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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피지컬 100'의 한 장면.

매주 화요일이 기다려진다. 운동 좀 한다하는 사람들 100명을 모아 ‘오징어 게임’처럼 상금을 두고 경쟁하는 넷플릭스 예능 콘텐츠, <피지컬 100> 다음 화가 공개되는 날이기 때문이다. <피지컬 100>은 공개 직후 뜨거운 관심을 모았는데, 그 관심이 국내뿐 아니라 해외까지 이어지며 더 주목을 받았다.  

2월 9일 기준 온라인 콘텐츠 서비스 순위 집계 사이트 플릭스패트롤 등에 따르면 <피지컬:100>은 넷플릭스 TV쇼 부문에서 이틀 연속 1위를 차지했다. 한국 예능이 넷플릭스 글로벌 순위 정상에 오른 건 처음이다. 총 9회 분량 중 현재(2/7)까지 5회가 공개됐으니 회를 거듭하며 쇼가 정점을 달릴수록 더욱 큰 화제를 몰 것으로 기대된다. 개인적으로 재밌게 본 프로그램이 세계적으로도 흥행을 달린다니 ‘물건’을 알아봤다는 알 수 없는 뿌듯함에, MBC 제작이라니 묘한 자부심마저 들었다.

하지만 <피지컬 100>의 흥행이 MBC 내부에서 달가운 평가만을 받는 것은 아니다. <피지컬 100>은 연출을 맡은 PD부터, 목소리 출연의 아나운서까지 MBC 인력이 투입된 MBC의 제작물이지만, MBC TV 채널을 통한 별도의 편성은 받지 않고 넷플릭스에 바로 콘텐츠를 제공한다. 이런 구조는 ‘턴키(Turn key)’ 방식과 유사한데, 넷플릭스로부터 제작비를 포함한 콘텐츠 공급 대가를 받고 MBC가 일체의 권한을 통째로 넘기는 방식이다. 때문에, 예상보다 좋은 흥행 성적을 거뒀더라도, 기존에 계약한 소정의 계약금 이상의 수익에 대해 정작 제작사인 MBC는 아무 권리가 없다. 화제를 몰고, 흥행을 하면 할수록 이상하게 손해 보는 것 같다는 내부 평가가 여기에서 온다. 

그런데 <피지컬 100>의 흥행을 두고 말이 나오는 이유는 수익 때문만은 아니다. 우선, 채널 주도권을 빼앗겼다는 거부 반응이다. MBC가 만들고, MBC 자사 채널로 방영하는 방식으로 성장해온 MBC를 만들어 온 기존 인력들에게는 MBC가 갑자기 ‘외주제작사’가 된 듯한 인식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또 하나는, 인력 유출에 대한 고민이다. 방송 인프라를 독점하고 있었던 과거와 달리, 이렇게 주목받는 PD가 탄생하면 번뜩 드는 걱정이 바로 인력 유출 문제다. 불과 몇 해 전에도, 카카오TV의 등장과 함께 MBC 예능을 이끌던 젊은 PD들이 회사를 떠났다.
 
하지만 이런 문제의식이 MBC 내부에 진동을 주는 것이 나는 언짢지만은 않다. 고민할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새로운 길은 필시 이런 과정을 통해야만 나온다. 박성제 사장은 지난해 창사 기념일에, 우리는 이제 단지 ‘지상파 채널’이 아니라, 지상파 채널을 가진 ‘콘텐츠 그룹’이라고 회사 비전을 정의했다. 이런 변화는 그저 선언에 불과하지 않고, 현업에서 제작 환경 변화로 이어지고 있다. 

기존 제작 방식은 예능본부에 입사해 조연출부터 차근히 입봉 과정을 거친 PD들이 예능 본부장 지휘 아래 때가 되면 신규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것으로, 시청자들에게도 익숙한 과정이다. 이를테면 KBS 간판 예능 <1박2일>의 유호진PD가 조연출 시절부터 현장에서 현업을 익히다가 메인 연출PD가 되었다거나, <마이리틀 텔레비전>의 모르모트 권해봄 PD가 조연출로 일했다는 건 시청자들에게도 친숙하다. 

지난 몇 년 동안 MBC 내부에서는 이런 기존의 틀을 말랑하게 하는 작업들이 이루어져 왔다. 예능, 스포츠, 시사교양 등 부문에 구애받지 않고, 새로운 미디어 환경에 맞서 자신의 콘텐츠를 만들어 보고자 하는 PD들로 이루어진 새 조직이 운영 중이다. ‘예능 본부’, ‘시사교양 본부’, ‘스포츠국’ 이런 명찰을 다 뗀 ‘콘텐츠 조직’이다. PD 수첩 등을 연출한 시사교양PD였던 장호기 PD가 갑자기 신개념 예능을 연출할 수 있었던 배경이다. 

인력 유출에 대한 시각도 유연해져야 한다. 스타 PD가 빠져나간 자리는 분명 살점을 떼어내는 것 같은 아픔이기도 하지만, 새로운 스타가 뿌리를 내릴 새집이 되기도 한다. MBC 역사를 보더라도, 대체 불가능해 보였던 자리를 누군가 등장해 메워왔다. 그렇게 우리나라 콘텐츠 제작의 인큐베이팅 역할을 해내는 것도 MBC가 새롭게 거머쥐어야 할 지위다. 

<피지컬 100>의 성공에 MBC의 이름이 전면에 드러날 수 있다면 더없이 좋았을 테지만 앞으로 MBC가 찍힌 명찰을 내밀고 시청자를 만날 기회는 점점 줄어들 것이다. 때문에, MBC 콘텐츠만이 갖는 어떤 일체감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가장 큰 숙제다. 그래야 ‘슈퍼갑’이 된 OTT 플랫폼에 대항해 양질의 콘텐츠로 시청자를 만날 수 있다. 기존 채널이 아닌 새로운 환경에서도 인정받는 콘텐츠를 만들어 내는 경험은 그저 ‘우리는 아직 죽지 않았다’는 분위기를 형성하는 것 이상이다. 언제라도 질 좋은 콘텐츠를 생산해 낼 수 있는 동력이자, 시청자들 눈에 ‘MBC’ 로고가 보이지 않아도 MBC를 떠올리는 강력한 브랜딩이다. 

10년 전에는 유튜브가, 또 지금은 넷플릭스를 비롯한 OTT와 셀 수 없는 형태의 미디어가 폭포처럼 쏟아진다. 채널 독점력은 잃었지만, 그 어느 때보다 시청자들과 마주할 접점은 늘었다. 앞으로도 플랫폼은 예측하지 못할 방식으로 진화할 것이다. 시청자와 맞닿는 방식에 불문하고 콘텐츠 하나, 맨몸으로 경쟁해야 할 ‘뉴노멀’을 마주하며 MBC는 어떤 값진 성공을 맛봤다. 이 성공의 경험을 내재화할 수 있을까. MBC에 모처럼 ‘새로운’ 기대가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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