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투데이 법조기자 출신 김만배씨가 지난 1월9일 서울 서초동 중앙지검으로 출석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머니투데이 법조기자 출신 김만배씨가 지난 1월9일 서울 서초동 중앙지검으로 출석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김만배씨 추가기소 관련 지면기사 제목들. 그가 법조팀장이었다는 설명은 찾기 어렵다.
▲김만배씨 추가기소 관련 지면기사 제목들. 그가 법조팀장이었다는 설명은 찾기 어렵다.

지난 8일 검찰이 화천대유자산관리 대주주 김만배씨를 범죄수익은닉규제법 위반 등 혐의로 추가 기소했다는 기사가 쏟아졌다. 2004년부터 2019년까지 머니투데이 법조팀장으로만 15년 있었지만 대다수 기사에는 그의 ‘법조기자’ 이력이 등장하지 않는다. 김만배 사태와 관련해 한국기자협회는 “무겁게 반성합니다”라는 제목의 성명을 냈지만, 정작 김씨가 몸담았던 서초동 법조기자단에선 어떠한 입장도 나오지 않았다. 법조기자들에 따르면 기자단에서 제대로 논의를 진행한 적도 없다. 

지금껏 김만배와 금전거래 등으로 연결된 사실이 드러난 기자 가운데 8명은 법조팀장 출신이다. 소속도 YTN, 한겨레, 중앙일보, 한국일보, 채널A, 조선일보, 서울경제, 뉴스1 등 다양하다. 이들은 대장동 사업에 참여하거나, 수억 원의 수상한 돈거래를 하거나, 화천대유에 임직원으로 가거나, 고가의 선물을 받았다. 김씨와 9억 원 돈 거래 사실이 드러나 해고된 전직 한겨레 법조팀장 석진환씨는 한겨레 진상보고서에서 “1년에 두어 차례 골프를 쳤고 비용은 대체로 김만배가 부담했다”고 말했다. 

최근 발행한 한겨레21 1453호 커버스토리는 <펜의 민낯>이다. 한겨레21은 “김만배씨가 활동해온 ‘토양’은 법조기자단이었다. 돈거래를 한 기자들은 모두 법조팀장으로 있으면서 김씨와 친밀한 관계를 맺었다”며 전‧현직 법조기자 22명을 취재하며 법조기자단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보도했다. KBS 시사프로그램 <시사직격>도 ‘김만배와 법조기자단’을 주제로 취재 중이다. 이처럼 언론계가 김만배 사건 이후 법조기자단에 주목하는 이유는 김씨의 대장동 개발 사업과 기자단과의 연관 가능성 때문이다. 

‘정영학 녹취록’에 따르면 김만배씨에게 기자들은 ‘관리 대상’이었다. 2020년 7월29일 정영학 회계사는 “형님, 맨날 기자들 먹여 살리신다면서요”라며 김씨에게 상품권을 건네는데, 김씨는 “아이, 걔네(기자)들은 현찰이 필요해”라고 답한다. 그는 “걔네들한테 카톡으로 차용증을 받어. 그런 다음 2억씩 주고. 응? 그래서 차용증 무지 많아, 여기. 분양받아준 것도 있어. 아파트. 서울에”라는 대목도 나온다. 그해 3월24일 김씨는 “비용 좀 늘면 어때…회사에다 줄 필요 없어. 기자한테 주면 돼”라고도 말한다. 

▲정영학 녹취록의 일부. ⓒ뉴스타파
▲정영학 녹취록의 일부. ⓒ뉴스타파

모두 대장동 사업의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기자들에게 금품을 제공하고 있다는 취지로 읽히는 대목이다. 종합일간지 법조 출입 경력의 한 중견 기자는 “법조가 끝나면 대부분 정치부로 간다. 석진환도 법조팀장 이후 국회반장을 했다. 법조 인맥만 관리하면 골프 치며 정치권 흐름까지 알 수 있다. 김만배로서는 법조 기자 관리로 일석이조 효과를 거뒀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김만배는 ‘내가 기사를 막고 있다’며 대장동 사업에서 자신의 이권을 지킬 알리바이로 법조팀장 지위를 활용했다. 내가 기자들 잘 관리하고 있으니 (관리 비용을) 각출하라며 동업자들에게 자신의 위세를 과시한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2020년 3월24일 김씨는 정영학씨에게 “너 완전히 지금 운이 좋은 거야. 수사 안 받지, 언론 안 타지. 비용 좀 늘면 어때”라고 말한다. 김만배에게 법조기자는 권력이었다. 

법조기자단은 검찰 수사 정보의 길목이다. 이곳에선 어떤 수사 기사가 나갈지 미리 알 수 있다. 형사사건에 대한 정보 접근성이 폐쇄적인 만큼, 그 안에서만 알 수 있는 정보는 돈이고 힘이다. 김만배 돈거래 사건 관련 한겨레 진상조사위원회에서 조사위원을 맡았던 심영섭 경희사이버대 미디어영상홍보학과 겸임교수는 “김만배만 과연 그렇게 살았겠나. 제2, 제3의 김만배가 없다고 보장할 수 없다”며 “현 상황에선 다른 기자도 김만배처럼 할 수 있다는 게 문제”라고 우려했다.

심영섭 겸임교수는 “김만배는 기사는 쓰지 않고 서초동을 연결해주는 거간꾼 역할을 하며 법조기자로서 얻은 정보를 사익을 위해 악용했다. 배타적인 기자단 문화가 존재하는 한 정보독점에 따르는 문제는 발생할 것”이라며 “법조기자로서 취재 정보를 기사에 쓰지 않고 자기 장사에 쓰는 상황에선 다른 기자들이 (기자단에) 들어오는 것을 막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지금껏 다른 기자단에 비해 높은 ‘법조기자단 진입장벽’은 ‘사이비 기자’의 진입을 막기 위함이라는 게 법조기자들의 주요 논리였다. 하지만 김만배 사태로 이 같은 논리는 흔들리게 됐다. 

▲디자인=미디어오늘 이우림.
▲디자인=미디어오늘 이우림.

법조기자들은 돈을 받고, 골프접대를 받고, 명품 신발을 받고 밥과 술을 얻어먹으며 김씨에게 무엇을 주었을까. 어떤 수사 정보나 기사의 방향, 혹은 특정 사안에 대한 비보도였을 수 있다. 그래서 이 사태는 ‘기자 김만배’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심영섭 겸임교수는 “이 문제는 기자단 해체로 해결할 수 없다. 폐쇄적인 정보공유가 문제의 본질”이라고 했다. 학계와 언론계는 검찰의 정보 공개 시스템 구축을 지속적으로 주장해왔다. 언론계가 김만배 사태에 제대로 대응하려면 동료 기자의 일탈에 대해 반성하는 모습을 넘어 검사의 말 한마디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법조 취재 구조부터 근본적으로 달라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