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의 주요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

설정은 확실히 아찔하다. 술에 취해 실수로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 내 정보는 물론 가족과 친구 관계까지 탈탈 털려 예상치 못한 범죄에 노출된다. 스마트폰을 주운 의심스러운 남자 준영(임시완)이 사건의 시발점이다. 그는 주인공 나미(천우희)에게 걸려 온 전화에 지능적인 방식으로 대처해 폰 비밀번호를 알아내고, 주운 폰을 자기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는 ‘복사폰’까지 만든 뒤에야 돌려준다.

넷플릭스로 17일 공개된 신작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는 스마트폰 없이는 일상생활이 불가능한 요즘 사람들이 도저히 공감하지 않기 어려운 현실적인 설정을 무기로 삼은 스릴러물이다. ‘폰삶일체’를 보여주는 5분여 간의 리드미컬한 도입부는 작품의 전제를 확실하게 세운다. 폰 알람으로 눈을 뜨고, GPS 기반 앱으로 날씨를 체크하고, 교통카드 기능으로 집과 회사를 오가고, 취향에 맞는 유튜브를 보거나 게임을 하는 동시에 지인과 카톡을 주고받고, 지문인증으로 물건값을 결제하고, 심지어는 내가 계약하게 될 집의 위치와 가격을 조회하기까지… 우리의 모든 삶이 스마트폰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말이다.

▲ 영화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 스틸컷.
▲ 영화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 스틸컷.

이 전제를 뒤집어보면, 스마트폰을 잃어버리는 순간 내 모든 민감 정보가 단숨에 타인에게 팔려나갈 수 있다는 이야기도 된다. 악의를 지닌 사람이 내 스마트폰을 쥐는 그때, 일상의 편리함을 담보하던 수단은 일상을 파괴하는 도구로 전락할지 모른다. 영화는 그 두려움을 영리하게 포착하면서 장르적 볼거리를 확보한다. 특히 범행 대상을 물색하는 의문의 남자 준영이 스마트폰에서 취득한 정보로 주인공 나미와 주변인을 이간질하고 사회적으로 고립시키는 과정이 그럴싸하게 묘사되는데, 그 수법이 신선하면서도 설득력 있어 마치 시사교양프로그램 ‘그것이 알고싶다’에 등장하는 치밀한 범죄 과정을 지켜보는 듯한 긴장감을 안긴다.

아쉬운 건 긴장감을 품고 매끄럽게 직진하던 영화가 중후반부부터 갈피를 잃고 헤맨다는 점이다. 스마트폰 소재 범죄스릴러물로서의 정체성을 끝까지 밀어붙이기보다는, 뒤늦게 수사물과 복수물 등 여러 장르의 재미를 두루 취해보려는 무리한 시도가 만듦새에 악영향을 미치는 모양새다.

▲ 영화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 포스터.
▲ 영화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 포스터.

내내 이렇다 할 역할을 보여주지 못하던 형사 지만(김희원)이 자기 아들을 범인으로 추정하고 나미 사건에 접근하는 대목부터 이야기는 다소 억지스러워진다는 인상을 준다. 부자간의 감정선을 이용한 기능적인 떡밥과 반전이 공개되면서 작품이 쌓아온 스릴은 손에 쥔 모래처럼 빠져나간다. 속수무책으로 당하던 천우희가 자신과 가족을 지키기 위해 범인을 응징하려 하는 지점부터는 드라마성 짙은 복수극의 형태도 띠는데, 그 패기에 비하면 범인과 벌이는 두뇌게임이 썩 치밀하지 못하다는 게 약점이다. 지나치게 평이한 가족애를 동력으로 삼고 통상적인 인과응보형 마무리로 끝맺는 등 관객에게 통쾌함을 줄 만한 요소도 거의 확보하지 못한다.

스마트폰을 떨어뜨리는 순간 충분히 나쁜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찝찝한 감정을 확실하게 끄집어낸다는 것만으로도 이 작품은 강점을 지녔다. 중후반부의 애매한 장르적, 감정적 혼재를 과감하게 포기하고 최초의 설정을 끝까지 밀어붙일 수 있는 마무리를 고민했다면 웰메이드 스릴러물로 더 많은 선택받았을지 모른다는 아쉬움이 짙게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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