고 보니 우리 교수님이?’라는 제목의 리포트를 보도했으나 이는 대법원까지 간 소송 끝에 허위 보도로 드러났다. 사진=MBC 보도 화면 갈무리.
▲ MBC 뉴스데스크는 2021년 5월18일 ‘고소장에 적힌 내 이름…알고 보니 우리 교수님이?’라는 제목의 리포트를 보도했으나 이는 대법원까지 간 소송 끝에 허위 보도로 드러났다. 사진=MBC 보도 화면 갈무리.

法 “진실성 확인 위한 적절한 취재 다했다고 보기 어려워”

2심 판결문을 보면 재판부는 “원고가 소 제기 전 학생들에게 ‘학생들 명의로 제소하고자 한다’는 취지를 사전에 알려 동의 받았던 사실이 인정된다”며 “이를 두고 ‘원고가 학생들 몰래 그들 명의를 도용했다’거나 ‘학생들이 소송 자체를 몰랐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를 테면 A씨는 학생 B씨에게 “한국무용협회에 가입 승인된 사람들 중 일부가 투표권이 없어 선거권자 지위확인 소송을 제기했으며, 신규 가입한 회원 중엔 B씨를 대표로 하려고 한다”는 취지로 설명했고 B씨에게 생각이 어떤지 물어본 후 주소와 주민등록번호 정보를 요구했다. B씨는 이와 같은 설명을 듣고 나서 주소와 주민등록번호를 알려줬다.

재판부는 선거권자 지위확인 소송을 제기한 학생 6명과 관련해 “원고는 학생들에게 사전에 그들 명의로 소송을 제기하려고 한다는 사실을 알렸고 학생들은 이에 명시적, 묵시적으로 동의했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MBC 보도 후 A씨는 학생들 명의를 도용해 소송위임장, 소장 등을 위조한 혐의로 사문서위조, 위조사문서행사죄 등으로 피소됐는데, 경찰은 증거불충분을 이유로 불송치 결정을 내렸다. “제자들 명의를 도용해 자기 이득만 취한 국립대 무용과 교수님으로부터 제자들을 보호해달라”는 내용으로 국민 청원이 게시되기도 했다.  

MBC는 재판에서 “제보자들의 제보 내용, 원고 및 관계자 등과의 인터뷰를 통해 사실 관계를 확인했고 국립대 교수인 원고의 ‘교수 갑질’ 행태를 고발하고 사회적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등 공익을 위해 보도했기 때문에 위법성이 인정될 수 없다”고 항변했으나, 재판부는 “MBC가 보도 진실성을 담보·확인하기 위한 충분하고도 적절한 취재 활동을 다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보도의 자극적이고 단정적 표현 방식, 특히 제목과 ‘명의도용’이라는 표현 등을 고려하면 보도 위법성이 조각된다고 볼 수 없다”고 했다. 

재판부는 “MBC는 두 제보자와의 통화 내용을 보도 정당성 근거로 삼은 것으로 보이는데, 두 제보자 인터뷰 내용 외에 다른 객관적 증거들을 확인했다거나 인터뷰 내용의 진실성 검증을 위한 추가적 확인 절차를 거친 사정이 보이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 MBC 뉴스데스크는 2021년 5월18일 ‘고소장에 적힌 내 이름…알고 보니 우리 교수님이?’라는 제목의 리포트를 보도했으나 이는 대법원까지 간 소송 끝에 허위 보도로 드러났다. 사진=MBC 보도 화면 갈무리.
▲ MBC 뉴스데스크는 2021년 5월18일 ‘고소장에 적힌 내 이름…알고 보니 우리 교수님이?’라는 제목의 리포트를 보도했으나 이는 대법원까지 간 소송 끝에 허위 보도로 드러났다. 사진=MBC 보도 화면 갈무리.

A씨 측 “언론의 힘과 자유 남용한 사례”

MBC 기자는 보도 전날인 2021년 5월17일 A씨와 통화에서 “고소장을 냈던 제자들 가운데 그 고소장을 자기가 냈다는 걸 모르는 제자들이 있다”고 했고, 이에 A씨는 “학생들과의 통화 녹음 내용을 변호사에게 보내줬고 변호사가 다 들고 있다”는 취지로 말했다.

이와 관련 재판부는 “MBC 기자는 원고가 언급한 통화 녹음 내용이나 변호사에 대해 추가적 확인 절차를 하지 않고 보도한 것으로 보인다”며 “특히 보도가 원고와의 통화 바로 다음날 이뤄진 것으로 볼 때 원고 해명에 관해 확인 절차를 거칠 의사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지도 않는다”고 밝혔다. 

A씨 소송 대리인인 류광옥 변호사(법무법인 가로수)는 23일 “명백하게 사실관계에 어긋난 보도였다”며 “기자가 이 사건을 면밀하고 충실하게 취재했다고 할 수 없다. 데스크가 보도를 충분히 검토한 것으로 보이지도 않는다”고 지적했다. 류 변호사는 “MBC는 이 보도가 갑질 행태를 고발하기 위한 목적의 공익적 보도였다고 했으나 언론의 힘과 자유를 남용한 사례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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