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실이 공영방송 수신료에 대한 분리징수 방안을 공론화하자 이를 언론탄압으로 규정하는 언론계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전국언론노동조합은 13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인근의 전쟁기념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수신료 분리징수보다 공영방송의 정치적 독립이 우선”이라고 밝혔다.

앞서 대통령실은 9일 국민제안 홈페이지를 통해 한 달간 ‘TV 수신료 징수방식(TV 수신료와 전기요금 통합 징수) 개선’ 의견을 듣겠다고 밝혔다. 방송법상 TV수상기를 소지한 사람에게 일률적으로 부과하는 월 2500원의 수신료를 한국전력이 전기요금과 함께 징수하는 방식이 적절한지 의견을 들려달라는 내용이다. 이날 중앙일보는 “윤(석열) 대통령이 ‘공영방송을 보지도 않는 국민까지 수신료를 내는 것이 맞느냐’는 생각을 갖고 있다”는 대통령실 관계자 발언을 전하면서, 이번 사안을 수신료 개편의 신호탄으로 관측했다.

▲대통령실 국민제안 홈페이지 갈무리
▲대통령실 국민제안 홈페이지 갈무리

윤창현 언론노조 위원장은 기자회견을 통해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여러 차례 대통령실 앞에서 회견을 열었다. 대부분 언론 자유 훼손과 직접 연관된 일들이었고 권력의 언론장악 시도에 관한 일들이었다”며 “이제 시도에 그치지 않고 구체적인 행동이 시작된 것 같다. ‘공영방송을 보지도 않는 사람들한테 굳이 수신료를 징수해야 되냐’는 말이 대통령 입에서 나왔다고 한다”고 말했다.

윤 위원장은 “똑같은 논리로 이야기를 해보겠다. 윤석열 정부 하는 짓이 못마땅해서 세금 10원 가는 게 아까워 죽겠는데 그럼 우리 세금 안 내도 되는 건가. 윤석열 정부의 굴욕 외교, 반노동정책, 경제 파탄, 마음에 드는 것이 하나도 없는데 우리는 그게 싫어서 세금 안 내도 되는 것인가”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수신료 분리 징수는 윤석열 정권 앞에 고개 숙이지 않으면 밥줄을 끊겠다며 TBS 지원 폐지 조례안을 통과시키고 YTN을 시장에 집어던져 찢어발기려 하는 것과 같은 방송 통제의 일환”이라고 주장했다.

▲3월13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인근의 전쟁기념관 앞에서 전국언론노동조합이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노지민 기자
▲3월13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인근의 전쟁기념관 앞에서 전국언론노동조합이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노지민 기자

강성원 언론노조 KBS본부장은 “지금의 수신료 분리징수는 아래로부터의 회초리인가, 위로부터의 탄압인가. 권력의 최정점에 있는 대통령실이 주도가 되어 일사불란하게 진행되는 국민제안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해 길들이려 하는 것에 다름 아니지 않은가”라면서 “정권이 바뀔 때마다 수신료로 목줄을 죄고 마음에 드는 지배구조를 만들어 내고 공영방송을 길들이는 그 역사의 악순환을 계속 반복하겠다는 뜻인가”라고 비판했다.

이어 “용산 주변에서는 최근 KBS의 정순신(전 국가수사본부장 내정자) 아들 학교폭력 특종 보도가 회자되고 있다고 한다. KBS가 의도적으로 그 시기를 조절했다는 말도 안 되는 유언비어가 돌고 있다고 한다”며 “혹시 그런 것들이 정권의 눈엣가시처럼 보여서 수신료 분리징수라는 카드를 꺼내는 건 아닌가”라는 의구심도 제기했다.

박유준 EBS지부장은 “그동안 공영방송사로서 역할을 수행하는 데 있어 게을리 했던 저희 스스로를 반성한다. 공적 책무를 다하기 위해 새로운 자기 성찰이 필요한 시점임은 분명하다”면서도 “지금 상황에서의 수신료 분리징수 논의는 명백한 공영방송 길들이기이자 언론탄압으로 간주한다”고 했다. “올바른 권력일수록 감시와 견제에 고마워해야 한다. 본인들의 뜻에 맞지 않는다고 하여 언론을 길들이고 탄압하려는 시도를 더 이상 눈 뜨고 볼 수 없다”는 지적이다.

박 지부장은 “언론 그리고 방송은 무한 경쟁 체제로 내버려 두면 선정성과 편파성에 의해서 무너져 내릴 수밖에 없는 영역”이라며 “공영방송 TV수신료란 자본과 권력에 휘둘리지 않고 언론 본연의 공적 책무를 다할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다. 정권의 입맛에 맞지 않다고 줬다 빼앗았다 할 수 있는 기부금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3월13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인근의 전쟁기념관 앞에서 전국언론노동조합이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노지민 기자
▲3월13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인근의 전쟁기념관 앞에서 전국언론노동조합이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노지민 기자

언론노조는 기자회견문에서 “대통령실과 국민의힘, 그리고 민주당에 강력히 요구한다. 지금이 자신의 책임은 다하지 않고 ‘혈세’를 운운하며 수신료를 들먹일 시간인가”라며 “수십년 동안 이어진 공영방송의 정치적 구속과 압력에서 벗어나게 해야 할 책임은 당신들에게 있다. 이 책임의 시작은 바로 국회에서 몇 달째 체류중인 공영방송 정치 독립 개선안이다. 국민의 ‘혈세’로 세비를 받는 국회의원이 해야 할 일을 언제까지 미룰 것인가”라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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