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휴대폰을 만드는 하청업체 노동자가 메탄올 중독으로 목숨을 잃는 사고가 벌어졌다. 시민단체들이 29일 관련해 국내 기자회견을 연 직후 삼성의 언론홍보 입장을 담은 기사들이 쏟아졌다. 삼성 측은 언론을 통해 “협력업체가 허위납품 피해를 당한 것”이라고 밝혔지만, 이전과 같은 피해가 나라만 바꿔 발생한 데다 삼성이 하청업체에 대한 안전관리 책임을 공언해왔다는 반박이 나온다.

반올림은 29일 오후 성명을 내고 “삼성은 순진한 얼굴로 피해자인 척하지만, 이 사고에 자신의 책임이 있다는 것을 모를 리 없다. (원청 책임은) 국제사회가 기업에게 구하는 기본적인 규범이기 때문”이라며 언론에 보도된 삼성 입장을 반박했다.

이날 오전 반올림과 노동건강연대, 국제유해물질추방네트워크(IPEN) 등 16개 단체는 서울 강남 삼성전자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베트남의 삼성 휴대폰 제조 노동자들이 메탄올 중독으로 목숨을 잃거나 의식‧시력을 상실한 사실을 밝혔다.

▲반올림과 노동건강연대, 국제유해물질추방네트워크(IPEN) 등 16개 단체는 29일 서울 강남 삼성전자 본사 앞에서 '삼성전자 베트남 공장 협력업체 메탄올 중독 사망 사고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반올림과 노동건강연대, 국제유해물질추방네트워크(IPEN) 등 16개 단체는 29일 서울 강남 삼성전자 본사 앞에서 '삼성전자 베트남 공장 협력업체 메탄올 중독 사망 사고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최근 베트남 북부의 한 삼성 휴대폰 제조 공장에서 총 37명의 노동자가 메탄올 중독 판정을 받았다. 이 중 40대 여성 노동자 응우옌 T. H씨는 지난달 29일 시력을 상실한 뒤 혼수상태에 빠졌고 지난 2일 숨졌다. 해당 공장에선 지난달 말부터 금속 절단기를 식히는 용도(냉각)로 메탄올을 썼다. 이 사실은 베트남 현지 언론의 보도로 처음 알려졌다.

반올림에 따르면 피해 노동자들은 하청업체 ‘성우’의 사내하청 노동자들이었다. 성우와 2차하청 HS테크 모두 한국인이 사장인 기업으로 베트남에 공장을 두고 있다.

▲베트남 현지 언론 'Tuoi tre news' 보도 갈무리
▲베트남 현지 언론 'Tuoi tre news' 보도 갈무리

단체들은 “메탄올 중독사고는 하청업체의 메탄올 사용을 잘 통제하고 있다는 삼성 공언이 얼마나 공허한지 잘 보여준다”며 “위험의 외주화는 느슨한 안전보건규제를 찾아 덜 통제되는 곳으로 위험을 옮기는 것도 포함한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하청업체가 한국이 아니라 베트남에 있었다는 점만 빼면 너무나 똑같은 사고”라고 했다. 2016년 한국에서 6명의 20~30대 노동자가 메탄올 중독으로 시력을 잃었다. 이후 삼성은 거센 비판을 받은 뒤 2019년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발행해 삼성전자 전 사업장과 하청업체에서 메탄올을 세척, 탈지, 냉각 용도로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고 국제규범을 하청업체에도 준수토록 한다고 밝혔다.

기자회견 직후 가장 먼저 나온 보도는 삼성의 입장을 대변하는 보도였다. 뉴스1 <베트남 2차협력사 ‘가짜 에탄올’ 피해…삼성전자는 무슨 죄일까> 기사를 시작으로 “직접 관련 없는 업체” “삼성만 애먼 뭇매” “시민단체는 삼성 탓” 등 제목의 보도들이 나왔다. 보도들은 삼성의 “베트남 현지업체가 메탄올이 다량 함유된 가짜 에탄올을 협력업체에 납품하는 바람에 발생한 일”이라는 입장을 그대로 대변했다.

▲포털 뉴스페이지 '메탄올 삼성' 검색 결과
▲포털 뉴스페이지 '메탄올 삼성' 검색 결과

반올림은 이를 두고 “삼성이 자신의 책임이 있다는 것을 모를 리 없다”고 비판했다. 삼성이 ‘하청사에 위험관리를 확인토록 하는 것’을 책임이자 덕목으로 홍보해온 만큼 책임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들은 “국제규범은 원청의 공급망, 즉 구매나 하청업체 통한 생산의 안전보건 관리에 대한 삼성의 책임을 엄격하게 묻는다”라며 “허위납품이 사실이라고 해도 삼성이 책임을 피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이들은 “삼성의 선전과 달리 하청업체는 아무런 물질 안전 검증을 하지 않았다. 피해가 발생한 뒤에도 회사는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고 했다. 이상수 반올림 활동가는 “하청사엔 환기 등 기초 안전보건관리도 없었다. 새 냉각용 알콜을 들여오면서 검증도 하지 않았다. 메탄올을 냉각 용도로 사용해 노동자의 얼굴과 몸에 마구 튀었다”며 “즉시 다수의 피해자가 발생했지만 회사는 아무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피해자 가족이 알콜을 독극물 관리소에 보낸 뒤에야 문제가 밝혀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뉴스타파 ‘글로벌 삼성의 위험한 공장④ 이전된 위험’ 캡쳐
▲뉴스타파 ‘글로벌 삼성의 위험한 공장④ 이전된 위험’ 캡쳐

반올림은 “이번 사건은 예외적인 사건이 아니다. 메탄올이 신경독성 물질이라 피해가 짧은 기간 분명하게 드러났을 뿐”이라며 “뉴스타파 보도는 삼성전자 하청사에서 메탄올이 위험하게 사용되는 현실을 드러낸다”고 밝혔다. 뉴스타파는 최근 삼성이 문제 공정을 외주화해 위험작업이 베트남 현지 하청사를 통해 지속되며, 불과 2년 전까지 공식 자료에서 세척 시 메탄올을 사용한 사실이 확인된다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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