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여의도 KBS 본관. ⓒKBS
▲서울 여의도 KBS 본관. ⓒKBS

지난 9일 대통령실이 ‘국민제안’ 코너를 통해 ‘TV수신료 전기요금 분리 징수’ 여론 수렴 절차에 나서자 보수신문이 앞장서서 분리 징수 여론을 만들고 있다. 정치권력의 정점에 있는 대통령실에서 공영방송 재원을 직접적으로 흔드는 상황에 대한 우려는 찾기 힘들다. 

중앙일보는 10일 대통령실의 움직임을 “수신료 개편의 신호탄”으로 관측하며 “윤석열 대통령이 ‘공영방송을 보지도 않는 국민까지 수신료를 내는 것이 맞느냐’는 생각을 갖고 있다”는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 발언을 보도했다. 

조선일보는 같은 날 “대통령실이 수신료 분리 징수 공론화에 나선 것은 KBS가 공영방송인데도 정치적 편파성 시비가 끊이지 않는 상황을 염두에 둔 것 같다는 해석이 나온다”면서 “KBS 수신료 징수방식은 시청자 선택권을 무시하는 편법”이라는 한덕수 국무총리의 지난해 7월 국회 대정부질문 답변까지 기사에 담았다. 이어 “KBS에 대한 견제 수단으로 국민에게 수신료를 거부할 권리를 돌려줘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고 보도했다.

문화일보는 같은 날 사설에서 “공영방송 자체가 이젠 시대착오다. 수신료는 폐지하는 게 옳다”고 주장하며 “KBS를 시청하지 않는데도, TV 보유 사실만으로 강제징수는 ‘국민착취’”라며 “전기요금과 통합 징수는 어불성설”이라고 주장했다.

▲KBS 수신료 관련 3월10일~11일 일간신문 사설 제목. 
▲KBS 수신료 관련 3월10일~11일 일간신문 사설 제목. 

동아일보는 11일 사설에서 “IPTV 같은 유료 플랫폼 이용자들에게 수신료까지 부과하는 건 이중 부담”이라며 “불공정 방송에 책임을 묻고 방만 경영을 견제하기 위해서라도 시청자에게 수신료 납부 선택권을 돌려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나아가 “(KBS는) 안정적인 수신료 징수 시스템을 갖춰놓고 광고 수입은 별도로 챙긴다”며 “이번 기회에 수신료와 광고료에 이중 의존하는 기형적 재원 구조도 손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매일경제도 같은 날 사설에서 “넷플릭스 등 OTT를 이용하고 스마트폰으로 영상을 보는 상황에서 일괄 징수방식은 시대착오적”이라고 주장한 뒤 “2021년 7월부터 KBS2 중간광고까지 허용된 상황에서 수신료 일괄 징수를 고집하는 데 대한 반발 여론도 크다”고 주장했다. 이 신문은 “KBS를 보지 않는 이들에게까지 세금처럼 수신료를 거둬가는 것은 불합리하다”며 “전기요금과 분리 징수를 통해 시청자 선택권을 반드시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경제는 같은 날 논설위원 칼럼을 통해 “TV 채널이 다양해졌고, 시청자 선택권이 넓어졌는데도 KBS는 변한 게 별로 없다. 정치적 편향성도 여전하다”며 “‘수신료를 흔들어 방송을 길들이려고 한다’고 반발하기에 앞서 자신들의 공정성부터 돌아봐야 하지 않겠나”라고 적었다.

이처럼 보수신문 지면에선 대통령실이 주도하는 수신료 분리 징수 움직임에 대해 찬성하는 내용이 지배적이다. 그나마 국민일보가 11일 논설위원 칼럼에서 “분리 징수로 바뀌면 납부하지 않는 시청자가 많아질 게 뻔하다. 전체 재원의 절반가량을 수신료에 의존하는 KBS에는 치명타”라고 전망한 뒤 “영국, 프랑스에서 수신료 폐지 움직임이 있지만 예산 지원 등 대안을 전제로 추진되고 있다. 재원 대책은 빠진 채 징수방식 개선 공론화에 착수한 대통령실의 의도가 궁금할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윤석열 대통령. ⓒ대통령실
▲윤석열 대통령. ⓒ대통령실

경향신문은 11일 논설위원 칼럼에서 “정부 지원금이나 대기업 광고 수입에 의존하면 공영방송의 공정성과 중립성을 지키기 어려우므로 안정적으로 수신료를 걷는 시스템이 필요하다”며 수신료의 정당성을 설명한 뒤 “(통합 징수는) 충분히 논의할 만한 주제지만 한편으로는 뜬금없다. 공영방송 길들이기 차원에서 벌이는 일이라면 역풍을 각오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앞서 국민의힘은 문재인정부 시절 임명된 김의철 KBS사장의 사퇴를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으며, 감사원은 지난해 9월부터 3월 현재까지 6개월 넘게 KBS 감사를 진행하고 있다. 

전국언론노동조합은 10일 성명에서 “공영방송 같은 공공서비스는 누구나 필요할 때 누릴 수 있는 기본권의 보장이다. 입시가 아닌 인격 고양에 필요한 교육을 받을 권리, 언제 닥칠지 모를 재난에 대비할 정보 획득의 권리, 불평등한 처지에 놓인 소수자의 목소리를 들을 연대의 권리는 소비자의 권리로 좁혀질 수 없다”며 “수신료 문제는 정치적 사안이 아니라 사회적 논의를 거쳐 낡은 방송법과 제도를 개선하며 풀어야 할 과제”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영방송을 보지 않는 사람은 수신료를 내지 않아도 된다는 (윤 대통령) 발상은 TBS와 마찬가지로 재원을 통제함으로써 공영방송의 공적 기능 확대를 틀어막고 정치적 유불리라는 모호한 잣대로 공영방송을 정쟁의 장으로 끌어들이려는 선동”이라고 비판했다. 

앞서 2021년 5월 KBS이사회 의뢰로 수신료 공론화위원회가 숙의 토론을 거친 국민참여단 209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선 91.9%가 ‘공영방송이 필요하다’고 응답했으며, 79.9%가 수신료 인상에 찬성했다. ‘KBS가 공영방송 책무 수행을 잘못하고 있다’고 부정 평가한 응답자의 68.4%도 수신료 인상에 찬성했다. 독일에선 TV가 없어도, 외국인이어도 수신료를 낸다. 사회계약 관점에서 공영방송을 공공 인프라로 바라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사회에선 공영방송이라는 공공 인프라와 관련된 논의가 부족하다. 당장 언론부터 이 같은 논의의 공론장 구실을 못 하고 있다.

여야 합의제 기구인 방송통신위원회는 2021년 12월 “수신료 결정 절차 구성에 있어 정치적 영향력을 최소화하고, 책임 있게 결정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며 수신료위원회 설치를 주문했다. 수신료위원회는 문재인 정부 공약이자 윤석열 정부 공약이었다. 수신료 분리 징수 논의에 앞서 수신료위원회 설치를 통해 42년째 ‘2500원’인 수신료의 적정성을 논의하고, 국회는 법 개정을 통해 공영방송의 책무를 명확히 규정하는 게 우선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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