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세(大勢)를 따르는 것은 흔한 일이다. 시대 변화에 발맞춘다는 인상을 주면서 시쳇말로 ‘폭망’할 리스크를 낮춘다. 그래서 개인이든 기업이든 새로움을 추구한다는 명분 하에 어찌 보면 안정적 선택지라 할 수 있는 시류에 편승하는 경우가 많다.

언론계도 마찬가지다. 사회의 다양한 이슈를 조명하는 업이지만 ‘미디어 산업’ 관점에선 대세 쏠림 현상이 극명하다. 뉴스(룸) 혁신을 논하며 요즘 대세 중의 대세인 생성형 인공지능(generative AI)이 빠지지 않고, 디지털 전략에선 페이월(paywall)로 대변되는 온라인 유료화에 온통 관심이 집중된다. 관련 콘텐츠도 연일 쏟아진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남다른 행보를 보인 미디어 기업들이 있다. 블록체인 기반 서비스 확대에 나선 독일 미디어그룹 악셀 스프링거(Axel Springer)와 창간 100주년을 기념하며 페이월 폐지를 발표한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TIME)이다. 두 미디어가 대세를 따르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AI와 페이월 키워드에 매몰되지 않고 각자의 위치에서 ‘마이웨이’를 선언한 것 자체만으로 일단 신선하다.

▲  블록체인 네트워크 킬트(KILT)와 협력해 블록체인 기반 서비스 확대에 나선 독일 미디어그룹 악셀 스프링거(Axel Springer) 알림 기사 갈무리.
▲ 블록체인 네트워크 킬트(KILT)와 협력해 블록체인 기반 서비스 확대에 나선 독일 미디어그룹 악셀 스프링거(Axel Springer) 알림 기사 갈무리.

악셀 스프링거는 지난 4월 초 블록체인 기반 로그인 서비스 개발 소식을 알렸다. 이용자가 탈중앙화 지갑을 생성해 악셀 스프링거 산하 매체에 접속할 수 있도록 했다. 100% 자체 역량에 의한 건 아니고 블록체인 네트워크 킬트(KILT)와 협력했다. 악셀 스프링거 측은 “탈중앙화된 신원이 앞으로 더 중요해질 것”이라며 도입 배경을 밝혔다.

개인정보 및 프라이버시 보호가 점점 더 강조되는 디지털 환경에서 암호화된 블록체인은 보안성 문제의 많은 부분을 해결하는 차세대 기술로 평가받는다. 또 탈중앙화라는 블록체인 특징은 소수의 대기업에 데이터‧서비스가 집중되는 비즈니스 구조를 흔든다. 이런 연유로 블록체인은 웹 2.0으로 표현되는 현재의 인터넷 다음 단계인 웹 3.0으로 이야기되기도 한다.

디지털 전환기를 거치며 빅테크 플랫폼에 뉴스 유통의 주도권도, 광고 집행의 우선권도 모두 빼앗긴 언론 입장에서도 블록체인은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실제로 블록체인이 열어젖힐 새로운 생태계에 대한 기대감은 언론계를 휘감았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블록체인 담론은 물론, 블록체인 기술로 만들어지는 NFT(Non-Fungible Token, 대체불가토큰)가 미디어 산업을 관통하며 유행처럼 번졌다.

그러다 챗GPT 등장과 함께 ‘기승전AI’로 분위기가 달라진 와중에 유럽 최대 미디어 그룹이 다시 한번 블록체인 가능성에 주목하며 미디어 비즈니스의 미래와 연결 지은 것이다. 악셀 스프링거는 표면적인 웹3 프로젝트 진행뿐 아니라 업의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기 위한 ‘브레인 조직’도 정비했다. 악셀 스프링거 컨설팅 그룹 hy는 지난해 말 웹3 및 메타버스 사업부를 출범하며 모회사가 그리는 그림에 선제적으로 부응했다.

타임은 디지털 경쟁력 강화 차원에서 십수년 간 가다듬어 온 페이월을 없앤다고 발표해 눈길을 끌었다. 오는 6월 1일부터 타임 온라인 홈페이지(time.com) 콘텐츠 및 100년 디지털 아카이브를 무료 이용할 수 있도록 개방한다. 페이월 폐지와 관련해 “신뢰할 수 있는 저널리즘을 전 세계에서 무료 엑세스할 수 있도록” 한다는 이유를 내세웠는데, 이는 ‘전 세계 독자들에게 신뢰할 수 있는 가이드를 제공한다’는 자사 미션과 맥을 같이 하고 있다. 

▲ 페이월 폐지를 알리는 타임지의 알림 기사
▲ 페이월 폐지를 알리는 타임지의 알림 기사

광고 시장조차 ‘디지털 퍼스트(Digital First)’로 재편되면서 전통매체가 가져가는 몫은 꾸준히, 그러면서도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수익성 악화로 인한 매체 경영난을 해소하는 대표 방안이 ‘디지털 유료구독’ 확대라는 점은 주지의 사실이다. 특히 코로나 팬데믹을 전후로 경기 침체 그림자가 짙어지면서 광고 기반 무료 매체들조차 디지털 유료화에 드라이브를 걸기 시작했는데 타임은 외려 반대 노선을 걷기로 했다.

타임의 디지털 유료화 노력은 2011년부터 시작됐다. 당시 웹사이트에 게시되는 모든 잡지 콘텐츠에 대해 하드 페이월(hard paywall, 비용 결제 없인 콘텐츠 접근 불가능)을 처음 적용한 뒤, 미터드 페이월(metered paywall, 한 달 무료로 볼 수 있는 기사 건수 제한) 등 다양한 유형의 유료화 모델을 실험했다.

악시오스(Axios) 보도에 따르면 현재 타임은 130만명의 인쇄판 구독자와 25만명의 디지털 구독자를 보유하고 있다. 디지털 전용 연간 구독료(월 10.45달러 합산액 50% 할인)에 근거해 단순 계산하면 한화로 200억원이 넘는 연수익을 포기하고, 더 많은 독자에게 타임 브랜드와 저널리즘 가치를 노출함으로써 미래 비즈니스를 창출하려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타임 또한 악셀 스프링거와 마찬가지로 웹 3.0 흐름에 뛰어들어 타임피스(TIMEPieces)라는 NFT 커뮤니티 구축에 공을 들이는 중이다.

이들 두 언론이 실제로 어떤 성과를 어느 정도 거둘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호기롭게 다른 길에 접어들었지만 여정이 순탄치 않을 수 있다. 예상보다 좋지 않은 흐름이라면 다시 과거 방식으로 돌아갈 수도 있다. 그럼에도 미디어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는 지금과 같은 대전환기에 부지런히 움직이며 비전을 재설정했다는 것, 각자의 스타일대로 로드맵을 제시했다는 점, 그리고 전사 차원에서 이를 끌고 가는 리더십을 발휘한다는 측면에서 뉴스조직의 새로운 가능성을 엿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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