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경영평가 과정에 보수성향 시민 단체 등의 방송 모니터링 자료가 포함된 것을 두고 KBS 이사회에서 논쟁이 벌어졌다. 일부 야권 이사는 현행 경영평가 지침에 어긋난다고 지적했고, 이에 반발하던 여권 이사들이 퇴장해 이사회가 파행됐다.

KBS 이사회는 17일 서울 KBS 본관에서 ‘경영평가 보고서 2차 수정안의 지침 부합 여부’를 논의했다. 일부 경영평가 위원이 ‘공정언론국민연대’(공언련) ‘20대대선불공정방송국민감시단’(감시단) '2022 대선미디어감시연대' 등 자료를 인용해 보고서 수정안을 작성한 것이 경영평가지침에 부합하는지에 대해서다.

안건을 제안한 조숙현 이사(법무법인 원 변호사, 야권)는 공언련 등이 시민단체이기에 경영평가 지침상 이들 평가를 반영할 수 없다고 했다. KBS 경영평가 지침 3조 나항은 ‘평가항목에 관하여 국가기관, 연구기관, 학술·전문가단체 또는 언론기관 등이 한 평가결과가 있는 경우 그 내용을 제시하고 검토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전·현직 공영방송 임·직원, 시민단체 관계자 등으로 구성된 공언련은 윤석열 정부 들어 활발하게 활동하는 언론 관련 보수단체로 꼽힌다. 과거 이른바 ‘검사 사칭’ 사건으로 알려진 최철호 전 KBS PD가 공언련 상임운영위원장과 감시단 대표를 맡고 있다. 최 대표는 국민의힘 추천으로 올해 상반기 재·보궐선거 선거방송심의위원회 위원에 위촉됐다. 국민의힘은 최근 공언련 모니터링 자료를 근거로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공영방송 라디오 패널 구성 불공정성에 관한 심의’ 민원을 넣었다. 공언련 등 자료를 인용했다고 알려진 김백 경영평가 위원은 공언련 홈페이지에 이사장으로 소개되고 있다. ‘2022 대선미디어감시연대’는 민주언론시민연합·녹색연합 등 진보성향 단체들과 전국언론노동조합·언론직능단체 등이 지난 대선 기간 구성한 연대체다

▲서울 영등포구 KBS 본사. 사진=KBS
▲서울 영등포구 KBS 본사. 사진=KBS

여권 이사들은 이사회가 시작되자마자 안건 논의 및 의결을 반대했다. 조 이사가 안건 설명을 하려하자 권순범 이사(전 KBS 정책기획본부장, 여권)는 이사회에 ‘2차 수정안’이 공식 보고되지 않아 수정안과 지침의 부합 여부를 논의할 수 없다고 했다. 앞선 간담회에서 경영평가단의 자체적인 논의를 권고했기에 이사회가 나설 때가 아니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안건을 다수결로 표결하면 ‘독재’라는 주장도 나왔다. 김종민 이사(김종민 법률사무소 변호사, 여권)가 “나치가 폭력으로 집권했나, 전부 합법적으로 집권했다. 우리의 과거 권위주의 정권도 마찬가지”라며 “이런 사안을 자꾸 표결하게 되면 독재로 가는 길”이라고 말한 것이다. 그러면서 “공언련에서만 KBS 보도의 편파성을 지적하지 않았다. 수많은 보수 쪽 권위 있는 언론이 그런 부분을 지적했고 실제 KBS는 이동재 전 채널A 기자에 대한 ‘검언유착’ 보도를 사과하는 데 3년 걸렸다. ‘생태탕 보도’는 어떤가”라고 덧붙였다.

반면 야권 이사진은 시민단체 의견이 반영될 경우 부작용이 우려된다고 주장했다. 류일형 이사(전 연합뉴스 기자, 야권)는 “주관적인 시민단체 평가가 없었던 선례가 깨지면 앞으로 경영평가 보고서가 진영간 싸움의 장, 각축장이 되지 않을까라는 우려가 있다”며 “물론 KBS가 이때까지 완벽하게 공정 보도를 해왔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객관적이고 적절한 수준의 평가가 KBS 발전에 도움이 되는 방향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공언련이 시민단체인지 전문가단체인지 관계자들을 이사회에 불러서 따져보자는 이석래 이사(전 KBS미디어텍 대표이사, 여권) 주장도 나왔다. 그러자 김찬태 이사(전 KBS PD, 야권)는 진보성향 시민단체로 분류되는 참여연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등을 예로 들며 “회계사, 박사 있다고 전문가 단체라고 하지 않는다. 전문가 없는 단체가 어디 있겠느냐”고 맞받았다.

정회와 속개를 거듭한 회의에도 이사진간 입장차는 평행선을 달렸다. 회의가 두 시간쯤 이어졌을 무렵 일부 야권 이사들이 더 늦기 전에 결론을 내자고 했고, 여권 이사 전원이 격하게 반발하며 퇴장했다. 이 과정에서 권순범 이사는 남영진 이사장(전 지역신문발전위원회 부위원장, 여권)에게 “이런 식으로 이사회 운영하지 말라. 인생 그렇게 살지 말라”고 고성을 지르기도 했다. 여권 이사 퇴장 이후 야권 이사들은 표결을 진행하지 않되, 경영평가단에 회의 속기록을 전하기로 했다. 오는 24일 임시 이사회에서 후속 논의가 이어질 예정이다.

방송법 시행령에 따라 KBS 이사회는 경영평가단을 구성·운영하고, 매 회계연도 종료 후 5월 이내에 방송·홈페이지·보고서 등으로 공표해야 한다. 시행령에 규정된 경영평가 사항은 △경영목표 설정의 타당성 △예산집행 효율성 △인사·조직 등 경영관리제도 △재무상태 등 경영실적 △연구개발사업 △시설투자 △기타 공사의 발전과 경영개선을 위하여 필요한 사항 등이다. ‘2022 사업연도 KBS 경영평가단’으로는 방송 분야(김경희 한림대 미디어스쿨 교수, 김백 전 백석대 초빙교수·전 YTN 상무), 기술·뉴미디어 분야(박승권 한양대 공과대 교수, 이창형 전 KBS 기술본부장), 경영 분야(김윤로 전 KBS비즈니스 이사, 이영주 서진회계사무소 대표) 등 외부위원과 KBS 감사 등이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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