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수 부산일보 사장은 나의 로비스트였다.”

60대인 조아무개씨는 지난 8일 미디어오늘에 16년 전 사건을 술회했다. 그가 어렵사리 꺼낸 이야기는 노무현 전 대통령 측근의 ‘1억 원 수수’ 사건이었다. 이 사건은 노무현 청와대 비서관이었던 ㄱ씨가 2007년 7월 예금보험공사의 자금 지원을 받게 해달라는 파랑새저축은행의 청탁을 받고 사례금으로 선거자금 명목의 현금 1억 원을 받았다는 내용이다.

5년 뒤인 2012년 부실 저축은행의 정·관계 로비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이 ㄱ씨를 체포하면서 사건이 세상에 알려졌다.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 위반(알선수재) 혐의로 구속 기소된 ㄱ씨는 그해 1·2심에서 징역 10월과 추징금 1억 원을 선고 받았다.

조씨는 당시 파랑새저축은행 1대 주주이자 회장으로 이 사건에서 ‘돈을 준 쪽’이었다. 그는 파랑새저축은행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부족했던 300여억 원을 예금보험공사로부터 지원 받기 위해 정부 부처나 금융감독기관의 도움이 필요했다. 

재판 결과에 비춰보면, 이 사건에서 ‘돈을 받은 쪽’도 ㄱ씨로 분명하다. 그렇다면 남는 것은 두 사람을 연결한 전달책. ‘1억 원 수수’ 사건 1심 판결문을 보면, “피고인(ㄱ씨)은 부산 남구 용호동 LG메트로시티아파트 부근 도로에서 조○○(조씨)의 지시를 받은 파랑새저축은행 감사 임○○로부터 청탁에 대한 사례금 명목으로 현금 1억 원을 수수”했다고 기록돼 있다. 

▲ 김진수 부산일보 사장. 사진=부산일보
▲ 김진수 부산일보 사장. 사진=부산일보

판결문이 다 담지 못한 이야기들

지난 15일 부산광역시 동래구 한 호텔에서 만난 조씨는 판결문에 한 사람이 빠졌다고 주장했다. “ㄱ씨와 나를 연결해준 것은 김진수 부산일보 사장이다. 진수는 1억 원의 전달책이었다.”

사실 김 사장이 파랑새저축은행 사건에 깊게 연루돼 있다는 의혹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전국언론노조 부산일보지부(지부장 김진성)는 2021년 9월 성명을 통해 “김 사장은 전직 비서관 ㄱ씨와 파랑새저축은행 회장을 연결시켜 준 장본인”이라며 “현직 언론인이 불법이 자행된 사건의 핵심 브로커였다는 게 말이 되는 일인가”라고 비판했다. 부산일보 노조에 제보한 이는 조씨가 아니다. 조씨는 “노조가 김진수 사장과 싸우고 있다는 이야기는 나중에 들었다”고 했다. 김진성 지부장도 조씨가 미디어오늘에 김 사장의 파랑새저축은행 연루 의혹을 제보했다고 하자 “조씨가 2년 전 투쟁에 힘을 실어줬다면 더 좋았을 것”이라며 제보 시점을 아쉬워했다. 사건 당사자인 조씨의 증언은 2년 전 노조 성명 신뢰도를 뒷받침한다.

조씨에 따르면, 1990년대 말에서 2000년대 초께 친분을 쌓게 된 조씨와 김 사장은 호형호제하는 사이로 가까워졌다. 조씨 눈에 김 사장은 싹수가 있던 우량주였다. 사업하는 입장에서 유력한 지역지 기자와의 관계는 가까울수록 나쁠 것이 없었다. 그렇다 보니 친동생 같았던 ‘김진수 기자’가 회사에서 잘나가는 것이 그에게도 챙겨볼 일 가운데 하나였다.

현장 기자들이 편집국장을 꿈꾸듯 김진수 기자도 편집국장을 바랐다. 부산일보 편집국장은 구성원 투표로 뽑는다. 조씨는 기자 선후배들에게 밥과 술이라도 사려면 돈이 필요할 테니, 김 사장에게 3년여 동안 S학원 법인카드를 제공했다고 주장했다. 조씨가 원장인 S학원은 부산 최고의 유명 학원으로 한때는 연 매출액이 450억 원에 달하기도 했다. S학원이 영업 정지된 인베스트저축은행을 인수하여 상호를 바꾼 것이 바로 파랑새저축은행이다.

현직 기자가 S학원 영업본부장 명함?

앞서 언급한 노조 성명에는 김 사장이 파랑새저축은행 주요 직책 명함을 갖고 다녔다는 내용이 다음과 같이 적시돼 있다. “김 사장은 단순한 연결 역할에만 그치지 않았다. 전직 비서관 ㄱ씨와 동향인 김 사장은 당시 파랑새저축은행 업무에도 깊숙이 관여했다는 것이다. 김 사장은 당시 판매국(현재 독자서비스국) 부장으로 재직하면서 파랑새저축은행의 주요 직책 명함을 가지고 다녔다는 증언이 있다. 어떻게 부산일보에 몸담고 있으면서 불법을 일삼는 저축은행의 직원으로 활동할 수가 있는가 말이다. 김 사장에게 언론인으로서 윤리는 안중에도 없었던 것이다.”(2021년 9월27일자 언론노조 부산일보지부 성명 中)

조씨는 김 사장이 파랑새저축은행이 아닌 S학원 영업본부장 명함을 갖고 로비 활동을 했다고 주장했다.

“2007년 즈음 부산일보는 구조조정 압박을 받고 있었고, 당시 진수는 조직에서 사실상 좌천돼 있었어요. 자기도 고민을 하더라고요. 자금 압박을 받던 파랑새저축은행 건이 잘 풀리면 아예 금융 쪽으로 넘어오겠다고 진지하게 생각했죠. 진수와 함께 ㄱ씨를 만나면서 일이 잘 풀리겠다 싶었어요. ㄱ씨가 금융감독원이나 감사원에 가보라는 식으로 오더를 주면 진수가 만나보고 오는 식으로 일이 진행됐고요. 아무래도 진수가 현직 기자이다 보니 불편함이 있더라고요. 진수가 먼저 ‘명함을 하나 파달라’고 해서 S학원 영업본부장 명함을 파줬습니다. 진수가 서울에 올라갈 땐 거액의 경비까지 받아갔는데 일이 잘 풀리지는 않았습니다. 진수가 일단 ㄱ씨는 출마해야 하는 정치인이니까 총알을 주자고 했고, 나도 그땐 돈이 들어올 줄 알았으니까 기대를 갖고 1억 원을 착수금으로 진수를 통해 전달한 거예요. 실제 좋은 결과가 나오면 그게 3억이든, 5억이든 더 줄 생각이었죠.”

ㄱ씨 1억 수수 사건 판결문을 보면, 재판부는 “피고인(ㄱ씨)과 조○○(조씨)의 만남 이후 곧 금융감독원은 감사원 지시에 따라 파랑새저축은행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고, 피고인은 금감원의 노○○ 부원장보와 조○○의 만남을 주선하기도 했는 바, 피고인이 실제 파랑새저축은행의 민원이 유리하게 처리되도록 감사원, 금감원 등에 영향력을 행사한 정황도 보인다”고 판시했다.

하지만 로비는 실패했다. ㄱ씨는 2012년 10월 상고를 취하해 징역 10월과 추징금 1억 원이 확정됐고, 조씨도 1000억원대 부실 대출을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1심에서 징역 3년형을 받고 법정 구속됐다가 대법원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이 확정됐다.

반면, 검찰 수사를 피한 김 사장은 2010년 사회부장으로, 2012년 편집국장으로 승승장구했다. 2019년에는 부산일보 사장에 임명됐다. ㄱ씨에게 김 사장을 소개시킨 전직 부산일보 기자 A씨가 금품 수수 사건으로 검찰과 법원에 불려 다녔던 것과 대조적이다. 김 사장은 자신을 대신해 조사 받은 A씨에게 “평생 모시겠다”고 발언한 것으로도 전해졌다.

“15년 전 사건, 지금 제기하는 이유 납득 안돼”

‘돈을 받은 쪽’인 ㄱ씨는 이 사건 성격 자체가 정치자금 수수가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17일 통화에서 “내가 관여하는 발달 장애 관련 사회복지단체가 있는데, (조씨 측이 좋은 일을 하고 싶으면) 그곳에 기금을 전달하라고 후원을 소개한 것”이라며 “그 사람(조씨)은 정치자금 성격으로 내게 돈을 줬다고 진술했지만 나는 그때 공직에 있었기 때문에 정치자금을 받을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고 받을 이유도 없었다. 단지 내가 돈을 받아 복지단체에 전달하겠다고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ㄱ씨는 김 사장에 대해 “김 사장 때문에 파랑새저축은행의 어려운 사정을 알게 된 것”이라며 “김 사장이 그분(조씨)을 소개하면서 몇 차례 만났고, 김 사장이 혹시 좋은 일이 있으면 같이 돕겠다고 하여 지역복지 단체를 소개했던 것”이라고 했다. ㄱ씨는 A씨를 통해 김 사장에게 이 사건 성격을 ‘정치자금 수수’가 아닌 ‘복지단체 후원금 전달’로 진술해달라고 요청하고자 했으나 제대로 메시지 전달이 안 된 것인지 아니면 김 사장 측에서 외면한 것인지 묵묵부답이었다고 술회했다. ㄱ씨는 “(조씨가) 저축은행을 불리한 조건으로 인수해 어려움이 있었다”며 “(파랑새 쪽에선) 금감원이 파랑새저축은행을 조사하게 해달라고 요구했는데, 그 주장이 충분히 근거가 있는 것 같아 그들에게 도움을 줬다. 자기들은 고맙다는 생각에서 사례하겠다고 한 것이었고 나는 그럴거면 차라리 사회복지단체에 후원하라고 했는데, 검찰에선 이를 정치자금으로 규정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미디어오늘은 15일 오후 부산 동구에 위치한 부산일보 5층 사장실을 찾아 김 사장 입장을 직접 듣고자 했으나 만날 수 없었다. 부산일보 사측 인사를 통해 파랑새저축은행 로비 의혹에 관한 입장을 듣고 싶다는 뜻을 전했으나 김 사장은 답이 없다. 김 사장은 2021년 9월 노조 성명에 다음과 같은 입장을 밝힌 적 있다. 

“노조가 어제 성명서를 통해 오래 전 파랑새저축은행 이야기를 갑자기 거론했다. 파랑새저축은행을 인수한 부산 지역 한 학원 원장은 평소 알고 지내는 지인이고, 전 비서관인 ㄱ씨는 고향 후배다. 서로 식사도 하고 만나는 사이였던 것은 맞다. 그러나 ㄱ씨 사건과 관련해 노조 주장은 사실에 근거하지 않는 부분이 있다. 먼저 수사기관의 수사를 받았거나 법원으로부터 소환 통보를 받은 적이 없다. 만약 이 사건에 내가 핵심고리 역할을 했거나 사건에 관여했다면 참고인 등 어떤 형태든 수사를 받거나 소환 통보를 받는 것이 상식이다. 파랑새저축은행 명함을 갖고 다녔다는 것도 어처구니 없는 주장이다. 노조가 기본적 사실관계 확인 없이 이런 식의 주장을 하는 것은 정도가 아니다. 내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것이다. 노조가 15년 전에 종결된 사건을 지금에서 거론하면서 의혹을 제기하는 이유에 대해 이해가 가지 않는다.”

▲ 부산 동구에 위치한 부산일보 사옥 모습. 사진=김도연 기자
▲ 부산 동구에 위치한 부산일보 사옥 모습. 사진=김도연 기자

침묵하던 조씨가 16년 전 사건을 입 밖으로 꺼낸 까닭은 무엇일까. 조씨는 “최근 김만배 사건을 보며 느낀 게 많다. 김 사장이 김만배보다 더 나쁘다고 봤다”며 “김진수는 기자 신분을 속이고 명함을 파서 대놓고 로비스트로 활동하지 않았나. 이런 사람이 부산을 대표하는 언론인으로 활동하는 건 아니다 싶었다”고 밝혔다. 검찰 수사와 구속 등으로 상황이 어려워지자 그에게 등을 돌린 김 사장에 대한 배신감도 커 보였다. 조씨는 1억 수수 사건 등 검찰 조사에서 김진수 이름 석 자를 부러 꺼내지 않았다고 했다. 친했고, 현직 기자였기 때문에, 그래도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에서였다.  

“이후 저축은행은 날라갔고, 도덕성이 중요한 학원 사업도 큰 타격을 입었죠. 코로나19가 덮치면서 사업은 더 어려워졌습니다. 진수는 생리적으로 ‘이 사람은 끝났다’고 느꼈을 거예요. 완전히 등을 돌려 버리대요. 난 그의 밑바닥까지 다 닦아줬는데 말이죠. 사람은요, 겪어봐야 압니다.”

ㄱ씨의 ‘1억 원 수수’ 사건은 16년 전 일이다. 조씨 주장이 사실이래도 김 사장에게 법적 책임을 묻기는 어렵다. 다만 검찰은 김 사장의 업무상 횡령과 청탁금지법 위반 혐의를 살펴보고 있다. 지역 시민단체와 부산일보 노조는 2021년 10월 김 사장이 지역 건설업체 대표 제의를 받고 사모펀드에 투자했고, 그 대가로 건설사에 관해 우호적 기사를 게재했다며 경찰에 김 사장을 고발했다. 광고비와 발전기금을 횡령한 의혹도 제기했다. 부산경찰청은 지난해 7월 김 사장을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김 사장은 “개인적 판단에 의한 투자이고, 영업 활동의 일환”이라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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