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경영진이 이른바 ‘무늬만 프리랜서’ 관행을 개선해 프리랜서의 ‘업무 자율성과 독립성을 보장하고 있다’고 이사회에 보고했다. 그러나 현장의 KBS 프리랜서들은 사측의 업무‧지시가 상시적으로 이뤄진다고 밝혔다. 이사들은 KBS가 불안정하거나 차별적인 고용 관행을 이어가는 데에 우려를 표했다.

KBS 이사회는 지난 29일 정기이사회에서 KBS의 비정규직 실태조사 결과 안건을 다뤘다. KBS 보고에 따르면 KBS 인력 구성은 정규직 67.5%, 비정규직 15% 프리랜서 17.5%로 나뉜다. KBS는 비정규직을 한시계약직, 단시간 임시사역(아르바이트), 파견 노동자로 구분했다. KBS는 비정규직 관련 14건의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KBS는 기간제 계약직 노동자는 변호사‧박사 등 전문직과 전문상담‧AD‧영상편집 직무를 수행한다고 했다. 파견노동자는 촬영‧편집보조나 인제스트 등을 담당한다고 했다. 프리랜서의 상당수는 작가‧방송진행‧VJ 업무를 수행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프리랜서 일부는 근로자와 유사한 업무를 수행하지만 그 범위, 재량권, 지휘‧감독에 차이를 두고 있다”고 보고했다. 도급‧외주‧용역 비정규직엔 “결과물의 완성도를 확인할 뿐 운영‧관리하지 않아 정확한 규모와 내역을 파악하지 않는다”고 했다.

▲서울 영등포구 KBS 본사 사옥. 사진=KBS
▲서울 영등포구 KBS 본사 사옥. 사진=KBS

김종민 이사는 KBS가 노동자에게 프리랜서 계약을 적용해 사용자 책임을 회피하는 ‘무늬만 프리랜서’ 관행에 대해 물었다. “프리랜서들은 어떤 역할을 하나”라며 “정규직이 그만큼 많은 급여를 받고 고용보장 받으면서 핵심 역할을 하고 비정규직이 부수 업무를 하는 정도라면 괜찮은데, 비정규직이 실질 다 하고 (정규직은) 기획조차 노력하지 않고 이름만 걸어놓고 프리랜서 작가에게 맡긴 채 월급만 받는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도 가질 수 있다”고 했다.

김민 KBS 인적자원실장은 “대부분 프리랜서(계약)는 방송 현업 제작 과정에서 발생”한다며 “지휘‧감독이 생기는 경우는 내부화(직고용)하고, 완성물을 적용할 정도의 (업무) 독립성이 인정되면 프리랜서를 유지하는 방향”이라고 했다. 이 실장은 “많은 경우 제작진을 보좌하고 지원하는 인력이 프리랜서 작가 형태로 있었다”며 “작가들을 저희는 방송지원직이란 (직군으로) 계약기한은 있지만 내부화시켰다”고 했다. 그러면서 프리랜서 문제에 대해선 “자율성 독립성을 확실하게 보장하는 방향으로 개선하고 있다”고 했다.

“프리랜서는 독립적” KBS에 프리 작가 “거짓말”

방송제작 현장에 있는 KBS 작가의 설명은 달랐다. 전국 KBS에서 프리랜서 계약을 적용받는 작가들이 일상적으로 사측 지시에 따라 일한다는 것이다.

전국언론노동조합 방송작가지부(방송작가유니온) 소속 KBS 작가는 31일 통화에서 이사회 보고 내용에 “거짓말”이라며 “프리랜서로 계약했지만 KBS 지역총국 전반에 업무 지시가 일상적”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촬영을 다녀오고 나서도 (KBS 측 관리자)본인들이 미진하다 판단하면 갑자기 아이템을 엎고 다른 것을 찾아보라고 한다. 작가들이 여러 개를 찾아가면 (관리자가) 그 중 고르는 것”이라며 “아이템을 정해주기도 하고, 취재하려면 어디에 연락하라고도 지시한다. 다 조율해 써놓은 오프닝과 클로징 원고를 바꾸라고 하는 일도 많다”고 했다. “특히 서브작가는 처음부터 업무 지시가 주어진다”며 “방송사의 송출 시간이 작가에게는 데드라인 기준이고 노동시간”이라고도 했다.

방송기술 업무 “다른 처우, 하는 일은 같아”

KBS 노동자들이 같은 일을 해도 채용 경로가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 처우를 적용하는 데에도 질문이 나왔다. 조숙현 이사는 “특정업무직이라고 밝힌 SA‧SB‧SC는 어떤 기준으로 직군이 나뉘는가. 영상편집, CG 등등으로 업무 특성으로 묶이지 않는 것 같다”며 “고용 형태만 갈리는가 아니면 수행하는 업무의 실질적 차이도 있는가”라고 물었다.

KBS 인적자원실장은 “업무에 실질적 차이는 없어 보인다”며 “같은 CG 업무를 해도 SA이기도 하고 SB이기도 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SA와 SB는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자다. SA와 SB를 구분하게 된 건 과거 KBS미디어텍 인력이 KBS에 직고용 전환됐는데, SA는 미디어텍 당시 일반직이었던 이들이고 SB는 전문직”고 했다. “SC의 경우 SA와 SB의 대체인력으로, 육아휴직 등에 한시 운영한다”고 했다.

현재 KBS는 뉴스진행, 영상편집, 스포츠중계, 오디오녹음, 보도‧편성CG, 특수영상 등 직무를 하는 노동자를 채용 경로에 따라 4개 직군으로 구분하고 있다. KBS 본사의 일반직(정규직)과 SA‧SB‧SC(특정업무직)다. 이들은 같은 일을 하지만 복지와 급여를 차등 적용받는다. KBS 일반직 정규직의 급여와 처우가 가장 높고, 특정 업무직의 SA와 SB, SC 순이다.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미디어텍지부에 따르면 특정직과 일반직의 급여 차이는 평균 2배 정도다.

류일형 이사는 “KBS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 차이가 3배 정도라는 보도가 있는데 격차가 적정하다 보는가, 언제까지 적정한 수준으로 격차를 줄일 계획인가”라고 질의했다.

KBS “비정규직 급여, 정규직의 70% 수준”

김민 실장은 ‘3배 차이’란 보도를 두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근속 차이에 따른 “통계적 착시”가 있다며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 급여 차이가 2배를 안 넘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라고 했다. 김종민 이사가 정확한 수치를 재차 묻자 “공채 신규 (일반직) 직원이 초봉 5000만원을 받는다면 비정규직은 직무에 따라 차이 있지만 그 70% 수준”이라고 했다.

김종민 이사는 KBS가 비정규직 고용 정책에 일관적이고 합리적 기준을 세울 것을 요구했다. 김종민 이사는 “KBS의 비정규직 고용 정책이라는 것이 수립돼있느냐”고 물었다. 김민 실장은 “특정하고 있지 않지만, 직무를 분명히 구분해야겠다. 비정규직을 사용할 경우 법적 문제가 생기지 않고 혼재(정규직과 비정규직이 한데 모여 협업)되지 않도록 개선해야 한다는 방향”이라고 했다.

김종민 이사는 이에 “이 문제는 상당히 예민하고 중요한 문제”라며 “분명하고 확고한 고용과 인사정책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정규직은 그만큼 생산성 등이 적어도 (비정규직보다) 30%를 더 받는 만큼의 역할이 있어야 하지 않나. 직무를 분석하고 정책을 세우고 관리 감독을 해야 한다”고 했다.

류일형 이사는 KBS가 비정규직 노동자를 상대로 법적 다툼을 하기보다 대화에 나설 것을 권고했다. “KBS가 신경써야 할 여러 분야 중 비정규직에 가장 많은 신경을 기울여야 한다”며 “평소 비정규직과 상시 소통해 가능하면 소송까지 가지 않고 대화로 합리적 방안을 찾는 식으로 원만하게 진행되면 좋겠다. 소송 중이라도 판결까지 가서 대외 이미지가 나빠지기 전에 화해나 중재를 통해 해결되도록 적극 임해 달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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