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초 해외 언론에 잇달아 새로운 자리가 생겨났다. 미국 유력지 워싱턴포스트의 ‘접근성 엔지니어’, 영국 경제지 파이낸셜타임스가 신설한 ‘인공지능(AI) 에디터’다. 각사에서 수행하는 역할은 당연히 다르지만, 전통 뉴스룸이 각자의 방식으로 서비스 업그레이드에 나서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접근성 엔지니어(Accessibility Engineer)는 지난 1월 말 워싱턴포스트(이하 WP)에서 최초로 만들어진 보직이다. 명칭에서 드러나듯 뉴스를 비롯한 WP 콘텐츠 전반의 접근성을 높이는 일을 한다. 

접근성은 사용자가 제품이나 서비스를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문턱을 최대한 낮추는 것이다. 휠체어 탄 사람들의 보행권을 보장하는 도로 정비라든가 홈페이지 이용이 어려운 장애인 및 고령자를 위한 웹접근성 개선안 등을 이야기할 때 흔히 등장하는 용어다. 온-오프라인을 포괄하는 개념인데, WP 접근성 엔지니어는 오프라인(종이신문)보다 온라인(웹‧모바일) 이용자 경험 개선에 중점을 둔다. 

▲ 워싱턴 노스웨스트에 위치한 워싱턴포스트 본사. 사진=워싱턴포스트
▲ 워싱턴 노스웨스트에 위치한 워싱턴포스트 본사. 사진=워싱턴포스트

WP는 회사 블로그에서 WP 최초의 접근성 엔지니어인 홀든 포먼(Holden Foreman) 씨를 인터뷰해 직무 도입 배경과 의미를 설명했다. 시각장애인 및 저시력자가 보도 이미지에 포함된 내용을 들을 수 있도록 하는 대체 텍스트나 동영상 캡션 삽입 등의 기본 요소부터 다양한 서비스 개발, 웹사이트 구조 변경 등에 이르기까지 디지털 뉴스 제품‧서비스 전반에 걸쳐 사용자 친화적인 방법을 설계한다. 개발자뿐 아니라 기자, 디자이너 등 콘텐츠 생산에 관여하는 구성원 교육도 핵심 미션이다. 

이 일을 주도하게 된 포먼 씨는 “새로운 역할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연구를 수행하고 WP 사용자 의견을 경청하는 것”이라며 회사 이메일은 물론 개인 이메일 및 트위터, 마스토돈(Mastodon, 분산형 소셜미디어) 등 가용 디지털 채널을 모두 오픈해 적극적인 의견 개진과 피드백을 요청했다. 

뒤이어 하버드대 니먼랩(Nieman Lab)과 진행한 인터뷰에선 “모든 사람이 뉴스에 접근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건 저널리즘의 필수 사명”이라고 전제한 뒤, “과거에는 접근성 업무가 부서별로 사일로(silo)화 돼 간헐적으로 이뤄졌지만 새 직책의 목표는 (뉴스룸-비뉴스룸 구성원을 아울러) 접근성에 대한 지속적이고 중앙집중적이며 조직적인 추진”이라고 부연했다.

파이낸셜타임스(이하 FT)의 AI 에디터는 지난 2월 인사 발표를 통해 알려졌다. 역시 FT에서 처음으로 신설한 직책이다. 챗GPT(ChatGPT)를 필두로 생성형 AI가 세계적 관심사로 급부상하면서 빠르게 달궈진 관련 시장을 집중적으로 다루기 위한 포석이다. 

AI 에디터는 FT의 AI 보도를 총괄하며 그 이면에 있는 비즈니스, 기업, 정책 및 과학에 대한 기사를 쓴다. 언론사는 대개 IT/테크 담당 기자가 AI 분야까지 커버하는데, FT는 AI를 따로 떼어내 버티컬(vertical)로 좁고 깊게 파도록 조정한 것이다. 과학‧기술 분야의 전문성이 중요한 만큼 FT 유럽 기술 특파원으로 활동한 마두미타 무르지아(Madhumita Murgia) 씨를 그 자리에 앉혔다.

무르지아 씨 역할도 니먼랩과의 인터뷰를 통해 소개됐다. 그는 “AI가 전세계 산업을 어떻게 뒤흔들고 있는지에 대한 기사를 점점 더 많이 접하게 될 것”이라며 AI를 이용한 과대광고와 AI로 인한 진정한 혁신 구분에 대해 자신했다. 특히 글로벌 뉴스룸 안에서 움직인다는 점을 강조했는데, 자신의 특파원 경험을 바탕으로 각국 지사와 협력해 나간다는 구상이다. 

AI 에디터인 만큼 생성형 AI로 인해 언론계가 직면하는 도전적 상황에 대한 견해도 들을 수 있었다. 최근 미국 언론계에선 온라인 매체 버즈피드(BuzzFeed)가 챗GPT를 개발한 오픈AI와의 협업을 공식화한 것이나, 테크 전문매체 씨넷(Cnet)이 AI 작성 사실을 밝히지 않은 채 AI 기사를 게시한 사건 등이 뜨거운 감자였다. 

무르지아 씨는 “내가 생각하는 좋은 저널리즘은 독창적이고 이전에 알려지지 않았거나 숨겨진 진실을 드러내는 것”이라며 “(AI) 언어모델은 학습된 기존 텍스트를 기반으로 시퀀스에서 가장 가능성이 큰 다음 단어를 예측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따라서 현재 형태로는 진정으로 새롭거나 예상치 못한 것을 생성하거나 발견할 수 없다”는 말로 사람 기자의 가치를 낙관했다. 
   
접근성 엔지니어와 AI 에디터를 비교적 상세히 기술했지만 사실 두 직책의 업무가 완전히 새롭거나 획기적이진 않다. 해외는 물론 국내 언론사에도 비슷한 일을 처리하는 인력이 과거에도 있었고 지금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다만 제품 담당 엔지니어, 아트 디렉터, 내러티브 프로젝트 에디터, 스토리텔링 엔지니어 등 시대 변화에 발맞춰 특정 업무의 중요성을 키우고 직제화해 전담자를 임명하는 것은 인상적이다. 조직 체계의 유연성이 각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셈이다. 비편집국 인사인 접근성 엔지니어가 뉴스룸 내에서 제품 혁신의 주도적 역할을 맡는다는 점도 국내 언론사 조직 관행과는 다르다. 

WP와 FT 양사의 소통 방식도 눈여겨볼 부분이다. 뉴스룸 변화나 구성원 역할에 대해 공식 창구를 통해 먼저 알리는 친절과 서비스 마인드가 문화로 자리 잡았다. 뉴스 소비자인 독자에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여러 디지털 채널을 전방위로 활용하는 것도 자연스럽다. 

나아가 개별 언론의 내부 동향이나 새로운 시도가 회사 채널(홈페이지, 블로그)→담당자 개인 채널(트위터, 블로그)→외부 연구기관 채널(홈페이지 인터뷰)로 이어져 한층 풍성한 스토리를 낳는다. 이런 열린 구조가 뉴스미디어 산업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는 듯하다. 디지털 기술과 솔루션으로 똑같이 변화를 추구하는 한국 언론계에선 좀처럼 볼 수 없는 낯선 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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