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리지널 '나는 신이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나는 신이다'

지난달 넷플릭스 시리즈 <피지컬:100>의 성공에 이어 곧바로 새로운 기록이 터졌다. 플릭스패트롤이 공개한 넷플릭스 순위에 따르면 <나는 신이다:신이 배신한 사람들>은 공개 이틀 만에 한국 차트에서 TV시리즈 부문 1위를 차지했다. <일타 스캔들>, <철인왕후>, <더 글로리> 등 10위 권 내 다른 작품들이 모두 드라마‧예능 시리즈라는 것을 보더라도 다큐멘터리로서의 선전은 이례적이다. 

지난 3일 공개된 <나는 신이다>는 사이비 종교단체 JMS 정명석, 오대양 사건의 박순자와 유병언, 아가동산의 김기순, 만민중앙교회 이재록을 둘러싼 기록을 재조명한 8부작 다큐멘터리 시리즈로 MBC <PD수첩> 조성현 PD가 연출을 맡고 MBC 시사교양본부 인력이 제작했다. 시청자들의 눈을 사로잡은 것은 단연 MBC의 취재 자산이었다. 

사실 이 시리즈를 구성한 네 가지 사건들은 지금까지 다양한 언론을 통해 이미 여러 차례 보도된 일들이다. 그만큼 비슷한 자료들이 지금까지 여러 번 시청자들에게 노출되었는데, 그럼에도 이번 시리즈가 새로운 파장을 일으킨 것은 심의 등 각종 규제로 인해 공개하지 못한 미방송분 자료들을 보여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부분은 무엇보다 MBC 내부 구성원들의 간지러움을 시원하게 긁었다. MBC가 가진 물적 자산 중 숫자로 환산할 수 없는 가장 가치 있는 것이 바로 지난 60여 년간 쌓인 취재 자료다. 과거 아날로그적 자료들까지 모두 디지털화해 아카이빙 해두었는데, 이것으로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 수 있다는 아이디어가 많았지만 그동안은 방송심의 규정 등 공중파 언론사로서 넘지 말아야 할 선들이 거미줄처럼 촘촘했기 때문에 불가능했다. 이런 굳혀진 프레임을 <나는 신이다>가 정면으로 깨부수며 선구적 사례를 만든 것이다. 

이번 성공은 <피지컬:100>과는 또 다른 차원의 긍정적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언론’으로서의 기능을 강조한 것이다. 이번 시리즈 1화에서 3화에 걸쳐 파렴치한 성범죄로 공분을 사고 있는 JMS의 정명석은 신도 성폭행 등으로 징역 10년을 선고받고 2018년 2월 출소했다가, 다시 신도를 성폭행해 지난해 10월 또 구속 기소 됐는데, 이번 시리즈 공개 이후 이원석 검찰총장이 지난 6일 정씨의 사건에 대해 “엄정한 형벌이 선고되도록 최선을 다하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시간이 흐르며 점점 들리지 않게 된 목소리에 마이크를 주는 일을 한 것이다. 

비록 채널 11번, 공중파 MBC를 통한 고발은 아니었지만 시대의 화면이자 마이크를 자처하는 가장 큰 스트림(stream)을 통해 언론이 해야 할 일을 해냈다. 예능‧다큐 분야를 가리지 않고, 또 공중파와 콘텐츠 그룹으로서의 엇갈리는 정체성을 안은 채MBC 사람들은 일하고 있다. 심지어 잘하고 있다. 이런 성공은 차곡차곡 쌓여, 새로운 시대 새로운 비전과 먹거리를 만들 것이다. 

하지만 <피지컬:100>에 이어 <나는 신이다>까지, 연타석 장타를 때리며 달아오른 분위기 가운데 가장 큰 걸림돌은 다름 아닌 MBC의 리더십이다. <피지컬:100>에서 <나는 신이다>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MBC는 3년마다 찾아오는 리더십 교체기를 맞았다. 새로운 사장이 선임 됐지만 취임 2주가 되어가도록 취임식조차 하지 못했다. 새롭게 임명될 것으로 보였던 각 부서 보직들을 비롯해, 회사의 크고 작은 의사결정이 계속해서 미뤄지고 있다. 

열심히 공부해 1등 성적표를 들고 집에 왔는데 부부 싸움 틈에 자랑도 못 하고 가방 안에 성적표를 도로 넣어 버리는 아이의 모습이 그려진다. 구성원에게는 역량과 열정이 있는데, 태생적 환경이 가혹하다. 변화하는 미디어 환경에서 MBC가 존속하려면, MBC 명찰을 달지 않고도 시청자에게 각인 되는 브랜딩이 필요하다고 재차 강조한다. 그래야 연이은 성공을 그저 한 때의 영광이 아닌 영구적 자산으로 축적할 수 있다. 지속적이고 일관된 비전을 가진 리더십이 필수적이란 말이다. MBC의 리더십과 그를 결정하는 MBC의 최대 주주 방송문화진흥회에게 이번 성공은 어떤 의미일까. 가방 안에 구겨 넣어둔 1등 성적표를 뒤늦게 찾아본 부모의, 저미는 심정이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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