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월, 군에서 발생한 의문사를 해결하기 위해 대통령 직속으로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군의문사위)가 설립됐다. 2004년 2월 국가인권위원회가 ‘군의문사진상규명특별법’ 제정을 권고했고 여야 합의로 국회에서 2005년 해당 법안을 통과시켰다. 2008년말까지 활동하는 기구로 발족했는데 3년간 395건밖에 처리하지 못하자 유족 등의 항의로 2009년말까지 1년 활동을 연장했다.

군사망진상위 조사기간이 한시적이었고, 신청기간은 더 짧았다. 1950년대부터 2005년까지 군에서 발생했을 수많은 의문사 중 2006년 한해동안 접수된 600건을 대상으로 조사를 진행했다. 아무리 홍보를 해도 전 국민이 이를 알 수 없을 뿐 아니라 해당 기관을 알더라도 ‘설마 해결되겠어’라는 의심도 진정을 망설이게 하는 이유다. 혹은 ‘죽은 아들 문제 또 떠올려봤자 괴롭기밖에 더 할까’라며 자식을 조용히 가슴에 묻는 경우도 많을 수밖에 없다. 

다루는 사건의 범위도 좁았다. 해당 특별법에선 “군인으로서 복무하는 중 사망한 사람의 사망원인이 명확하지 아니하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사유가 있는 사고 또는 사건”을 군의문사로 정했다. 유족들이 자주하는 말 중에 “국가에서 내 아들을 빌려 가놓고 왜 멀쩡하게 돌려놓지 않느냐”는 표현이 있다. 군에서 벌어진 사망이라면 ‘의문사’에 해당하지 않더라도 국가에게 책임이 있어야 한다는 주장은 당시에 다소 이상적이었던 셈이다. 

그럼에도 군의문사위는 창군이래 처음으로 군에서 억울하게 죽은 시민과 유족에 대해 국가가 책임이 있다는 조사결과를 남겼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350여건의 조사를 마쳤고 그중 120여건을 진상규명했다. 진정인이 진정을 취하한 사건 중에는 군의문사위 조사과정에서 죽음의 이유를 확인한 경우도 많았다. 더 중요한 건 ‘남편 잡아먹은 여자’라는 비난, 자식을 잃고 술에 빠져 살며 자책하던 부모에게 군의문사위는 존재 자체로 위로였고 희망이었다. 

군의문사위의 업적은 3년활동보고서로 묶였고 이중 일부 사건에 대해서는 전직 기자들이나 출판인 등이 집필진으로 참여해 18개의 인터뷰를 모아 사례집 <돌아오지 않는 내 아들-군의문사 유족들은 말한다>를 펴냈다. 

▲ 돌아오지 않는 내 아들/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엮음/ 삼인 펴냄
▲ 돌아오지 않는 내 아들/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엮음/ 삼인 펴냄

 

<돌아오지 않는 내 아들>에서 가장 오래된 사건으로 1951년 국민방위군으로 징집됐다가 사망한 고 박술용씨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한국전쟁이 시작되고 7개월이 지났을 무렵, 아내 이남희씨와 작별인사도 하지 못한 채 박씨는 징집됐다. 한달정도 지난 1951년 2월13일 이름 모를 군인들이 차에서 내려 작은할아버지네 문 앞에 박씨를 버리고 갔다. 산송장이 된 박씨는 집에 온 지 3일 만에 세상을 떠났다. 

대를 잃을 아들 하나 낳지 못한 이씨와 두 딸은 고난의 세월을 살았다. 그렇게 반백년을 지냈고 군의문사위에 진정을 넣은 지 2년 만인 2008년 6월 국립대전현충원에 박씨가 봉안됐다. 군의문사위가 ‘국민방위군 징집으로 인한 사망’이라고 결정했고 육군본부가 이를 받아들여 ‘순직 결정’을 내렸다. 57년 만의 순직 인정이다. 

이 책에서 가장 최근 사건은 2005년 시위 진압 후 외상후 스트레스를 겪다 사망한 고 서현덕 이경 이야기다. 경찰에선 서 이경이 “자신이 처한 환경 극복에 대한 의지 부족과 착오에서 비롯”된 공무와 관련 없는 ‘일반 사망’으로 결정했다. 개인 탓이란 얘기다. 이에 유족들은 군의문사위에 진정을 넣었고 2008년 6월 군 복무 과정에서 겪은 육체적 정신적 스트레스에 훈련 중 입은 발목 부상, 시위 진압 과정에서 부상당한 동료를 보며 겪은 외상후 스트레스장애, 제대로 치료 받지 못한 상태에서 병증의 악화 등이 사망의 원인이므로 ‘순직 군경’에 해당한다고 결정했다. 

군의문사위의 이러한 결정에도 군이나 경찰이 이를 수용하는 건 아니다. 군의문사위는 600건의 진정사건 중 250여건을 처리하지 못한 채 문을 닫았다. 군에서 발생한 수많은 사망 사건을 조사할 기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를 꾸준히 이어졌다. 

▲ 현충원. 사진=pixabay
▲ 현충원. 사진=pixabay

 

2018년 3월 군사망사고진상규명에관한특별법이 제정됐고 같은해 9월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군사망사고위)가 출범했다. 2020년 9월14일까지 2년간 사건 접수를 받았고, 오는 9월23일까지 군사망사고위가 유지된다. 원래 3년 한시조직이었지만 2년 연장했다. 지난달 28일 기준으로 접수된 1787건 중 1632건을 종결하고 155건을 처리 중인데 군에서 사망한 수많은 사건 중 1787건은 턱없이 부족한 숫자다. 한국전쟁 이후 매년 1000~2000명이 사망했고 민주화 이후에도 수백명이 군에서 목숨을 잃었기 때문이다. 

‘군에서 죽으면 개죽음’이란 표현은 군에서 얼마나 사람이 쉽게 죽을 수 있고, 그 죽음이 얼마나 하찮게 취급받는지 보여주는 말이다. 군은 유일하게 기자들이 출입하지 못한 채 모든 정보가 ‘안보’란 이름으로 은폐되는 공간이다. 군에서 정보를 꽁꽁 숨길 경우 유족이 할 수 있는 조치는 많지 않다. 게다가 자식을 잃은 부모가 스스로 ‘무엇을 할 수 있겠냐’는 자책감을 군에서도 악용하며 개인 탓으로 덮는 사례가 많다. 

군의문사에서 군사망사고로 위원회가 다루는 사건의 범위가 넓어졌지만 사실 더 넓어질 필요가 있다. 군에서 다치거나 질병을 얻는 사람도 많기 때문이다. 국방의 의무를 법에서 규정한 만큼 국가가 국민을 동원할 때는 신중한 절차를 거쳐 데려가고 책임있게 관리해서 안전하게 내보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문제가 있었다면 사망사건이 아니더라도 진상을 철저하게 조사할 필요가 있다. 부상이나 질병사건까지 포함한 사상자에 대한 전수조사를 진행하려면 군의문사위나 군사망사고위와 같은 한시조직으로는 한계가 있다. 어떤 형태로든 상시조직이 필요하다. 

▲ 군에서 벌어진 사망사건뿐 아니라 부상, 질병 등을 조사할 수 있는 상설기구가 필요하다. 사진=pixabay
▲ 군에서 벌어진 사망사건뿐 아니라 부상, 질병 등을 조사할 수 있는 상설기구가 필요하다. 사진=pixabay

 

상시조직은 국방부, 국가보훈처(국가보훈부), 국회, 대통령 직속 기구 등을 생각할 수 있다. 국방부에 설치할 수 있으면 내부에서 견제할 수 있는 시스템일 수 있지만 현재까지 군의문사위나 군사망사고위가 국방부의 잘못을 재조사하는 형식이었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국방부가 수용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보훈처가 오는 6월 국가보훈부로 승격되는데 이때 군사망과 부상·질병 등을 조사하는 기능을 추가할 수 있지만 이 역시 현실적으로 논의되지 않고 있다. 보훈처(보훈부) 역시 새로운 사건의 진상이 밝혀져 추가로 지원금 등이 나가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보여왔다. 

국방부나 보훈처 등 행정부처 조직이 군의 한계를 지적하는데 부정적이기 때문에 국회에 상설조사기능을 둬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지난 2020년 안규백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국회군인권보호관법안을 대표발의했다. 군 외부에서 독립적이고 전문적으로 군인의 인권침해 행위를 보호하자는 취지다. 국회가 행정부처를 견제한다는 삼권분립 원칙에 충실한 조직일 수 있다. 

현행 군사망사고위를 연장하면서 지금처럼 대통령 직속 기구로 상설화하는 방안도 생각할 수 있다. 군사망사고위는 5년간 쌓은 노하우가 있는데 일단 이 기구가 해산되면 그동안의 자산이 사라진다. 군사망사고위를 연장하다가 대통령 직속 기구로 상설화할 경우 현재까지 조사 경험 등이 이어질 수 있다. 

국가가 법의 이름으로 데려간 시민들이 다치거나 죽는 것은 그 자체로 억울한 일이다. 국가가 있는 한 군에서 죽거나 다친 이들을 위한 상설조직 하나쯤은 이제라도 만들 이유가 충분하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내 아들>이 나와선 안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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