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통위가 팩트체크 활성화에 최선을 다하겠다.” 2020년 11월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이 팩트체크넷 출범식 축사를 통해 이같이 밝혔다. 문재인 정부 허위조작정보 대응 정책의 일환으로 탄생한 팩트체크넷이 출범 2년여 만에 해산 절차를 밟고 있다. ‘정부 주도 팩트체크’ 우려에 ‘불개입 원칙’을 강조했고 이를 지켰지만 ‘시민과 언론의 협업’이라는 취지에는 성과와 한계가 공존하는 상황이다.

연이은 예산 삭감에 ‘팩트체크넷’ 해산

팩트체크넷은 문재인 정부 허위조작정보 대응 정책의 일환으로 출범했다. 당초 문재인 정부는 허위조작정보 규제 정책을 추진했으나 우려가 제기되자 ‘팩트체크 활성화’에 방점을 찍는다. 방송기자연합회를 중심으로 방통위가 지원하는 민간 팩트체크 서비스를 제안했고 방통위는 이를 수용했다. 정부 주도 팩트체크 사업에 ‘독립성’ 우려가 제기되자 정부는 개입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강조했다. 이후 방통위 산하기관인 시청자미디어재단이 지원하는 비영리 재단법인 팩트체크넷 출범으로 이어졌다. 팩트체크넷은 한국기자협회, 방송기자연합회, 한국PD연합회와 사회적 협동조합 빠띠가 공동 출자했다.

▲ 팩트체크넷 서비스 갈무리
▲ 팩트체크넷 서비스 갈무리

팩트체크넷은 ‘시민 참여 팩트체크’를 핵심 사업으로 제시했다. 제휴를 맺은 언론사들이 시민의 팩트체크 제안을 받아 팩트체크 기사를 작성하거나, 시민과 협업해 팩트체크 기사를 작성하는 방식이다. 교육과 공모전 등 팩트체크 활성화 사업도 실시했다.

그러나 운영이 순탄치 않았다. 국민의힘에선 예산 논의 때마다 ‘편향 팩트체크’ ‘예산 낭비’ 프레임을 부각해 공세를 이어갔다. 2021년 11월 박성중 국민의힘 의원을 비롯한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국민의힘 의원들은 ‘팩트체크넷을 팩트체크해 주십시오!’ 제목의 성명을 내고 “정권연장을 위한 도구 팩트체크넷에 국민혈세 27억 4천만원을 퍼부었다”며 반발했다.

팩트체크사업 예산은 2021년만 해도 27억4000만 원 규모였으나 2022년 17억4000만 원으로 줄었고, 2023년 6억1000만원으로 줄었다. 2023년 예산으로는 운영이 불가능한 상황이었고 팩트체크넷 이사회는 지난달 25일 법인 해산을 의결했다. 팩트체크넷은 이번주 내로 해산을 공식화하고 회원들에게 통지할 계획이다.  

정부 개입 없었지만 ‘예산 의존’ 한계

국민의힘의 압박으로 인한 예산 삭감이 해산의 직접적 이유이지만 ‘정부 주도 팩트체크’의 한계를 드러내는 측면도 있다.

우려와 달리 실제 운영 과정에서 정부가 관여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팩트체크넷 서비스에 참여한 기자와 시민들에 따르면 주제 선정과 기사 작성은 언론의 자율로 이뤄져 정부 개입 자체가 불가능한 구조다. 기사를 배열하는 것도 시간순으로 제시하기에 주관적인 개입 소지가 없다.

그러나 예산을 전적으로 정부에 의존하는 점은 한계였다. 팩트체크넷 사업에 참여한 경험이 있는 최원석 미디어리터러시교육 활동가(전 시청자미디어재단 연구원)는 “언론사가 공동 출자하는 구조가 아닌 외부 기관에서 주도해 예산을 배정한 프로젝트였다. 당장 정부 예산 끊기면 자생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오늘과 같은 상황은 예견된 수순”이라고 지적했다.

순탄하지만은 않았던 언론과 시민 협업

팩트체크넷은 서비스 활성화를 두고도 논박이 이어졌다. 지난해 9월 TV조선은 <[단독]3년 동안 250건…1건에 2000만 원 꼴> 보도를 통해 3년 간 팩트체크 건수가 250건에 불과했다며 ‘세금 낭비’라고 보도했다. 그러나 예산 상당수는 팩트체크가 아닌 연구, 서비스 운영 등에 쓰였기에 ‘과도한 보도’라는 지적이 나왔다. 

다만 ‘활성화되지 않았다’는 지적은 완전히 틀리다고만 볼 수는 없다. 팩트체크넷은 2022년 말 기준으로 1785명의 시민팩트체커와 전문가가 참여해 413건의 정보를 검증했다. 이 가운데 엄밀한 팩트체크가 이뤄지지 않은 경우도 있다. 출범 취지에 맞게 언론과 시민이 함께 팩트체크를 해낸 사례는 이 가운데 일부에 그친다.

▲ 2022년 9월 TV조선 뉴스9 보도 갈무리
▲ 2022년 9월 TV조선 뉴스9 보도 갈무리

팩트체크넷은 그간 언론사 기자와 시민 팩트체커 교육을 이수받은 시민을 ‘매칭’하는 시도를 했으나 언론사별로 운영 방식에 편차가 컸고 지속적으로 이뤄지지는 않았다. 팩트체크넷에 참여한 관계자들은 언론사의 소극적 태도와 고용되지 않은 시민이 밀도 있게 검증에 참여하기 어려운 여건 등을 한계로 꼽는다. 여기에 언론사들이 팩트체크 인력이나 조직을 줄이는 분위기도 맞물렸다.

최원석 활동가는 “언론 단체들이 이사회를 맡고 있지만 정작 인력과 비용 등 측면에서 소속 언론의 참여가 활발하지 않아 언론과 시민의 협업에 한계가 있었다”며 “일선 기자들 입장에선 회사 설득이 쉽지 않았다고 한다. 돈이 들고시간이 걸리는 일을 별도 조직을 만들어 서포트하기를 꺼려했다”고 했다. 

다만 ‘팩트체크 협업’만을 두고 사업을 평가하는 건 적절치 않다는 지적이 있다. 팩트체크넷 관계자는 “팩트체크가 무엇인지 알고 싶어하는 사람, 직접 해보고 싶어하는 사람이 많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실제 교육과 멘토링, 대회 등을 열었을 때 항상 지원자가 많았다”며 “멘토링의 경우 전문가로부터 조언을 구하는 과정에서 의미가 있었다는 평을 많이 한다.  단순히 배우는 게 아니라 팩트체크 플랫폼을 통해 교육과 참여, 실습을 함께 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고 했다. 교육과 멘토링 과정에서 시민이 언론을 이해하게 되는 면도 있었다. 

팩트체크넷은 해산되지만 ‘시민 참여’라는 과제는 남았다. 최원석 활동가는 “시민참여 팩트체크를 넘어 시민 참여 저널리즘 측면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기자들만의 힘으로 감당할 수 없는 주제들이 늘어나고 있는데 이때마다 시민과 접점을 얼마나 활용할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저널리즘적 협력은 더 늘어야 한다”고 했다. 팩트체크넷 관계자는 “언론과 시민이 맞춰가는 과정에는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고 서로의 훈련된 숙련도 정도가 다르다”며 “역할에 대한 조정과 더 나은 단계를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거기까지 나아가지 못하고 사업을 접게 돼 아쉽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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